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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eok Nov 26. 2021

계획이 없는 게 계획입니다.

계획 없이 떠난 인도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

지난 이야기..

자존감, 나의 강점, 일하는 방법까지 많은 것을 배운 아산 프런티어 유스 과정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되는데..



챗봇은 못 만들겠어요.


아프유가 끝나고 제일 먼저 썼던 지원서는 슬로워크의 생산성 개발자 직무였다. 아프유에서 웹 사이트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며 얻은 자신감으로, 왠지 개발자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준비해서 낸 후 서류를 합격해 과제를 받았다. 미세먼지 알림 챗봇을 만드는 것이었다. 주어진 기간은 꽤 되었고,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아서 쉽게 생각하고 과제를 미뤘다. 종이에 대충 끄적여보다가 코딩을 해보려고 하는데, 계속해서 답이 보이질 않았다. 결국 과제 마감날 학교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24시간 할리스에서 밤을 새웠다. 챗봇을 만들다가 울다가 두아 리파 영상을 보다가. 결국은 동이 다 트고 나서야 과제를 못 풀어서 제출하지 못하겠다는 메일을 보내고 친구 집에 가서 눈을 붙였다. 역시 개발자는 할 수 없는 건가 싶었다.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걱정이 가득했다.


급 영국 워홀 뽐뿌


챗봇 과제를 말아먹은 뒤에는 중간고사 기간이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시험공부를 하며 보냈다. 철학과 졸업 논문 제출도 1학기 마감이라, 주제를 정하느라 고통도 함께였다. 그러던 와중, 영국 워킹 홀리데이에 대해 알게 됐다. 그 해 1월에 다녀온 영국 사회적 기업 Clear Village에 대한 기억이 워낙 좋았고 런던에 대한 기억,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높았던 시기에 영국 워홀은 달콤한 도전처럼 보였다. 어차피 개발자로 취업은 그른 것 같은데, 영국 사회적 기업에서 일해볼까. 하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캐나다 워홀을 꽤 오래 다녀온 언니와 7시간 넘게 수다를 떨며 계획도 구체화했다. 당시 이베이 코리아의 데이터 엔지니어 직무의 인턴을 열심히 준비 중이었는데, 인턴 합격해서 돈을 좀 벌고 하반기에 준비해서 내년에는 영국 워홀을 가겠다는 나름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인턴을 준비하고, 수업을 듣고, 졸업 논문을 썼다.


인턴 불합격과 함께 갑자기 떠난 인도 여행


이베이 코리아 인턴에 불합격했다.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멍한 상태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나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사실을. 대학 생활 내내, 미리 정해진 스케줄이 없는 방학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모든 방학엔 이미 계획이 있었고, 나는 바쁜 스케줄을 즐겼다. 그런데, 지금 제일 중요할지도 모르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 여름 방학 스케줄이 텅 비어있었다. 대외활동도, 인턴도 아무것도 없었다. 극도로 불안한 그 상황에서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꼭 무언갈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이수를 위해 제2외국어 수업을 들어야 해서 2주 반 짜리 프랑스어 계절 수업을 등록하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알바나 해서 돈이나 벌어야겠다 싶어 여기저기 알바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친구가 인스타에 올린 '인도 여행 같이 가실 분'이라는 게시물을 봤고 별 고민 없이 dm을 보냈다. 그렇게 갑자기 3주의 인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맑아진 머리


인도 여행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겼다. 좋은 사람들, 평생 처음 본 풍경,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가득했다. 일정이 조금 버겁기도 했지만, 대체로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다 여행 막바지 즈음 긴장이 풀렸는지, 극심한 고산병에 시달려서 새벽에 쓰러지기도 하고,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는데 그 고통이 델리 공항에서 피크를 찍었다. 면세 샵 구역에서 우리가 타는 비행기 구역까지는 꽤 멀었는데, 가는 길목마다 한 화장실 꼴로 들어가면서 구역질을 했다.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고 딱 쓰러지기 직전에 비행기를 탔다. 다행히도 비행기에서 점점 상태가 나아졌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대한항공에서 준 기내식을 먹고 점점 회복되었다. 인도에서 제대로 음식을 못 챙겨 먹기도 했고, 비행기에 타기 전 여러 번의 구역질로 속이 텅 빈 상태여서 정말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는데, 환상의 맛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비빔밥이었다. 한국행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며 점점 공항이 보이기 시작할 때,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꼈다. 그 순간 딱 한 문장이 머리에 맴돌았다.


'취업해야겠다'


인도의 그 하늘과 바다에 모든 고민을 버리고 온 건지. 정말 거짓말 같이 영국 워홀에 대한 생각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그저 머릿속에 한마디만 맴돌았다.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겠다.' 인도 여행에 그나마 가진 돈을 다 털고 와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취업이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그렇게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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