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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E J Jun 02. 2021

혼자 계획 짜고 오더내리는 그녀.

"넌 듣고 따라와!"

나의 신랑이 내 시어머니이자, 본인의 엄마에게 드디어 본인이 좋은 곳으로 이직함과 동시에 시애틀 한복판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알려드렸다.


시어머니는 늘 그렇지만, 아들의 성공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들이 본인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나의 시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끊고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본인이 3개월에 한번씩 시애틀에 올라가 본인이 봉사활동하는 시애틀-타코마 버스 커뮤니티(?)를 위해 중요한 회의를 하니.. 그 때 마다 만나서 점심 먹자며......


아들의 회사 위치를 묻고는, 그 회사가 요즈음 동향이 어떤지 본인이 인터넷에서 보고 들은 내용 연설 시작.......... 그 위치 땅값에 대한 이야기 설파...


이때까지 “축하한다. 고생했다” 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정말로 나의 부정적인 예상대로 흘러가버려.. 나는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아파트를 얻는 지역에 대해 들으시고는.. “거기 좋은동네인데” 라고 하심과 동시에.. 본인의 앞으로 1년 계획을 급하게 짜시고는 큰소리로 설명에 들어가셨다.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에 너네 아파트가서 불꽃놀이보고 거기서 자야지. 나 재향군인 병원 예약일이 언제인데 그거를 좀 당겨서 이때가고 나 너네집에서 자야지.”


“너네 애 낳고 기를거 연습할겸, 앞으로는 모든 미국 명절은 너네집에서 하자. 나는 창고를 뒤져서 내가 30년간 모은 크리스마스 장식, 내가 결혼할때 받은 그릇 이런거 다 찾아서 너네집으로 보낼께”


.......


저 말과 함께 시어머니는 25키로 정도 나가는 박스를 들고 오시면서... 신랑 어릴때 사진이라고 하시면서 사진들을 주고가셨다.


내가 궁금해서 박스를 열자..


시어머니는 갑자기 내 옆에 갑자기 자리를 잡으시더니.. 사진을 같이보자고 하셨다. 


박스안에는 신랑의 어릴적 사진보다, 본인의 사진과 본인 가족의 옛사진이 더 많았으며.....

심지어는 시아버님의 제자 사진들도 많았다.


(어머님.. 신랑 어릴적 사진이라면서요????)


시어머니는 사진을 보시면서 본인의 가족 관계와, 본인의 고등학교때 남자친구 이야기 등등.. 그 박스 안에 들어있던 사진과 연관된 가능한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나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어머니에게 약 세시간을 붙잡혀있었다....... (밤 8시 40분경 - 자정(12시)을 10분정도 넘긴 시간 까지)...


내가 왜 시어머니의 어머니도 알아야하고, 시어머니의 증조 할머니, 증조 이모님 등등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그분들이 돌아가셨으며, 그 분들의 신체적 특징까지 알아야할까? ㅠㅠ


시어머니가 내일 모레 70이신데.. 어머님의 고등학교때 남자친구 누구누구, 군복무 동기 누구누구,군복무 지역 어디어디까지 정말 세세하게 말씀해주셨고... 중간중간 나에게 이해했는지 내용 질문도 하셨다....


여러분 저 곧 시험봐야할거같아요 ㅎㅎㅎㅎㅎ시어머니표 그녀의 개인 역사 시험요 ㅠㅠㅠㅠㅋㅋㅋ 


시간이 많이 늦어..내가 대놓고 힘들어하고, 대놓고 관심없는척을 하자.. 나의 시어머니는 나의 ‘마음 약한점’을 파고들기 시작하셨다.


“네 남편은 미숙아였지. 예정일보다 많이 빨리나왔어... 한 6-7주정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미숙아로 나왔던 말던, 30년 넘게 잘 살았고, 육군 사관학교 졸업할 정도의 체력과, 군에서 7년 복무 할 정도의 정신력+체력을 가졌으면..... 개인적으로 나는 미숙아로 태어났네 뭐네는 이제 그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신랑이 미숙아였다~고 자주 말씀하셔서.. 나는 쿨~한 태도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처음 한두번 들었을때나 마음이 찡하고 눈물나고 잠설치고 예민하게 굴었지만..... 그걸 분기별로 듣는다고 생각해보시라..... 눈물은 이제 나올만큼은 다 나왔을터....(물론 내가 아직 자식이 없어서 저 이야기를 40번쯤 들으니 저 이야기에는 눈물이 안나오는지도...)


지금 잘 자랐고 건강하고 튼튼하면 그걸로 된거지... 구태어 슬픈 옛날 이야기를 반복해서 자꾸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나는 매우 궁금했다. 그것도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내가 반응하지 않자, 시어머니는 점점 더 슬픈이야기를 늘어 놓으셨다.


“나는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출산하기 두달전 즈음에 알았어. 대학원 공부와 일을 병행하느라 힘들어서지. 가끔 술도 마시고 아프면 약도 막 먹은거같은데, 애가 잘 나왔네? 신기하게?”


.... 진짜 저런말은 왜 하는걸까? 모든 언어는 말하는 말투와 표정 등등이 매우 중요한건데...


나의 시어머니에게선 한치의 미안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마치 지난번 genetic freak을 말하던 그 때와 똑같은 농담아닌 농담조였다. 


나는 저기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혼자 각종 슬픈이야기를 쏟아내셨다.

그것도 밤 11시 40분-50분 경에......... 


“네 신랑은 여동생을 가질뻔했지.. 어쩌다 아이가 유산이 되었고, 그 뒤로 8주 뒤에 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힘든 시기였지. 한편으로는 내 성격에딸이 있었으면 평생 싸우고 힘들었을거라.. 다행으로 생각 하긴 하지만, 정말 힘든시기였어”


저 이야기를 듣고 내가 너무 슬퍼하고 안쓰러워 하기 시작하자.. 시어머니는 또 시애틀에 위치한 우리집에막 오실 계획을 쏟아놓으셨다.. 


거기에 추가로.. 내가 신랑의 고향 친구들, 고향 친구들의 부모님들, 본인 친구 누구, west point(미국 육군사관학교) moms, 신랑 어릴때 교회 친구 누구를 만나봐야한다는 말과 함께... 

(신랑의 육사 동기들도 아니고.. 그 동기들의 엄마들을 만나봐야한다는건 뭘까...? 다들 결혼해서 각자의 배우자의 대학 동기의 엄마들이랑 어울리고 그러나요...?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특히 본인의 여동생(본인보다 10살 어림)이 나를 너무 만나보고 싶으니.. 내가 살게될 시애틀로 꼭 초대를 해야한다는 말과함께...


시어머니는 사실상 이미 다른사람들에게 우리집에막 와도 좋다는 초대장을 남발하셨다.

(본인의 형제들과 신랑 대학 동기의 엄마 모임 멤버 일부에게, 그리고 신랑 고향 친구 일부에게 신랑이 시애틀로 이사가니 한번 놀러오라고 문자를 전송하심...)


이미...벌써... 나의 입주도 전에.......


그래놓고 나에게 막 통보하기가 미안(?)하셨는지.. 본인의 힘든시절 이야기과 함께, 본인의 각종 시애틀 방문 계획과.. 누구를 거기로 초대할건지에 대한 계획을 동시에 이야기 하신것이다.


하.....


왜 나의 아파트 입주 전부터.. 나는 시어머니의 방문 계획+가구배치계획+각종 참견+시어머니가 그 집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 리스트를 들어야만 했는가........


저게 진짜로 다 벌어지게 될 이야기인지~ 시어머니의 개인적인 소망일지는 모르나...


저걸 듣고있어야했던 나의 입장도 누군가는 생각해줬으면.... 저 때가 밤 11시 40분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는 점....


내가 반응이 없을수록 더 마음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꺼내신 시어머니덕에, 나의 마음은 한없이 아프고 무거워 새벽 4시까지 잠을 못자고 있다는 점.......


나는 정말로 시어머니가 너무 불편하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하시는건가..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이럴때 쓰는건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다른 더 적합한 단어가 있을텐데.. 잘 모르겠다..


시어머니 “덕분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아이를 가지기가 싫어졌다. 독립과 동시에 아이를 생각했던 그 찰나도 잠시..... 시어머니가 내 미래의 아기를 보지 말았으면.. 그 애에게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으면~하는 소망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내가 아이를 가지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하... 시어머니는 나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흔들고 뿌리뽑고 계신다.


곧 시댁 탈출인데... 나는 하나도 기쁘지가 않고 두려움과 슬픔만이 가득하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각종 여러가지 행사(?)나, 사람 만나는일이 아직은 많이 부담스럽다. 그걸 시어머니도 알고 공감 아닌 공감을 해주셨는데.. 이제와서 이미 집들이를 계획을 하셨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리 신랑도 집들이 계획 몰랐어요. 시어머니가 혼자 본인 형제들에게 문자 날리시고 계획 잡고 졸고있는 신랑에게 자정 다되어서 “통보” 하심요)


내가 동의를 안하는지도 모르고 비행기타고 1-2시간 날라와 다들 우리집에서 모일 생각을 하니... 잠이 싹 달아났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잠을 설친다.


달리는 버스에서도, 코드 블루가 발생한 병실에서도, 시끄러운 지하철에서도 눈만 감으면 세상 모르고 잠들던 내가 그립다.


시어머니가 한국식 이사 선물로 주신 대나무 휴지, 시어머니는 미국 아마존을 통해 이 휴지를 자주 구매하심.  사진출처: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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