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젼정 Aug 24. 2023

여름의 어느 날


음악이 흘러나오자,

나는 어느새 다른 세계로 건너갔다.


나도 모르는 어떤 세계를 매일 드나들고 있는 건 아닐까. 잠이 들면 열리는 어떤 문을 매일 열고 들어가 평소와는 다른 얼굴로 용감하게 그 세계를 모험하고 돌아와 몽롱하고 아득해지는 건 아닐까.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애써도 생각나지 않는 꿈처럼,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여기 아닌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된다. 깨어 있는 동안 내가 존재하는 세계에는 끝이 있다고 한다. 끝과 이어지는 다른 시작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해도 여기에서 다시 시작은 아니니까. 끝이 있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의 삶은 명랑하면서 고달프고, 어떤 이의 삶은 슬프면서도 기쁘고, 어떤 이의 삶은 고달프고 슬프다.


어느 여름날, 유난히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어느 여름날, 여름밤의 아득한 냄새가 그리워지는 어느 여름날, 잠에서 깬 후에도 여전히 잠에 들어있는 것 같은 어느 여름날, 어떤 세계를 모험하는 나를 상상했다. 무릎을 끌어안고 둥글게 말린 몸으로 먼지처럼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부유하며 말랑해진 마음을 느끼는 나를 상상했다. 잠이 들고 깨는 순간, 우리는 온전히 혼자가 된다. 네모난 방에 직사각형으로 누워 자기 자신이 된다.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든다. 기억이 없는 세계에서 자유롭게 걷는다. 몸은 가볍다.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계에서 모험을 한다.    


‘히사이시 조’의 ‘어느 여름날’이 흘러나오자 그런 세계가 펼쳐졌다.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을 세계의 문은 내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미묘한 시간과 장소에서 열린다. 음악이 흐르는 사이 누군가의 여름날이 나의 여름날과 맞닿았다. 나는 언제나 그냥 그런 순간이 좋았다.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지는 순간이, 내가 상상하는 세계가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듯 이야기하는 순간이, 눈 뜨면 사라지는 꿈이라 하여도 원했던 꿈의 한가운데 서있었던 여름의 어느 날이, 나는. 끝과 끝이 이어져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름의 어느 날이, 나는. 슬프면서도 기뻤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의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