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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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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Apr 16. 2024

어떤 꿈


긴 잠에서 깨어나 마주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꿈과 꿈으로 이어졌던 순간에서 빠져나오는 찰나, 잠에서 깼던 수많은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언젠가 살았던 집의 모습, 집의 분위기와 냄새. 그 안에 존재했던 젊은 날의 엄마, 아빠.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동생의 작은 몸. 어떤 어둠. 어떤 빛. 쓸쓸함과 다정함 사이에서 고민했던 나의 어떤 표정. 반지하 옆 창고 문을 열고 나와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을 때 비추던 봄날의 볕. 나를 무심히 지나가던 고양이. 잠에서 깨 방문을 열면 들리던 TV 소리. 매일 비슷하게 주고받던 무성의한 어떤 말들. 그게 다 꿈같다. 벚꽃 나무를 바라보며 걸었던 얼마 전도, 어느새 진 꽃처럼 아득하다.


긴 수면이 시간의 혼돈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충분히 자도 몸이 회복되지 않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잔다. 이렇게까지 잘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잔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현재에 잘 도착했나’ 현실을 확인한다. 아직 모든 게 그대로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한다. 잘 지켜지고 있는 건지. 잘 살아남아 있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한다. 올해 벚꽃은 이대로 안녕일 테지만 결국 돌아오겠지. 긴 잠을 자고 깬 순간처럼, 아름답게 그 계절을 각자 지나가고 있는 거겠지. 그게 다 꿈같다. 다시는 꿀 수 없는 어떤 생생한 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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