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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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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Apr 23. 2024

존재하지 않는 꿈


아름다운 영상을 찍었다. 그곳은 서울이었다. 여기저기서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는 서울이라고. 걷다가 무심코 들어선 길. 골목길 사이로 바다와 노을이 보였다. 서울에 바다가 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걸까. 바다는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멀게 느껴졌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주 가는 선으로 겹겹이 쌓인 분홍과 주황빛. 언제나 짧게 머무는 찰나의 빛들. 아름다움은 늘 그렇게 눈치채기 어렵게 지나갔다. 골목에서 빠져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서마저도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여유가 없었다. 여유가 있어 보이기 위해 그곳을 찾았으면서도 습관처럼 여유를 찾지 못했다. 이상했다. 찾아 헤맬수록 찾을 수 없었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점점 더 깊게 빠지는 늪처럼 여유는 숨어 버렸다. 차라리 늪에 빠져 여유와 한 몸이 되는 편이 더 나을까. 바닷가 모래사장은 언제나 평온한 곳이었다. 사람만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사람들은 평온할 수 없었다. 바빴다. 늘 시간이 없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매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그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죽어야 되는데 죽을 시간이 없어. 잘 죽어가고 있는지 궁금해. 분위기 있게 사진 좀 찍어 줄 수 있을까. 이제야 나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같아’라는 말에 나는 슬퍼질 것만 같다. 끝까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떠나야 할 것만 같아서. 나는 바위처럼 까만 형태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바다를 찍었다. 일렁이는 파도를 클로즈업 하자 밤비가 보였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바다가, 바다에서 볼 수 없는 도시의 복잡함이, 파도와 함께 찍힐 수 없는 동물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건 사람들의 얼굴. 거기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사람들은 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작은 화면 속에 몰두하거나 다음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했다. 모래사장에 앉아 그 부드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잠시 머무는 노을빛을 가만히 바라보지 못했다. 밤비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서울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있으면서도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거기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건 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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