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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Nov 07. 2024

감정의 영점


내 감정의 영점은 슬픔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어쩐지 슬퍼, 괜히 슬퍼질 것 같아, 그런 기분에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나의 슬픔은 경험에 의해 자리 잡은 걸지도 모른다.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무력감. 아무리 애써도 내가 바꿀 수 없는 설명하기 싫은 슬픔의 굴레.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슬퍼지곤 했던 것 같다. 큰 목소리에 대꾸할 수 없어 다문 입, 숨을 곳 없는 한 칸짜리 방에서 종종 느끼곤 했던 고독(고독이 고독인 줄 몰라 혼란스러웠던 고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거기 있었던 일상적인 불행의 냄새, 그 모서리에서 가끔 보았던 따뜻해 보였던 환한 빛, 그리고, 그리고.


누군가는 내게 웃는 얼굴이 잘 어울린다고 했는데 그런 얼굴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웃을 때 나는 나를 볼 수 없으니까. 웃을 때 나는 어떤 얼굴이 되는 걸까. 내가 느끼는 나의 일반적인 표정은 무표정 또는 무심함. 그건 내가 그것을 의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쉽게 다가오는 게 싫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그런 표정을 짓는다. 잘 모르는 상대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게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해 싫은 것보다는 성가시다. 누군가와 대화가 시작되면 ‘나’는 노출되고야 만다. 보통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말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한 것들도 어느새 바깥에 나와있다. 이런저런 말을 생각해 내다 실패하는 일도 잦다. 항상 쓸데없는 말이 툭툭 나온다. 침묵과 어색함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말들. 빠르고 서툴게 내뱉는 그 말들. 처음엔 잘 숨겼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들킨다. 숨바꼭질을 할 때 자신의 눈만 가리는 어린아이처럼. 잘 숨겼다고 믿지만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는다.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계획에 없었던 말들을 쏟아 낸 순간순간을 후회한다. 정말이지 들키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나의 감정의 영점이 슬픔에 더 가깝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한다. 아니다. 묻는 말은 있었다. 네가 아닌 내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그것에 대해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도 어딘지 모르게 슬프다. 상대에게 가닿고도 응답받지 못한 말들,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했던 그 순간의 설명하기 힘든 복잡함, 돌이킬 수 없어 더 애틋한 어떤 날들, 오롯이 혼자라고 느낀 어떤 날의 공기와 냄새. 그런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내 슬퍼진다. 어떤 날에는 부러 슬픈 것을 찾아본다. 슬퍼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슬퍼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감정의 영점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저 거기 머물고 싶어서. 지나간 어느 날 느꼈던 슬픔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기도 한다. 슬픔은 쉬이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슬프진 않다. 직선처럼 슬프다가 점선처럼 슬퍼질 뿐이다. 그러다 그것은 점이 된다. 작고 동그란 슬픔의 점. 슬픔이 가까이 있다 해도 쉽게 우울해지지는 않는다. 나의 슬픔과 우울의 간격은 넓다. 두 감정은 전혀 다르다.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분명히 다르다.


슬픔은 마음의 존재를 확실히 느끼게 한다. 기분이 좋은 건 대체로 너무 짧다. 뜨거운 기쁨과 따뜻한 환희는 한겨울 주머니에 넣어 놓은 손난로처럼 언젠가는 차가워진다. 그 온기가 사라지면 허전함을 느끼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잊힌다.

때때로 생일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부는 순간 그것이 끝나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짧은 행복과 기쁨이, 잠시 뒤로  일상적인 슬픔의 정지가 끝났음을 선명하게 느끼곤 한다.  기분은 내게 그리 나쁘지 않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편안해진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생일 케이크를 포크로 쪼개 입안에 넣으면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순간만큼은 슬퍼질  없다. 그럼에도 모든  끝나고야 만다. 존재의 유한함을 생각하면 또다시 슬퍼지고야 만다. 마음의 존재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 영영 없어지고야 만다. 그래서 슬프다. 슬픔을 좋아한다고  수는 없겠지만, 슬픔을 사랑한다고  수는 없겠지만, 나의 곁에는 슬픔이 있다. 웃으면서도 슬퍼하고 아무 표정 없이도 슬퍼한다, 아주 다양한 이유로, 그런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자주   없이 슬퍼한다. 직선이 점선이 돼가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이 하나의 점으로 입을 다무는 것을 느끼며, 감정은 영점에 이른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무릎을 껴안고 앉아  안의 모든 슬픔을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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