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터뷰 #5: 청년농 <트루미팜> 김진실 대표
논밭이 말끔히 정돈되고, 모내기를 끝낸 자리는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는 계절이다. 농부는 가을을 기다리며 작물을 심고, 가꾸고, 길어진 해를 내내 받으며 여름의 밭은 짙어간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논을 끼고 달려 겸면 가정리의 <트루미팜>을 찾았다. 딸기와 멜론을 주로 심는 이 농장을 책임지는 것은 20대 후반의 김진실 씨. 농부의 얼굴을 젊은 여성으로 상상하는 일은 분명 낯설지만, 그리 힘든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우스 하나하나를 돌며 자기 일에 대해 설명하는 차분한 목소리는 크지 않아도 또렷했다. 진실 씨를 따라, 여름 볕 아래서 익어가는 멜론과 딸기 하우스를 돌아보았다.
지금 자라고 있는 멜론은 4월에 심었고, 7월에 수확할 예정이다. 멜론은 한 줄기에 여러 꽃이 나지만, 줄기당 하나만 남기고 다 솎아내야 한다.
정식을 기다리고 있는 멜론 모종. 수확할 자리에 모종을 옮겨 심는 것을 정식이라고 한다. 싹을 틔운 지 이제 일주일 됐다는 이 모종은 6월 안에 정식하여 추석에 수확할 예정이란다. 정식 후에는 6천여 개의 멜론으로 자라날 예정이다.
딸기 수확이 끝난 자리, 1세대가 시들고 그 자리에 2세대가 자란다. 2세대의 새끼 모를 잘라 포트에 옮겨 심는 것을 삽목이라 한다. 포트에 새롭게 뿌리 내리면 그 자리에서 다시 딸기가 자라는 것이다. 꽃이 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린 모종만 사용한다. 포트에 옮겨 심는 일도, 제대로 살려내는 일도, 꽃을 솎아내고 병충해를 예방해주는 일도 모두 농부의 몫이다.
농장을 둘러본 후 한낮의 따가운 햇빛을 피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농장 한구석의 컨테이너로 이동했다. 진실 씨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 지금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일들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9년 정식으로 귀농한 김진실입니다. 곡성이 고향이고, 대학 때부터 직장 생활까지 광주에서 하다가 귀농했어요. ‘트루미팜’이라는 이름으로 딸기와 멜론을 기르고 있어요.
6월 중순이에요. 딸기와 멜론을 짓는 농가에서는 어떤 일과를 보내고 계시는가요?
딸기 수확은 일단 끝났고, 딸기 육묘 작업 시작했어요. 그리고 멜론 작업하고 있고요. 지금 같은 날씨는 낮에 너무 뜨거우니, 아침저녁에 부직포가 없는(부직포로 덮지 않은) 하우스 동을 들어가야 해요. 그래서 아침에는 멜론 열매 솎아주고, 끝나면 딸기 육묘 작업을 해요.
부모님께서 20년 넘게 딸기와 멜론 농사를 지어 오셨다고요. 부모님의 뒤를 이어받아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는 농사지을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농사짓는 거 보고 자라면 자식들이 농사 안 지으려고 하잖아요. 힘든 걸 아니까. 근데 아버지가 작년에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회사에 사직서를 냈어요. 아버지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부모님 어깨너머로 보면서, 농촌에 좀 더 젊은 생각을 접목하면 꽤 희망적인 부분이 있을 것 같았어요. 저만의 방식으로 농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최종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거죠.
그럼 이전에는 농업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셨던 거예요?
네. 손해보험사의 고객센터에서 일했어요. 퇴사를 결정한 당시는 대리 승격을 몇 달 앞둔 상태라, 상사분이 제가 그만두는 걸 붙잡으셨어요. 3개월 동안 유예기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죠. 그렇지만 보름 정도 있다가 안 되겠습니다, 하고 그만뒀어요. 기회가 남아있으면 여기에 정착을 못 할 것 같더라고요.
어느 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겁도 났을 텐데, 그렇게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할 만큼 자신 있었나요?
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일하시는 것도 봤고, 도와드리는 것도 힘들지 않았거든요. 저는 어릴 때도 집안일 거드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게 더 좋았어요. 그래서 나도 귀농하면 농사 잘 지을 수 있겠다 해서 내려온 거죠. 근데 막상 시작하니 정말 쉽지 않았어요(웃음).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공통된 반응인 것 같아요. “농사짓는 거 정말 쉽지 않다”라는 거요(웃음). 진실 씨에게는 어떤 면이 가장 어려워요?
부모님이 예전부터 해오신 방식과 제가 하려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던 거요. 그래서 계속 트러블이 생겼어요. 저는 아버지한테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얘기를 하고 아버지는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부모님과 동업을 시작하는 경우)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요. 이걸 해결하려면 자식 세대가 아예 독립해서 아버지와 별도로 경영을 하든지, 아버지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대요. 그래서 제가 하우스 3동을 받아 독립해서 ‘트루미팜’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때 아버지가 장기간 입원을 하게 되셔서, 결국 제가 아버지 일까지 함께 맡게 되긴 했지만요.
귀농을 생각하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자신만의 경영체에 대한 꿈이 있었을 텐데 그걸 단박에 이루긴 쉽지 않네요. 부모님에게 농가를 물려받는 것이 마냥 유리한 조건은 아닌 것도 같고요.
맞아요. 저는 초보니까 조금씩 늘려나가는 재미를 보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감당해야 하니까 지쳐버리는 점도 있었어요.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 일해오셨고, 진실 씨의 방식은 어떻게 다른 거예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하우스를 40동 넘게 운영하셨어요. 그 넓은 하우스를 모두 운영하려면 몸은 엄청 고생하는데, 수익이 그만큼 나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저는 적게 지어서 좋은 상품을 파는 방식으로 바꾸고 싶어요. 딸기는 일일이 꽃 작업을 해줘야 품질 좋은 과실이 나요. 한 줄기에서 꽃이 여러 개 나면, 대여섯 개만 두고 나머지는 꽃을 다 따줘야 해요. 그러니 많이 심으면 관리도 안 되고, 품질도 좋지 않은 거죠. 작년에 그나마 줄인 것이 하우스 20동이에요. 그리고 이번 육묘 때는 10동 분량만 짓기로 했고요.
규모를 줄였을 때 변화가 느껴졌나요? 그랬을 때 아버지의 반응도 궁금해요.
사실 저는 규모를 더 줄이고 싶었기 때문에 성에 안 찼어요. 그렇지만 처음부터 확 바꾸는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농사를 포기하는 분도 있다는데, 아버지께서 변화를 주기로 선택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됐어요. 절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수확한 작물은 어떻게 판매를 하세요? 직접 판매하시나요?
네. 원래 아버지는 수확한 작물 전부를 공판장에 내셨어요. 근데 공판장 가격이 유동적이라 (가격이) 안 나올 때는 수익 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직접 판로를 알아봐야겠다 싶어 광주와 옥과에 있는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도 했더니 카페에서 연락이 와서 몇 군데 납품하고 있고요.
직매장이 있으면 판매에 도움이 많이 되는 편인가요?
네. 신선도나 가격 같은 게 일정하게 관리되니까 확실히 도움이 많이 돼요. 생산자들이 직접 가격표도 붙이고, 포장도 하고, 납품하고, 상추 같은 야채류는 당일 판매되지 않으면 무조건 다 회수하도록 하거든요. 로컬푸드 직매장 생기면서 숨통이 트였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판매까지 신경 쓰려면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겠어요. 혼자 모든 것을 하려면 힘들지 않나요?
맞아요. 그래도 남동생이 있어 의지가 됐어요.
동생도 함께 귀농한 건가요?
네. 저는 1남 5녀 중 넷째고, 제 남동생은 다섯째예요. 첫째 언니도 귀농하려고 했지만, 농업 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해서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어요. 제 남편은 농사일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 결국 저 혼자만 귀농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혼자 힘으로 벅찰 때는 동생이 많이 도와줘요. 동생도 농촌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어 뜻이 맞는 부분이 있어요. 동생은 애견 수제 간식을 만들어요. 농산물이랑 곤충을 활용해서 유기농 간식을 만드는 거예요. 동생 사업도 농산물을 원료로 하다 보니 저와 시너지를 내는 부분이 있지요. 그래서 동생과 저를 하나로 묶어 ‘트루미랜드’라는 법인체로 키워나가는 게 지금의 목표에요.
지지해주는 형제가 있다니 든든하네요. 사실 여성 혼자의 힘으로 농사일을 해나간다는 것이 벅찰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견 같기도 해요. 실제로 제 할머니도, 또 진실 님의 어머니도 평생 농사를 해오셨잖아요. 혹시 여성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남성과 정말로 차이가 있나요?
차이가 없다고 하긴 힘들죠. 그렇지만 여자라서 못할 것 같다는 말이 저를 자극하기는 해요. 제가 농사짓겠다고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거나 걱정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최근 농약사에 연무기를 사러 갔는데요, 이걸 누가 사용할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용할 거라고 하니까 여자는 사용 못 한다는 거예요. 막상 사 와서 써보는데, ‘뭐야, 이 정도야?’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겠어요. 못할 거라는 말에 오기가 생겨 더 하려고 하고, 해냈을 때 성취감을 느껴요.
직업의 적성을 판단할 때는 육체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대하는 태도와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보는 게 더 적절하다고 느껴져요. 진실 씨의 경우처럼요. 아까 ‘농업 체질’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단순히 힘이나 체력만이 ‘농업 체질’은 아닌 것 같아서요. 또, 진실 씨 본인은 농업 체질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평균적으로 보면 농업 체질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농업 체질의 기본은 부지런함이라고 생각해요. 농업은 자연환경에 굉장히 제약을 많이 받잖아요. 이렇게 여름철에는 하우스가 뜨거워서 낮에는 못 들어가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을 시작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농사는 한 가지 일을 반복해야 하는 단순 업무에요. 이런 걸 지루해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지구력? 그런 게 ‘농업 체질’ 아닐까요.
귀농하기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나요?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귀농하고 나서, 뭐라고 해야 할까,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해야 할까요. 살아가는 게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 과정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야 하고, 또 건강해야 하고. 아버지와 함께 일 하면서 많이 생각했어요. 제가 좀 더 나이 들어서 뒤돌아봤을 때, 내가 하나하나 해오는 과정 자체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나요?
우선은 마음 단단히 먹고 오라고 말해주고 싶고요(웃음). 저도 예전에는 농사는 그냥 심고, 키우고, 수확하고 그러면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직접 해보니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생산부터 마케팅, 판매까지 책임을 져야 하니까 작은 사업체를 운영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도 저는 젊은 사람들이 귀농하는 건 무조건 응원해요. 윗세대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배울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거든요. 그래서 젊은 세대가 와서 윗세대의 방식을 배우고 응용하면 시너지가 정말 많이 발휘될 수 있는 곳이 농촌이라고 생각해요.
농사는 심고, 키우고, 수확하고, 그리고 무엇이 더 있는 건가요?
잘 팔아야 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좀 더 나아가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탄탄하게 키워나가는 거요. 요즘 6차 산업, 6차 산업 하잖아요. 이건 솔직히 혼자서는 못하거든요. 생산하고, 가공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운영하려면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쳐야 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귀농하는 걸 무조건 환영해요. 뜻이 맞는 사람끼리 뭉쳐서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트루미랜드’도 그런 느낌의 결과물이 되는 걸까요?
맞아요. 트루미팜 농장을 체험 농장으로 만들려고 하거든요. 단순히 와서 수확만 하고 끝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또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쉬어가면서, 여유도 부리면서, 수확도 하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목표에요. 곡성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지금은 기차마을이나 장미공원을 떠올리지만, 언젠가 ‘트루미랜드’를 함께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물론 목표를 이루는 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노력이 많이 들어가겠죠.
올해도 반이 지나갔어요. 2020년에는 어떤 것을 이루었으면 좋겠나요?
우선은 농가 규모를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줄여서 체질을 개선하는 게 목표에요. 그리고 동생과 함께 농가 체험 카페를 만들어서 곧 오픈을 앞두고 있어요. 카페에 딸기랑 멜론 다이를 설치하고, 고객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꾸미려 해요. 이 공간을 통해서 우리 농장을 어떻게 잘 알릴 수 있을까, 이 부분이 당장의 큰 고민이자 과제인 것 같네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진실 씨의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따님의 염려를 전하니 무뚝뚝하지만 따스한 대답이 돌아온다. “엄마아빠 손 떼라고 항시 얘기하는데. 애들이 걱정이 많이 돼(웃음). 안정적으로 만들어놓고 그만둬야 하는데. 애들이 열심히 하니까 고맙기도 하고.”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먹거리가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식탁까지 오게 되는지를 왜 알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지만 진실 씨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수입해오느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싱싱해 보이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정이 개입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진실 씨는 과일을 심고, 수확하고, 가공하는 과정 모두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말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 두고두고 찾을 수 있는 농장을 만드는 것 말이다. 나도 이제는 마트의 과일 코너를 둘러보다가 한 번쯤 아는 이름이 있지는 않을까 유심히 들여다볼 것 같다. 알고 나니 믿게 되는 얼굴들을 떠올리며.
글 | 제소윤
사진 | 송광호
본 콘텐츠는 웹매거진 농담(nongdam.kr) 5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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