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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이 좋아 Oct 16. 2023

늙고 못생긴 너에게

일상으로의 여행 #2

내가 널 발견한 건 여름날 뒷마당에서야. 더운 오후 내 꽃병 속에서 작은 가슴을 발닥거리고 있었던 너. 며칠 전 같은 꽃병 속에서 말라죽어 있는 작은 초록 도마뱀이 안타까웠는데 오늘은 네가 산채로 눈을 뜨고 힘들어하고 있더라. 나는 빨리 너를 잔디밭에 풀어주고는 네가 재빠르게 도망갈 것을 예상한 채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너는 그러지 않았어. 그냥 그 자리에 죽은 듯 자는 듯 서 있었지. 지금 생각해 보니 너는 꽃병을 탈출하려는 고투 끝에 힘이 빠졌던 것 같아. 이 기회로 너를 자세히도 보게 되었지 오른쪽 머리에 큰 상처가 있는 너. 그래서 그때는 머리를 다쳐서 도망칠 판단이 서지 않나 했어. 또 몸도 한눈에 보기에도 늙고 쇄락해 보였어. 그런 네가 그냥 눈을 지그시 감고 내가 놓아준 풀밭 그 위에서 꾸벅 졸았지. 어쩐지 늙은 아빠의 모습을 닮아 있는 너에게 나는 다시는 잡히지 말고 오래 살라며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왔어.


며칠 후 너는 다시 우리 집 뒷마루에 들어와서 방충망에 붙어 있더라. 나는 한눈에 너를 알아봤지. 너의 상처와 늙은 몸 어쩐지 도마뱀 중에 가장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너를 말이야. 그런데 그때 만나서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네가 떨고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너에게 다가가 또 왜 왔냐고 잘 지냈냐고 말했지. 말하면서도 나 자신이 우스웠지만 그래도 네가 좋았어. 나는 또 방충망 문을 열어주며 이번엔 네가 네 발로 나가라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왔지.


내가 아는 도마뱀이 우리 집 뒷마당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왜 이리도 따스하게 다가오는지. 그날 이후 내가 본 도마뱀 중에서 가장 늙고 못생긴 도마뱀인 너를 보지는 못했지. 네가 풀숲에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돌 위에서 따스한 햇살을 한껏 쬐면서 평온한 노년의 삶을 살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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