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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아주 Dec 10. 2021

모두다 똥이야

2021년 제39회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아동문학 부문 장원 작품

“강당 가기 전에 화장실 다녀오너라.”

우리 1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은 할머니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놀이하기 전에 꼭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해요. 예전 제자 중에 뛰다가 똥을 싼 아이가 있었대요. 서둘러 교실 앞 화장실에 들어갔어요. 몇몇 아이들이 소변기에서 오줌을 누고 있었어요. 빈자리가 없어서 변기 칸으로 들어갔어요. 밖에서 아이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강해준 똥 싸나 봐.”

“아유, 똥냄새.”

얼른 바지춤을 올리고 변기 칸에서 나왔어요. 나재민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야, 나 오줌쌌거든.”

얼굴을 재민이 얼굴에 들이대며 말했어요.

“근데 왜 거기서 나오냐? 아유, 냄새. 강해준은 똥 쌌대요. 더럽대요. 냄새난대요.”

나재민이 코를 그러쥐며 말했어요.

“아니거든!”

나는 씩씩대며 재민이 어깨를 손으로 밀쳤어요.

“아아니거드은”

재민이는 다리를 엑스자로 비비 꼬며 내 말을 따라 했어요.

재민이 가슴을 확 미는 순간, 뒤에서 “강해준!”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어요. 할머니 선생님이었어요. 누군가 나랑 재민이하고 싸운다고 일렀나 봐요. 나는 폭력을 썼다고 선생님께 엄청나게 혼났어요. 나재민도 놀렸다고 혼났지만 재민이는 맨날 혼나니까 혼난 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어요.


유치원에 다닐 때는 똥 싸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었어요. 내가 혼자 똥을 싸고 뒤를 닦고 나온 날, 참새 반 선생님은 엄지를 번쩍 들어 올려주셨어요.

“우리 해준이 다 컸네.”

선생님 칭찬에 우리 반 아이들은 나에게 손뼉을 쳐 주었고요. 그런데 초등학교에서는 왜 똥 싸는 것 가지고 놀리는지 모르겠어요.


점심을 먹고 나니 진짜 배에서 슬슬 신호가 왔어요. 똥을 싸고 싶은데 재민이가 또 놀릴까 봐 걱정되었어요. 점심시간이라 화장실에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얼른 변기 칸으로 들어가 똥을 눴어요. 뒤처리까지 했는데 밖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어요.

‘물을 내리면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애들이 알아챌 텐데….’

아이들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문을 살짝 열고 내다봤어요. 아무도 없었어요. 얼른 교실로 뛰어 들어갔어요.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잤어요. 예쁜 참새 반 선생님과 친구들 꿈을 꿨어요. 내가 뒷산만 한 똥을 쌌는데 참새 반 선생님은 나에게 엄지척을 해주고 다른 친구들은 나에게 손뼉을 쳤어요. 학교에 가지 않고 유치원에 가고 싶었어요. 미적미적하다가 아침도 못 먹고 학교에 왔어요. 그런데 교실이 난리가 났어요.

“야, 화장실에 똥 있어.”

“앗, 냄새. 누가 일보고 물도 안 내렸냐?”

나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모르는 척했어요. 열심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어요. 할머니 선생님은 교실을 한번 휘 둘러보셨어요.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선생님 눈하고 딱 마주쳐서 얼른 고개를 숙였어요.

“잠깐 기다려라.”

 할머니 선생님은 화장실에 물을 내리러 가셨어요.


1교시가 끝나고 우유 당번이 우유를 나눠주었어요. 배고픈 참에 우유를 단숨에 마셨어요. 고소했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 뱃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어요. 화장실에 가고 싶었어요. 주변을 둘러보자 뒷자리에 앉은 재민이가 우유를 마시다가 메롱하고 혀를 내밀었어요. 나도 메롱했어요. 얄미운 녀석이에요. 뱃속은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어요.


2교시는 할머니 선생님이 ‘모두가 꽃이야.’ 노래를 들려주셨어요. 이 노래는 지난주에 배웠어요. 1절을 부르고 나자 재민이가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기 시작했어요.

“산에 있는 건 똥이고 들에 있는 건 똥이고 변기에 있는 건 똥이고 모두 다 똥이야.”

“화장실에 똥이고 교실에도 똥이고 강당에도 똥이고 모두 다 똥이야.”

재민이가 부르니 다른 아이들도 따라 불렀어요. 특히 ‘똥이야’를 더욱 크게 불렀어요. 왠지 똥 냄새도 나는 것 같았어요.

“얘들이 아침에 똥 구경을 하더니 완전 똥 판이구먼. 인제 그만!”

할머니 선생님이 그만을 외치자 아이들은 모두 얼음이 되었어요. 그런데 내 뱃속에서는 얼음이 깨지는 것 같았어요. 뱃속을 얼음이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가 다시 멀쩡해졌어요.


다음 시간은 놀이 시간이에요.

“화장실 다녀오너라.”

선생님 말씀에 정말로 화장실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재민이가 뒤에서 “모두 다 똥이야.” 노래를 불렀어요. 몇몇 아이들이 따라 하며 키득키득 웃었어요.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어요.

강당에 도착해 술래잡기를 했어요.  술래가 쫓아와서 열심히 뛰었어요.하지만 뱃속이 묵직했어요. 돌덩이를 배에 넣고 뛰는 것 같았어요. 저 앞에서 술래가 번개처럼 다가오더니 나를 '탁' 치고 ‘너 술래’했어요.

이번에는 내가 술래예요. 앞에서 재민이가 엉덩이를 흔들며 “나 잡아봐라” 했어요. 어제 재민이가 나를 놀린 게 생각났어요. 나를 더럽다고 놀리는 재민이가 얄미웠어요. 재민이를 잡으려고 마구 뛰어갔어요. 재민이 옷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바닥에 쭉 미끄러졌어요.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재민이 엉덩이 밑에서 바지를 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재민이 엉덩이에서 구린내가 났어요.

“야, 너 바지에 똥 쌌지?”

내가 이렇게 묻자 재민이는 곧 울음을 터뜨릴 듯 눈물이 그렁그렁했어요. 재민이는 나를 간절한 눈으로 쳐다봤어요. ‘재민이는 똥 쌌대요. 더럽대요. 냄새난대요.’하고 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그런데 꿈속에서 나에게 엄지척하고 손을 들어주시던 참새 반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나는 손을 번쩍 들었어요.

“선생님, 재민이랑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할머니 선생님은 호루라기를 입에서 떼시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어요. 재민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요.

“가자!”

일어나서 재민이의 손을 끌었어요.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똥을 눴어요. 놀이 시간 내내 뱃속에 지진이 났다가 멈췄다 했지만, 꾹 참고 있었거든요. 재민이도 똥싼 팬티를 벗고 휴지로 뒤처리를 했어요. 강당으로 향하며 재민이에게 물었어요.

“재민이 너 언제 똥 쌌어?”

“아까 ‘모두 다 똥이야.’ 노래할 때에. 우유 마시고 나서 노래하려고 배에 힘을 주니까 뿌직하고 나오더라고.”

“근데 똥 싸고도 그렇게 노래하다니 너 대단하다.”

진심으로 재민이가 대단해 보였어요. 하지만 재민이는 내 눈치를 살폈어요.

“너, 내가 똥 싼 거 비밀로 해 줄 거지?”

재민이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어요.

“사실 오늘 아침 변기에 있던 똥 내 거야. 이거 비밀로 해 줄 거지?”

재민이가 내 얼굴을 보고 활짝 웃었어요.

“앞으로 똥 쌀 때 똥 싼다고 놀리지 말아, 알았지?”

나는 재민이를 똑바로 보고 말했어요.

“당연하지. 앞으로 다른 애들도 안 놀릴게.”


우리는 강당으로 들어갔어요. 아이들은 계속 술래잡기하고 있었어요. 나는 안 잡히려고 마구 뛰었어요. 뱃속이 홀가분해지니 발에 스프링이 달린 것 같았어요. 도망가다 덤블링을 했어요. 발이 바닥에 닿고 한번 깡충 뛰었어요. 그때 할머니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어요. 할머니 선생님은 나를 향해 엄지를 '척'하고 올려주었어요. 재민이와 친구들은 나를 향해 손뼉을 쳐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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