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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의 반딧불이 Aug 27. 2021

당신은 한국인을 대표할 책을 말할 수 있는가?


 우동 한 그릇.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한동안 베스트셀러였고, 교육자와 더불어 여러 명사들의 입에 오르내린 소설. 


 흔히 칼럼이나 에세이에 쓰이는 글이 늘 그렇듯, 많이 인용되는 구절은 한정돼 있었는데, 대부분 우동 한 그릇을 셋이서 나눠먹던 가족에게 주인장이 몰래 1.5인분을 담아내 주는 일화가 즐겨 인용됐다. 


 2인분도 3인분도 아닌 1.5인 이유는 너무 티 나게 얹어주면 손님의 체면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배려한 것이었다. 이런 섬세함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베푼다는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교훈으로, 기부를 하더라도 너무 자랑하진 말라는 말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이 널리 알려진 탓에 2인분 같은 1인분을 달라는 말의 원흉이 아니냐 하는 농 섞인 원망도 받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발적 선의인데, 똑같이 아등바등 살기는 매한가지인 자영업자에게 '선량함'을 강요하게 된 바탕이 됐다면서.



우동이라고 번역은 됐지만 사실은 메밀국수. 해넘이국수라는 문화도 소바도 익숙하지 않았던 때여서 우동으로 번역했다. 출처: justonecookbook.com


 줄거리는 이렇다.


 식당 북해정의 주인 부부는 1년의 마지막 날 밤을 기다린다.


 늦은 시간.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해 엄마와 아들 둘이서 나누어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순식간에 가장과 직원이 사고로 떠나고, 보상금을 온 가족이 일해 하루하루 갚아가며 사는 쥰네 가족.


 장남이 신문배달을 하고, 막내도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함께 일한다. 그런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게 고작 우동 한 그릇뿐이어서 미안해하는 어머니지만, 자식들은 아쉬운 소리는커녕 감사와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딱한 사연을 듣게 된 주인 부부는 앞서 말한 것처럼 1.5인분을 내주고, 이 가족이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로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쥰네가 빚을 전부 갚은 날, 두 그릇을 주문하며 형이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 '우동 한 그릇'을 제출하고 상을 탔다는 얘기를 한다. 셋이서 한 그릇만 주문하는 게 식당 주인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딱히 대하는 것도 차이가 없고, 북해정 주인 부부가 배웅해주는 말이 가족에게 큰 격려로 느껴졌다는 말에, 북해정 주인 부부도 자신들의 선행이 그들에게 힘이 됐다는 걸 알고 감동한다.


 그렇기에 항상 2번 테이블 만은 예약석으로 두고 가게 인테리어를 바꿔도 그 식탁만은 바꾸지 않는다. 가족을 기다리기 위해.


 항상 비어있는 2번 테이블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손님들에게 말해준 사연이 곧 퍼지고 식당의 명물이 된다.

그렇게 14년 후. 쥰네 가족은 가게에 돌아왔다. 


 장남은 의사가 되고, 동생은 은행원으로. 남부럽지 않게 장성해 어머니를 모시고 북해정에 온 두 아들은 일가족 평생 가장 큰 사치, 우동 세 그릇을 주문한다.




 짧지만 색이 강한 얘기다. 굳이 이 책을 지금 와서 얘기하는 이유는 이 책에 얽힌 얘기 때문이다.


 작가 구리 료헤이의 구리구리한 사기행각이 아니라, 이 책이 널리 알려진 계기를 보고 새삼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89년 2월 17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시작된다.


 당시 이슈는 리크루트 사건으로, 리크루트 홀딩스의 회장이 회사를 키우기 위해 뇌물을 뿌려댄 사건이다. 방법은 상장 직전인 계열사의 미공개 주식을 헐값에 넘기는 것.


 우회적인 방법이어서 은폐 효과가 좋았는지, 84년부터 4년 동안 걸리지 않았다. 결국 그러다 88년 아사히 신문에 포착된 것을 시작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고 말았지만.


 대기업이 벌인 일답게 규모도 커서, 얽힌 회사만 해도 37개 사고, 금융기관도 26개 사가 얽힌 초대형 사건이었다.  


 89년 2월 17일. 오쿠보 나오히코 의원은 대정부 질문을 하다, 한 권의 책을 꺼낸다.


 우동 한 그릇.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서민의 이야기. 사람의 정으로 일어서는 이야기.


 공명당 나오히코 의원은 자민당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에게 책임을 물으며 소설을 낭독했다. 총리는 고개를 숙이고, 장내에 있던 의원들은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의도는 분명하다. 당신이 배신한 국민의 삶을 보라. 국민들에게 당신 당의 일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느냐.


 곱씹어보면 결국 상대당을 욕하는 것에 가깝지만 그 방법이 참 우아했다. 만약 직설적으로 비판했다면 효과는 어땠을까? 크진 않았을 것이다. 그건 비리에 으레 따라오는 흔하디 흔한 반응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책으로, 세상 풍파에도 근면함을 유지하는 서민의 존재를 말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낭독을 들은 다른 의원들도 눈물을 흘리고 만 까닭은 이야기 자체의 힘보다도, 그런 부끄러움의 자각 때문은 아닐까. 

 



 내가 이 일화를 읽고 난 후 충격을 받은 이유는, 이어서 떠오른 다른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의 모습을 말하기 위해 어떤 책을 갖고 올 수 있는가? 


 나오히코 의원이 책을 가져온 이유는 일본인을 대표할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인 나는, 한국인을 대표할 수 있는 책을 말할 수 있는가?


 떠오르는 책이야 몇 권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책들로는 모범적인 한국인을 말할 수 없었다.


 평소 책을 너무 편협하게 읽은 건 아닌가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이렇게 보니 확실히 알겠다. 피할 수 없는 증거 앞에서 부인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일뿐.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고 움츠릴 일은 아니다. 이미 답이 정해진 문제였으니까. 그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책을 찾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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