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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의 반딧불이 May 29. 2022

무조건 팔리는 베스트셀러의 필승비결: 정의란 무엇인가?


 예전 수업할 적에 베스트셀러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도마에 오른 책은 당시 이슈였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2009)」. 하버드 교수인 마이클 샌델이 출판한 강의록이다. 


 교수님께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순전히 저자가 하버드 교수이기 때문이라는 독한 말씀을 하셨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Cornell University 블로그.


 윤리와 도덕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볼 얘기. 그런 얘기가 교수와 학생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 말랑말랑한 책이다. 트롤리 딜레마로 대표되는 여러 예시는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다. 


 그래서 활자만 읽을 줄 알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인데, 다른 것도 아닌 하버드 교수의 강의록이 술술 읽힌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라플란드 코리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책에 열광하는 것이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혹은 하버드 같은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읽고 분노한다. 하버드에서 하는 강의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좋은 두뇌를 가진 자신이, 이런 낮은 대우를 받는 건 능력이 아닌 대학 간판만 보는 얼뜨기들의 선입견과 차별 때문이다. 혹은 자신이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한 건, 이 좋은 두뇌를 살리지 않고 망쳐버린 잘못된 교육 시스템 때문이다. 그 증거는 바로 이 책이다. 자신이 하버드 강의를 이해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히트를 두고, 사람들이 정의와 윤리에 대한 고찰을 원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하셨다.


 사실, 저자의 이력이 중요하다는 말이야 들었지만, 의학서적인데 의학 학위는 없고 사회부 기자 경력이 있거나, 논문 수보다 시민단체 활동 경력이 더 빵빵한 경우 책장을 덮으라는 등의 전문성에 관한 얘기만 들었지, 이런 메커니즘이 있을 줄이야.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트위터, @freemanjb.


문학인들과 박사학위  


 교양도서와 같이 전문성을 요하는 책이야 당연히 전문성을 증명할 학위가 중요한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의외로 문학인도 예외는 아니다.


 왜 문학인들은 박사학위에 목을 맬까. 문학상을 받고 등단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문학인의 전문성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왜 학위에 매달릴까. 특히 시인들.


 시문학 시장이 1,000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고 할 정도로 좁아 수익이 좋지 않기 때문에 교수, 시간강사 등의 일이 더욱 절실한 탓이기도 하지만, 소설가라고 형편이 나은 건 또 아니잖은가.


 실은, 문학인에게 박사학위는 교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이기도 하지만, 독자에게 자신의 책이 간택받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라고도 했다. 


 「피네간의 경야(1939)」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소설은 대체로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이다. 적어도 시처럼 전용 독해 강좌가 필요한 건 아니다.


 시는 매뉴얼과 공부가 필요할 정도로 소설에 비해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그런 공부를 거치고서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문학적 고찰을 통해 쓰인 글인지, 술에 취해 휘갈겨 쓰인 것인지 읽고 나서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박사학위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은 안다. 책 귀퉁이에 박힌 문학박사 학위는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인증마크다. 그러니 시인은 학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건, 다른 경력이나 작가 자신의 글보다도 강력한 것이니까.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애니메이션 「나루토(2002)」 中. 


마법도 혈통, 출판도 혈통! 


 그런데 학위가 아닌 혈통에 의해서도 흥행이 결정되기도 한다.


 유명 환타지 소설 타라 덩컨 시리즈. 오랫동안 준비한 소설을 겨우 출간하려 했으나, 하필 이미 흥행하고 있던 해리 포터 시리즈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아 마법 학교 이야기 등을 삭제하고 고치는 등, 출간까지 15년이 걸렸다는 비운의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책에 얽힌 비화만큼이나 유명한 건 작가 그 자신인데, 작가 소피 오두앵-마미코니앙Sophie Audouin-Mamikonian은 아르메니아 왕가의 계승권을 가진 사람. 즉, 공주님이라고 한다. 이 자체로 너무나 굉장하다. 공주님이 들려주는 마법 세계 이야기. 이걸 어떻게 안 볼 수 있을까. 


 그 효과가 너무 굉장해, 일본의 왕자가 라이트노벨을 쓴다는 기사를 보고 그 책도 그런 권위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마케팅은 어떤 식으로 하게 될까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당시 왕자는 중학생이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어린 나이에 재미로 소설을 쓰던 게 기사화되었을 뿐이었고,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관둔 모양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퀘이사존.


작가는 상품, 작품은 부록이 된 시대


 작품의 질을 떠나서, 아니, 작품을 접하기 이전에 작가를 보고 책을 고르는 시대이다. 새로 나오는 책만 해도 너무 많지만*, 돈도 시간도 제한된 탓에 읽을 만한 걸 미리 독자 나름 솎아낼 수밖에. 

 * 2020년 신간 발행 종수는 65,792종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2021년 한국출판연감」, 2021-12-10.


 그런데, 하버드 교수도 아니고, 왕가의 혈통도 아닌 평범한 작가들의 작품이 선택받을 일은 영영 없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없으면 만들면 되는 일이다. 화려한 스펙을 대신할 자신만의 이야기를.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한국경제, <해리포터 20주년 호그와트서 첫 동문회 연다…조앤 롤링은 불참>, 2021-11-19.


 딸 분유 살 돈도 없어 굶어가는 한부모 가정의 어머니가 쓴 마법 학교 이야기 해리 포터까지 갈 것 없이, 한국에도 이런 사례는 있다. 치매를 걱정하며, 치매를 대비해 손녀와 매일 영상으로 추억을 남기고자 했던 할머니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 정을 나누는 모습으로 위로를 받은 많은 이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손녀와 할머니가 그동안의 이야기를 담아 쓴 책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수 없다(2019)」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각종 도서 판매 플랫폼에서 2019년 최고의 책에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차라리 공모전이 더 쉬운 길이 아닐까 싶은 성공 스토리라 부담된다면, 쉬운 방법도 있다. 인터넷 뉴스란에 시 한 수로 감상을 남긴 댓글시인 제페토처럼, 자신만의 콘텐츠로 승부해도 좋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TBS 뉴스.


 댓글시인이라는 호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그 쇳물 쓰지 마라(2016)」에 실린, 웹에서 자주 회자되는 시 몇 수를 제외하곤 읽어본 적 없더라도, 출간됐을 때 사람들은 "아, 그때 그 시", "아, 그때 그 사람." 등의 말로 추억하며 그의 시집을 손에 들었다.


 인터넷 댓글란이라는 현대인의 일상 영역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 독자들이다. 그렇기에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값진 호칭을 얻었다. 그리고 그런 기억의 공유는 매일 같이 웹에 시를 남기는 그의 꾸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기소개서가 변변찮아도 근속 연수가 길면 고용인들이 선호하는 것처럼, 작가도 타이틀이 변변찮아도 몇 년을 썼다. 몇 개의 작품을 썼다. 한다면, 벌써 그것만으로도 신뢰가 가지 않는가? 최소한, 글 쓰는 사람이라면 꾸준함을 믿고 견디어야 할 것이다. 문학을 숭배하는 구도자의 자세라는 말을 빼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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