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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의 반딧불이 May 11. 2022

《말해! 누굴 생각했지?: 호모 팬픽셔니쿠스》


 "말해! 누굴 생각했지?"

 어느 날, 한 게임 커뮤니티에 소설 하나가 쏘아 올려졌다.


 세계적인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2004)」의 이야기. 트위터의 140자 소설처럼 댓글로 연재된 소설로, 금지된 마법을 쓴 죄로 일만 년 동안 지하감옥에 유폐되었던 주인공, 일리단 스톰레이지의 이야기이다.  


 일만 년 동안의 수감생활 중에도 일리단은, 자신이 사모하는 여인인 동시에 자신의 형수인 티란데를 잊지 않으려 하나, 간수 마이에브는 고압적인 태도로 복종을 요구한다. 복종은 복종이되, 성적인 복종이라.


 하복부에서 불끈 솟아 도드라지는 남성의 굴곡과, 그에 반응해 자신의 입술을 적시는 여성의 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올려다보고 또 올려보는 일리단. 그리고 채찍을 든 채 뾰족한 구두굽으로 남성을 자극하는 마이에브.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스포츠경향, 박은경, <性의 작가' 마광수가 돌아왔다>, 2008-09-05.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폭력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알던 무자비하고도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다. 오래전 마광수 교수가 말한 것과 같은, '사도마조히즘적인, 사랑의 부드러운 폭력'이다. 폭력은 폭력이되, 합의된 폭력. 애정의 선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자극으로 그치는 폭력.


 그러므로 이 공간에서 둘은 단순한 죄수와 간수가 아니다. 모든 사회적 직위와 주박도 없이 그저, 남성과 여성으로 남은 두 존재일 뿐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는 폭력도 성관계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과 저항, 대립이 아닌 복종의 쾌락과 지배의 쾌락만이 어우러지는 사랑의 자리가 된다. 아, 얽어맴이 오히려 남녀에게서 모든 굴레와 속박을 없애고 쾌락만을 남게 한다니. 이 아이러니란.


 묶여있어 저항할 수 없는 남자와, 일방적으로 남자의 육체를 지배할 수 있는 여자. 조금의 몸부림도 없는 남자의 육체는 일견 비참해 보이나, 그것은 포기가 아닌 암묵적인 동의. 오랜 감금과 세월도 녹슬게 하지 못한 남성의 혈기가 꺾은 저항 의지. 어느 부분에서도 주도권을 갖지 못했지만, 불행하진 않다. 둘 모두에게 쾌락이 약속되어있음을 알기에.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디스패치, <전투기 조종사 비상탈출시 실제 일어나는 일 7가지>, 2017-04-17.


 그러나 이야기는 본 게임에 돌입할 찰나에, 그것으로 끝난다. 화자는 이야기의 장을 박차고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자 자신도 끓어오르는 남성의 혈기를 주체하지 못한 탓이었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캐릭터의 특성에 걸맞게, 적절한 의성어의 활용으로 청각적 재미를 살린 이 소설은 그렇게 끝나버려 결말도 제목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급기야 원작 캐릭터의 이미지를 바꾸어놓기에 이른다.


 짝사랑을 자신의 형이 먼저 채어 가버렸기에 앓는 가슴. 그리고 그 애정을 일만 년 동안 가슴에 간직한 순정남 일리단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동료와 부하를 죽인 원수를 쫓는 간수 마이에브의 이야기.


 참으로 비극적이고도 진중한 캐릭터들이었건만, 팬픽션이 감옥이라는 이야기의 공백을 핑크빛으로 덧칠해버린 탓에, 팬들은 더 이상 그 캐릭터들을 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WOWhead.com.


 그래픽을 개선해 재출시한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2020)」에서 마이에브의 직책이었던 감시관 캐릭터가 원래 쓰던 무기인 차크람 대신 채찍을 들고 나오기도 했는데, 그것을 본 한국 팬들은 감시관의 채찍을 보자마자 그 소설을 떠올릴 정도였다.


 팬픽션에서 왜곡된 애정관계가 원체 매력적이었던지, 해당 게임을 만든 블리자드 사에서 팬서비스로 문제의 대사, "말해! 누굴 생각했지!"를 음성화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팬픽션의 영향력이 이토록 강해 원작을 잡아먹을 정도가 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팬픽션, 새로운 세계를 열다.


 그런데 이렇게 팬픽션이 원작만큼이나 존재감이 강해지고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는 일이 예외적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드문 경우는 또 아니다.  


 영국의 유명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1)」 또한 이런 경우에 속한다. 본래 미국 소설 「트와일라잇(2005)」의 팬픽션으로, 이 소설 또한 팬에 의해 갑자기 쓰인 소설이었다. 벨라와 에드워드의 육체관계가 중심인 관능소설.


 너무나 인기가 좋아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는 등, 원작의 흔적을 쳐내고 고쳐 출간한 것이 현재의 소설이다. 자비출판에 전자출판과 주문형 인쇄*로 시작했으나, 그런 불리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4천만 부가 팔리고, 37개국에 번역 출간될 정도로 큰 흥행을 맞았다. 책의 성공 요인을 읽을 때 표지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기도 용이한 전자출판물의 특성에서 찾기도 하지만, 종이책으로도 많이 팔린 걸 보면 고개가 쉽게 끄덕여지진 않는다.

 * 주문형 인쇄: POD, Print on demand. 미리 출판해 서점 등에 진열해두어 판매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구매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인쇄해 판매하는 방식.


 워낙 큰 히트를 쳤기 때문에 많은 이슈거리를 양산했는데, 개중 특이한 이력이 있다면 책의 흥행과 함께 병원도 바빠진 사건. 성인용품으로 인한 부상자가 책의 출간 이후 증가**한 일이다. 소설의 행위를 흉내 낸 연인들이 겪은 사고였다. 남성 부상자 비율이 높은 건 재현의 문제로, 소설 속에서 남성이 피학자이기 때문이라고.

 ** 크리스토퍼 잉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Sex toy injuries surged after ‘Fifty Shades of Grey’ was published》, 2015.02.10.,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nk/wp/2015/02/10/sex-toy-injuries-surged-after-fifty-shades-of-grey-was-published/.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BKAContent.


팬픽션, 놀이가 되다.


 콘텐츠에 푹 빠져, 자신도 이런 것을 써보면 좋겠다고 달콤한 몽상과 함께 비밀노트의 끄적임으로만 남았던 팬픽션이, 인터넷 보급이 된 지금은 공개적인 놀이가 됐다. 작가들이 쌓아 올린 세계를 독자들이 자신의 상상대로,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고 즐긴다.


 이제 소설은 잘 교육받은 작가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일만의 독자가 있다면, 일만의 작가가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작품을 접하고 나서 내면에서 움트는 창작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창작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창작의 자유와 해방을 이룬 지금 시대를 일컫는 말 또한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창의성을 타고난 소수의 팬픽션 창작자의 존재로만 생긴 것은 아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1500)」, 위키백과.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 뒤러의 자화상. 감히 왕도 아닌 자가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를, 감히 일개 인간이 자신의 얼굴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려내었다. 굉장히 불경스러운 작품이건만, 작품은 찬사를 받고 지금까지 보존되었다. 그것은 그러한 금기의 파괴를 용인해준 시대와 사회의 덕이다.


 현장성과 소통이 용이한 다른 예술에 비해 살아남기 어렵다는 문학. 특성상 참여형 예술이 불가능하기에 돌파구가 없다 말은 하지만, 실은 이미 답이 나와 있던 것은 아닐까?  


 그저, 자유의 공기만 조금 더 불어넣어 주면 되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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