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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의 반딧불이 Aug 11. 2022

『사신 짱 드롭킥(2012)』: 덕질에 나이는 상관없다

출처: 【公式】邪神ちゃんねる 유튜브, https://youtu.be/gjrziONm91o, 검색일자: 2022-08-11.


 요즘 유튜브가 만화로 떠들썩하다. 원인은 『사신 짱 드롭킥!(2012)』 시리즈.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인기 캐릭터 하츠네 미쿠가 등장한 방영분이 공개됐는데, 오랜만에 영상에 등장한 미쿠 캐릭터가 뭇 마니아들의 추억과 흥미를 자극하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만화만큼이나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기행도 유명하다. 미쿠가 등장한 방영분을 다른 유튜버가 캡처하여 업로드해 1천만 조회수를 올리자, 제작사는 게재 중단 요청을 하는 대신 『사신 짱 드롭킥』 애니메이션을 영상 클립 100개로 나누어 한 번에 업로드했다. 조회수를 빼앗길 수 없다며 아예 미방영분까지 방영 전에 공개했으니, 기행도 이런 기행이 없다.


 하츠네 미쿠는 원작 만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이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깜짝 출연시킨 것이다. 이런 콜라보가 가능했던 배경이 이채로운데, 그건 만화의 구성 때문이라고 한다.


 『사신 짱 드롭킥』은 예쁜 캐릭터가 잔뜩 나와서 왁자지껄 노는 옴니버스 구성의 코미디 만화이기 때문에, 중간에 무얼 구겨넣어도 어색함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다른 캐릭터가 깜짝 등장해도 분위기가 망가지지 않는다고. 


 캐릭터와 구성 그리고 유머가 원체 강력한 모양인지, 무려 10년이나 연재한 장수만화라고 한다. 200화가 넘는 분량*의 근성도 그렇고, 유머부터가 확실히 재밌다. 

* COMICメテオ, https://comic-meteor.jp/jyashin/, 검색일자: 2022-08-11.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Erich Sayers 아트스테이션, https://www.artstation.com/artwork/bD9mm, 검색일자: 2022-08-11.


 캐릭터 디자인도 이채로운데, 그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건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를 차용한 캐릭터 메듀사(メデューサ).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는 눈을 마주치면 몸이 돌로 변해 굳고, 머리카락이 뱀으로 이루어져있다. 작가는 저 두 조건만 만족하면 된다는 것에 착안해, 캐릭터를 뒤틀었다.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드는 대신 고대 이집트 느낌의 뱀 모양 머리 장식을 달아 간소화했고, 통일성을 맞추기 위해 이집트 무희 같은 복장을 입혔다.


 이런 예쁜 그림과는 별개로, 팬들은 이 만화의 유머센스가 굉장히 낡았다고 지적한다. 해당 만화를 재미있게 보는 팬들조차 그의 낡은 개그센스를 놀리는 걸 하나의 콘텐츠로 삼을 정도이다. 


 그런데, 만화를 즐겨보면서도 작가를 놀려먹을 정도라니. 어느 정도이길래 독자들이 됐을까?




Old but Reliable, 낡았지만 확실한 유머


 진보초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소녀·하나조노 유리네에 의해 어느 날 강제로 인간계에 소환돼버린 마계의 악마·사신 짱. 그런데, 유리네는 소환 주문만 알고 귀환 주문은 알지 못해 사신 짱은 마계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유리네의 좁다란 집에서 눌러살게 된다. 하지만 사신 짱은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소환된 악마는, 소환자가 죽으면 마계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리하여 유리네에게 사신 짱 필살의 드롭킥이 작렬할―예정이었지만……?!**

** 『사신 짱 드롭킥』의 시놉시스.: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63893691&orderClick=LOA&Kc=, 검색일자: 2022-08-11.


 이야기의 틀 자체는 단순하다. 사신 잔(邪神ちゃん)이 공격을 하고, 유리네는 가뿐하게 방어 후 사신 잔을 무자비하게 응징한다. 패턴이 굉장히 뻔한데, 귀여운 그림에 어울리지 않게 잔혹하다. 잔인함이 너무 과하기 때문에 처음엔 생각 외의 전개에 웃게 되지만, 두 번째부터는 그저 그렇다.


 팬들이 낡았다고 말하는 건 이런 패턴. 사실 일본 만화계에서 굉장히 오래 전에 유행한 패턴의 유머였기 때문에, 지금은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 말고는 주인공 일행이 하나 둘 씩 추가되면서, 각자의 에피소드와 만담이 주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는 평온한 풍경을 감상하는 게 주가 된다.


 게다가 어쩐지 패러디하는 작품이나 대상도 연식이 오래된 것들이고, 경마, 경정, 파친코 등에 빠져사는 백수 아저씨 캐릭터를 미녀로 치환한 것도, 센스와 방법이 낡았다고 지적받는 원인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런 익숙할 정도로 낡은 것들이 오히려 재미의 비결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만화를 캐릭터만큼이나 가득 채운 건 말장난인데, 이게 워낙 낡아빠진 데다 센스도 일반적이지 않아 독자들의 표적이 된다.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출처: ユキヲ 트위터 공식계정, https://twitter.com/pentarouX/status/1493783307242590208.


 "何だと〜? パンダと〜? パンデモニウムだと〜?"


 해당 만화에서 등장하는 유머 중 하나***인데, 국문 표기로 옮기면 "난다토~? 판다토~? 판데모니우무다토~?"인데, 의미를 그대로 번역하면 "뭐라고~? 판다라고~? 판데모니움이라고~?" 라는 문장이 된다.

 *** 사신 짱 드롭킥 208화.: ユキヲ 트위터 공식계정, https://twitter.com/pentarouX/status/1493783307242590208, 검색일자: 2022-08-11.


 이 유머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워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지만, 의외로 쉽다. 두운과 각운이 맞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운율의 재미을 즐기는 언어유희이므로, 직접 발음하며 운율을 즐기면 된다.


 그래서 해당 만화의 한국 팬덤은 일본어 운율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난다토? 판다토? 판데모니움다토?'로 표기해 사용한다.


 이 유머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부조화 이론(Incongruity Theory)


 유머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로 부조화 이론이 있는데, 부조화 이론은 논리적으로 쉽게 연결되지 않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 사람들은 갈등 또는 모순 (Incongruity)을 경험하고 그것이 해소(Resolution)되면서 웃음을 터뜨린다는 개념이다.**** 즉, 웃음은 설명이 제공되지않거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인식되는 상황(Realization)과 상황 이해를 통해 깨닫거나 설명이 제공됨으로써 알게 되는 결과(Resolution)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 M.P.Mulder and A.Nijholt, Humour Research:State of the Art, 2002, pp3~6; 유연수 외, 「유머 이론에 기반한 어뮤징 인터랙션에 대한 연구」, 『한국HCI학회 학술대회』, 한국HCI학회, 2012, No.1, p.827에서 재인용.

***** 유연수, 같은 글.


 해당 대사가 나온 건 메듀사(メデューサ)가 사신 잔(邪神ちゃん) 일행에게 수제 초콜릿을 나눠주는 장면이다. 사신 잔이 수제라고는 해도 초보적인 것이니 자랑하지 말라며 면박을 주자, 페르세포네 2세(ペルセポネ2世)가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조차 안 해주느냐며 사신 잔을 가볍게 힐난한다. 이에 사신 잔은 짜증을 내며 상기의 대사 "何だと〜? パンダと〜? パンデモニウムだと〜?"를 외친다.


 짜증과 항의의 표시로써 "何だと〜?"가 쓰인다. 이는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신 잔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사이다. 조금만 짜증이 나도 발끈해 험한 말과 폭력을 일삼는 모습을 항시 보여주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내는 일은 독자의 예상범위에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이 이 단계에선 모순도 갈등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계가 없다면 유머는 작동하지 않는다. 빅터 라스킨(Victor Raskin)의 『유머의 의미론적 작동원리(Semantic Mechanisms of Humor, 1984)』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부조화 이론이 작동하려면 상반되는 두 개의 상황. 즉, 예상된 내용과 예상치 못한 내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화 상황을 해결하는 건 펀치라인(Punchline)이다. 독자는 부조화적인 상황에서 펀치라인에 의해 급속한 전환을 이룬다. 이로써 부조화 상황으로 인한 긴장이 풀어지고,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 이철, 「TV 유머광고의 소비자 정보처리원칙과 유머광고 내용분석」, 『광고학연구』, 한국광고학회, 1991, Vol2 No.1, p.15. 


 그러한 불일치상황을 제공하는 건 "何だと〜?"에 이어 등장한 "パンダと〜?"이다. "パンダと〜?" 라는 말은 짜증의 말 뒤에 나올 말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외성으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래도 이 단계에선 혼란과 동시에 해소가 이루어진다. 두 문장 모두 글자 수가 4자로 같은 데다, 끝이 だと로 각운이 맞는다. 즉, 펀치라인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음운을 이용한 언어유희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パンダと〜?"를 통해 "빵이라고~?(パンだと〜?)" 라는 문장 또한 유도될 수 있고, 이 또한 의외성을 찌르긴 하나, "パンダ" 부분을 확실히 하기 위해 だ를 ダ로 표기하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해소된 이후에 독자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何だと〜?"와 "パンダと〜?"에 이어 마지막으로 사신 잔이 "パンデモニウムだと〜?" 라는 문장으로 유머의 마지막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パンダと〜?" 다음으로 온 "パンデモニウムだと〜?"는 모순과 해소를 다시금 부수고 모순을 만든다. 판다 뒤에 판데모니움이 나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곧 독자는 인지한다. "何だと〜?"와 "パンダ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엔 "パンダと〜?"와 "パンデモニウムだと〜?" 라는 두 문장이 パン으로 두운이, だと로 각운이 맞음을 알아낸다. 이렇게 다시 독자의 긴장은 해소된다.


 이 밖에도 '산타가 아니라 사타' 같은 재미난 언어유희가 잔뜩 있다.*******

******* 산타(サンタ)의 サン이 일본어의 3(さん, 산)과 같은 걸 이용한 언어유희.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iStock.


늙은 작가, 그러나 늦지는 않은 작가


 사실, 소개하고 싶었던 건 작품보다는 작가였다. 작가 유키오(ユキヲ)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신원 은폐는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팬들이 추론한 나이를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팬들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각종 패러디의 연식, 주식보다 파친코와 경마 등에 익숙한 점 등을 근거로 추측한 결과는 무려 71세! 아버지뻘보다는 할아버지뻘의 어르신이었다.


 나는 그의 나이를 보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럴 수가. 


 이 나이 먹고 이래도 되나 하면서, 내 주제에 이래도 되나, 항상 남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요구받고, 충족시키지 못하면 경멸의 눈초리를 받는데, 나이 지긋하게 먹은 어르신이 이런 걸 그린다면 주변 시선은 어떨까. 그걸 감내하고, 그저 하고 싶은 일만 바라보며 전진했다는 것 아닌가.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위키백과.


 1951년생이, 70년대부터 그림을 그리며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연재처를 이리저리 옮기고, 일감을 받아가며 근근이 살다가, 『사신 짱 드롭킥!(2012)』의 연재를 10년 동안 꾸준히 하여 200화가 넘는 기록을 갱신한 끝에, 비로소 그의 눈물을 닦아줄 부와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그림으로 말이다. 근성으로 승리한 인간 승리의 표본을 보고, 나는 감동으로 목이 메었다.


 잠깐,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1951년생이라는 건 조금 이상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작가 유키오의 경력은 2004년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18세에 데뷔했어도 40세. 30세에 데뷔했어도 49세. 앞서 언급한 추론보다는 적은 편이다.

******** 위키백과, https://ja.wikipedia.org/wiki/%E3%83%A6%E3%82%AD%E3%83%B2, 검색일자: 2022-08-11.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나이가 든 편이다. 아, 다시 감동으로 목이 메인다.


 어쨌든 체면때문에 눈치보느라, 나쁜 일이 아닌데도 망설이다 하지 못하고, 결국 영영 놓아버린 일이 많지 않은가. 그것은 삶을 제대로 즐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산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 성공한 작가 유키오처럼, 우리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어떨까.


 자신에게 항상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행복을 쟁취하는 유일한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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