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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드림 Dec 22. 2021

ep 01. 맥주과 목폴라 교수님

<사장은 오늘도 혼자서 웁니다.>

 4522개.


 2020년 7월 기준, 게스트하우스를 포함한 제주도 내 농어촌 민박 시설의 개수다. 정식적으로 등록된 곳만 이 정도라고 하니 사실 미등록한 곳까지 합치면 대략 6천 곳은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그 수많은 민박 시설 중 새롭게 오픈한 우리 게스트하우스(편의상 게하라고 겠다.)는 마치 기획사 없이 데뷔한 신인 아이돌 그룹처럼 단번에 주목을 받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던 건, 내 얼굴이 잘생기진 않았어도 우리 건물은 그 어떤 건물들보다 이뻤던 덕에 오픈 첫날부터 두 분의 예약자분들이 찾아주셨다. 첫 사업의 첫 손님.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언제 오시나요?"

 "저녁은 드셨나요?"


 귀찮을 법도 했을 몇 번의 통화에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신 두 손님은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 게하는 저녁 파티가 있는 숙소였고 내가 음식도 하였기에 첫 손님에게 무언가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마침 저녁을 안 드시고 오신 터라 정성스럽게 나가사키 탕과 오꼬노미야끼를 대접했다. 그렇게 직원을 포함한 우리 네 사람은 8시 즈음부터 새벽까지 여행의 설렘과 오픈 날의 설렘을 함께 공유하며 시간 가는지도 모를 만큼 즐거움 밤을 보냈다.


 '이게 생각만 했던 게스트하우스의 즐거움인가.'


 꿈만 같았던 첫날이 지난 다음 날 아침. 나는 두 사람의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꼭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내 생에 첫 손님을 보냈다. 10월에 시원한 바람과 눈앞에 펼쳐진 제주 바다, 그리고 내 가게에 온 손님과의 인사.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고, 분명 내 귀에는 BGM이 들려왔던 것도 같았다.


 그렇게 행복한 며칠을 보낸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부푼 기대와 함께 예약 창을 켰다. 오늘의 숙박 예약자는 10명. 파티 신청은 무려 9분의 손님이 해주셨다. 우리의 파티 시간은 1차인 고기 파티가 7~9시, 2차인 안주를 곁들인 간단한 술자리가 9~11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날은 9분 모두 1, 2차를 신청하셨다. 7시가 되고 한두 명씩 파티룸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대하다 보면 가끔 말투에서 싸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않은가. 유난히 그날 한 분의 남자분에게 체크인 때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직원이 주방으로 들어와 속삭이듯 얘기를 꺼냈다.


 "사장님. 저기 목폴라 입고 계신 분. 아... 뭔가 좀 싸한데요?"

 "너도 느꼈니? 나도 느꼈다.... 일단 지켜보자."


 그렇게 여자 5분, 남자 4분이 함께 고기를 구우며 파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이구요. 오늘 제주에 도착했어요. 친구랑 왔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아 저희는 서울에서요...."


 어색한 대화가 한동안 이루어져 다들 답답했는지 술을 조금 더 시키기 시작했다. 어색함을 풀기엔 역시 술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 1차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2차 요리를 준비하고 있기에 밖의 진행을 우리 직원에게 맡기고 있었는데 직원이 다급하게 주방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지금 분위기 완전 똥이에요!"

 "어? 왜?"

 "아까 그 불안하고 했던 분 있잖아요. 지금 40분 동안 혼자 얘기하시는데요?"


 요리를 잠깐 멈추고 밖의 상황을 살폈다. 여성분들의 표정이 고기를 먹고 있지만 마치 모래를 씹고 있는 듯했다. 비상사태였다. 일단 요리를 멈췄다. 앞치마를 벗지도 못하고 자리에 합석했다.


 "안녕하세요! 어휴, 제가 요리하느라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반갑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변경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행스럽게 다른 분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리를 해야 했던 나는 오랜 시간을 앉아있을 수는 없었기에 의도된 농담을 던졌다.


 "어우 주방에서 한 분 목소리만 들리길래 저는 또 혼자 계신 줄 알았어요 하하하. 저는 이제 요리하러 가야 해서 다들 지금처럼 잠깐만 즐기고 계세요."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한 표정은 살짝 감춘 채 나에게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어주셨다. 난 그렇게 잠깐의 대화 후에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2차가 시작된 후부터였다. 2차 요리를 끝내고 9시 반쯤 나는 파티에 합석했다. 다른 분들은 술을 많이 드시지 않은 상태였는데, 문제의 그분이 맥주를 이미 2,500cc 정도 마시고 취기가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직원에게 눈빛으로 무언의 메세지를 보냈다. 더 이상 술은 안 되겠어. 직원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술도 좀 깨울 겸 말을 걸었다.


 "어우 많이 드셨네요. 술을 잘 드시는 편이신가 봐요?"

 "맥주요? 맥주로 취하는 사람도 있나요?"


 대학교 시절 과팅을 나가면 항상 폭탄 제거반이라는 담당이 있었다. 가장 외모적으로나 성격적으로 별로인 사람을 일단 누군가 한 명이 담당해서 끌고 나가야 하는 역할이었는데, 그때도 난 폭탄 제거반 담당을 도맡아 하곤 했다. 대학생 시절 장기를 살려 그를 재우기 위한 전략을 머릿속에서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최대한 먹이지 않는 쪽으로 방어 전략을 짜려고 했지만 적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내가 방어 전선을 구축하기도 전에 선제공격이 들어왔다.


 "사장님, 맥주 한 잔 더 주세요."

 "아... 조금만 있다가 천천히 드시는 건 어떠세요? 우리 아직 시간 많아요."

 "왜요? 취한 것 같아요? 이걸로? 내가?"

취한 그에게 거품은 이정도가 적당했을까...

 몇 번의 정중한 거절에도 기어코 맥주를 먹어야 하겠단다. 하지만 인사불성 정도는 아니었기에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맥주 500cc를 가져다주었다. 그때 그의 쉴 틈 없는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니 근데 사장님, 직원도 그렇고. 맥주 안 따라 보셨어요?"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나요?"

 "맥주 따를 줄도 모르시네...."

 "아직 초반이라 조금 미흡했나 봐요. 죄송합니다."


 그 말에 옆에 계셨던 나이가 좀 있으신 손님께서 같이 협 력방어를 시작해주셨다.

 

 "이 정도면 잘 따른 거 아닌가요? 다른 술집보다 잘 따르시는 것 같은데요."

 "형님! 형님 맥줏집 알바해 보셨어요? 안 해봤으면 그냥 조용히 계세요."

 

 취한 그에겐 이제 나이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오직 맥주. 맥주에 꽂혀버렸다. 그때부터 그의 반말 섞인 맥주 강의가 시작되었다.


 "맥주. 일단 시원해야 해. 근데 시원하긴 해! 근데 거품의 cm가 좀 아쉬워. 자 보세요. 거품은 이 정도. 오케이? 이 정도는 담아줘야지. 보통 맥줏집에서 알바를 해보면......(생략)"


 2차 파티에 주어진 2시간이란 시간 동안 그의 맥주 강의는 20분이나 지속이 되었고, 나를 포함한 다른 손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20분의 강의 시간을 꽉꽉 채운 뒤 수업은 종료되었다. 여성 고객들은 따로 나를 불러 불편하다며 항의했고 결국 나는 '맥주과 목폴라 교수님'을 3차가 없다는 거짓말로 속여 겨우겨우 잠을 재웠다. 3차에 나가 다른 손님들께 미숙한 저의 대처로 인해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를 드렸고, 다행스럽게도 다들 괜찮다며 고생하셨다고 말해 주셨다.


 첫 진상 손님이었다. 파티룸에 돌아왔을 때 남은 것이라곤, 20분의 강의 동안 깨져버린 맥주잔의 잔 파편들과 내 멘탈뿐이었다. 쓸쓸히 청소를 마무리하고 방에 들어와 혼자 20분간 앉아서 명상을 했다. 그땐 정말 잠깐 부처님이 보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고된 하루가 끝이 났다.


 다음 날 아침, 체크 아웃 시간. 그분은 세상 젠틀한 모습으로 재밌게 놀고 간다며 인사를 하고 가셨다. 뭐, 그래도 잘 놀고 가셨다니 다행이다. 다른 분들께도 다시 한번 사과의 인사와 함께 무사히 체크아웃을 마쳤다. 폭풍이 몰아치고 난 후의 잠잠해진 바다처럼 아무도 없는 숙소 안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다. 때마침 멀리서 들려오는 직원의 파이팅 있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뒤, 새롭게 올 오늘의 손님을 위한 청소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이 정도의 진상은 그저 사전 연습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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