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랜드의 자리 싸움
보증금 500에, 월세 100입니다.
여기가 누구 땅이니, 이게 누구 건물이니,
부동산 싸움이 현실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오픈한 지 21년이 지난 게임에서도 땅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메이플랜드'는 2004년 정식 런칭한 '메이플스토리'의 클래식 버전으로,
빅뱅 패치 이전 2010년대의 감성을 그대로 재현한 과거 메이플스토리이다.
간단히 말해, 맥도날드 1955 버거처럼 과거 그때의 가격과 감성 그대로 재출시된,
어떻게 보면 메이플스토리의 근본이라면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몬스터, 사냥터, 직업까지 모든 것은 과거 그대로였지만, 유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메이플스토리를 즐겼던 그 시대 유저들은 이제 어느덧 30대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메이플스토리에는 2004년 오픈 초기부터 고질적인 자리 문제가 있었다.
자리 문제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메이플스토리 내에서는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사냥터가 한정적이었고, 좋은 아이템을 주는 몬스터가 나오는 인기 있는 사냥터에는
당연히 많은 유저가 몰렸기에, 누가 이 사냥터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자리 개념'이 필요했다.
먼저 온 유저가 자리를 선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다른 유저들은 때로는 자리 주인에게
자리를 구입하거나, 때때로는 자리를 무단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뭐 어렸을 때니까.
하지만, 지금의 메이플랜드는 평균 연령 30세의 직장인 남성을 주 유저층으로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그 자리 문화는 여전하지만, 이게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10년 전처럼 자리를 멋대로 빼앗아 사냥하는 것은 엄연히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편,
자리를 무슨 현실 부동산처럼 거래하는 유저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현금 수백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아이템 '레드 크리븐'이 드랍되는 사냥터의 경우,
통으로 판매하는 일명 '매매'도 있고, 보증금을 받고 시간 당 대여해주는 '월세'도 있다.
하루 자릿값이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30만 원을 찍으며, 자연스럽게 메이플랜드 부동산,
심지어 돈을 대여해주는 메이플랜드 사채업자까지 생기며, 메이플랜드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임이 아닌, 바로 지금의 현실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이게 진짜 메타버스가 아닐까 싶다.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어른이'들이 과거에 아쉽게 플레이했던 게임을
다시 맞이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아이템에 비용을 너그럽게 지불하는 것인데,
나의 경우만 해도 그 시절 PC게임을 하루에 한두 시간 플레이하는 것이 최대였을 때인지라,
그때의 갈증이 지금의 해소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심지어 요즘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 수익을 내는 소위 '쌀먹' 현상도 더해졌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 안타까운 것은 어린 시절 많은 학생 유저들의 향수를 간직한 이런 게임이
마치 도굴당한 듯이 돌아와서 현대의 자본주의 맛, 다시말해 K-게임 감성을 제대로
드링킹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최근 업데이트 전까지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돈 앞에 향수니 뭐니 장사없고, 레벨업이 최우선이 되는 이런 모습.
2025년을 살아가는 데에 이제 미덕이 아니고 필수인 것 같다.
그래도 그때의 메이플 키즈들이 다들 어른이 된 것 같아 좋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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