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헤어지고 버스를 탔다. 경미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대중교통이 무섭다. 어쩌다 공황장애가 생긴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새벽에 곡이 잘 써진답시고 남들과 정 반대의 수면패턴으로 몇 년간 살아온 결과인건지, 아니면 학창시절 버스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경험 때문인 건지, 둘 다 아니라 그냥 내가 우울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어서 그런지, 사실, 이유를 밝히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건, 나는 서울로 돌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야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혼자 앉는 자리를 예약했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12시 50분 차 이외에는 혼자 앉는 자리가 남아있는 시간이 없었다.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한 채 버스에 올랐다.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을 만졌다. 이 시간만큼은 내 앞에 놓인 직사각형의 검은 물체 하나에 나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 속 세상에 빠지면, 내가 밀폐된 공간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걸 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페이스북에 접속했더니 뷰티크리에이터 ‘새벽’이 죽었다는 기사가 떴다. 내가 참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세상을 낙관적으로 본 적이 없던 나는, 삶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뭐랄까,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 존경하게 되는 듯하다.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혈액암에 걸려 매일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가 빠져 가발만 쓰고 다녀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매일 다른 머리스타일로 살 수 있으니 오히려 행운이다’라 말하는 그녀를 난 항상 존경했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기사에는 ‘좋아요’가 많이 달렸다. 사람들은 친한 친구를 태그하며 충격이라는 말만 해댔다. 모두들 댓글을 달고, 게시물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눌렀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게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 죽음을 접하면, 그냥 숨이 턱 막힌다. 잠시 잊고 살던 기분이 다시금 나를 잠식한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마음이 미어지는데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이 죽어도 세상은 아무런 이상 없이 돌아간다는 게 기괴하게만 느껴진다. 분명 어제까지는 이 세계에서 함께 숨쉬며,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았을 사람이란 말이다. 이제 ‘새벽’이란 사람은 없는데, 그녀의 죽음 자체가 가십거리가 되고 있는 상황도, 그걸 여기저기 알리고 있는 기자라는 사람들도, 그리고 추모한답시고 여기저기 퍼 나르는 사람들도, 또 언젠간, 내가 없는 세상이 찾아올 거라는 불변의 진리도,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나 자신도, 모든 것이 기괴하다.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았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왔다.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숨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이 기괴하다면, 그리고 그 기괴한 세상을 그래도 견뎌내려면, 내가 꿈을 꾸는 수밖에 없으니까.
서울에 도착해서도 계속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니 어느덧 밤 10시가 되었다. 나의 정신이 가장 맑아지는, 동시에 감정은 가장 우울해지는 시간이 시작 되었다. 오늘은 이 늦은 밤을 또 어떤 기분으로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좋아하던, 하지만 이제는 영영 떠나버린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씩 떠올랐다. 내가 사랑했던 연예인 설리, 유튜버 새벽, 초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떠난 친구, 그리고 나의 삼촌까지. 아까 버스에서는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이 미어졌다. 이런 기분을 겪지 않고 삶이 여기서 마무리 되는 게 나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작정 애인의 집을 찾았다. 오늘은 왠지 혼자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와 함께 빗소리를 들으며,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ost를 틀어놓고,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누웠다.
“우울한 일요일 잠조차 들지 못하고
내 삶에 셀 수 없이 가득한 어둠만이 다정해라
작고 흰 꽃들은 그대를 깨워내지 못하리
슬픔의 검은 마차가 그대를 데리고 간 곳에서는
천사들이 내게 그대를 돌려줄리 없으니
내가 그대와 함께하겠다 마음먹는다면
천사들은 분노하려나
우울한 일요일
우울한 일요일, 어둠만이 내게 함께하네
내 마음과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끝내리라 마음먹었네
곧 촛불과 기도가 있으리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사람들은 말하리
그들을 울지 않게 하소서
내가 기쁘기 떠남을 알게 해 주소서
죽음은 단지 꿈이 아니며
죽음 속에서 나는 그대를 어루만지리
나의 마지막 숨결로서 나는 그대를 축복하네
우울한 일요일”
그래, 오늘은 숨 막히게 우울한 일요일이다. 사람이 살고 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의 죽음에 지금 당장 눈물 흘리는 이들도 나중에 언젠간 사라질테고, 나도, 너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도, 혹은 ‘정지원’이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이 세상 대부분의 인간들도, 언젠간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겠지. 죽는다는 걸 앎에도 살아가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라고 했다. 항상 미래를 계획하며 사는데, 나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내가 꿈꾸는 그 달콤한 ‘미래’라는 것의 끝은 결국 죽음이라는 걸 깨닫는 날에는, 오늘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아, 이게 다 뭘까’라는 단말마의 탄식만 끊임없이 내뱉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