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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Feb 04.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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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은 덩치가 컸다. 얼굴에 살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눈을 크게 뜨면 사찰 입구에서  수 있는 목조 조각상을 닮았다.

“매체가 어디라고요?”

사천왕 같은 본부장이 동희를 바라보았다.

“월간 라이프저니 정동희 기자님이심더.”

사천왕이 미소 짓는 계장을 노려보았다. 계장이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기사는 언제 나옵니까?”

“다음 달입니다.”

잠시 천장을 올려보던 사천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얼마 전에 드림캐리어 특집 기사를 실었던 곳 아닌가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요란한 구두 소리가 났다.

“뭐라고요? 누군가 우리 네트워크 망을 이용해 위험한 짓거리를 한다고요?”

본부장의 안색이 붉게 변했다. 사천왕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얼굴을 가진 조각과 닮아가고 있었다. 동희 옆에 앉아있던 계장이 자신의 상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갑자기 사천왕 얼굴 근육이 풀어지며 웃음이 터졌다. 눈치를 보던 계장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한참 웃던 사천왕이 입을 열었다.

“기자님!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 말씀이 믿기시지 않겠지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이요?”

“네 충분한 가능성입니다.” 동희 목소리는 작아졌다.

“그래서 우리더러 뭘 어쩌라는 겁니까?”

“오늘 정오를 기해 일시적인 통신망 차단을 검토해 달라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전국적인 통신망 차단까지도…….”

사천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계장을 쳐다보았다. 계장이 눈을 치켜뜨고 입 꼬리는 내리고 어깨는 올렸다.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동희를 내쫓을 기세였다.

“그러니까 누군가 우리 전파망을 이용해 위험한 짓거리를 할 거라는 그 가능성 하나로, 오늘 정오를 기해 잠시 동안만이라도 전파 망을 차단해 달라 이 말씀이시지요?”

동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사천왕과 계장이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본부장실 문밖에 선 정장 4명에게도 들렸다. 본부장실 방에 걸린 시계는 11시 15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헛소리를 기자님께 제보했습니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전파망을 통해 위험한 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돈을 낚아채고, 개인의 사적 정보를 털어가고, 음란물을 주고받고, 위험한 바이러스를 뿌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이런 위험한 일들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전파망을 멈춰달라 하진 않아요. 무슨 근거로, 그 가능성이라는 것이 발생할 확률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지만……”

“압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처럼 들리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본부장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안 사람들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직원 한 명이 밖에서 문을 열었다. 뒤에 정장 4명이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팔자걸음으로 본부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머지 정장들도 그 뒤를 따랐다. 동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구석으로 뒷걸음쳤다.

“정동희 기자님!” 팔자걸음이 말했다.

“당신은 누굽니까?”

정장 중 한 명이 사천왕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아니, 아침부터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겁먹은 사천왕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컸다.

“지금 여기 있는 정동희 기자는 저희가 쫓고 있는 이적 행위자를 방조한 혐의로 역시 수배 대상입니다.”

사천왕이 동희와 팔자걸음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동희가 양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후에 저를 어떻게 하시던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 메일을 보낸 사람과 무관합니다. 그리고 메일을 보낸 자는 남파 간첩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자가 칩을 통해 대한민국을 교란하려 했고, 결국엔 모든 칩을 무력화시켜 그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입니다. 전국의 통신망을 통해서요. 그 일을 막는 길은 오늘 정오를 기해 일시적으로 전국의 모든 통신망을 차단시키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저는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여러분들까지 이리로 오게 한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발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동희가 팔자걸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뭐 어떻게 한다고 해도 서울 시내 일부만 차단됩니다. 게다가 저희들에겐 그럴 권한조차 없고요. 본사에 협조를 요청하기에도 시간 여유가 없는 것 같군요.” 대충 사태 파악을 한 사천왕이 침착하게 말했다.

“정동희 기자님, 좋습니다. 그럴듯합니다. 기자님 생각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은 정동희 기자님이 이적행위자와 관련이 없다면 왜 저희들을 그토록 피해, 도망 다니신 겁니까? 그리고 가지고 계신 카메라에서 나온 전파 차단용 칩은 무엇인가요? 정동희 기자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 듣고 보니 떠오르는 또 하나의 가설이 있군요. 만일 정동희 기자님이 말씀하신 그 내용도 하나의 미끼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대로 그 이적행위자가 전국의 모든 통신망을 차단케 하고, 그 사이 대한민국의 네트워크를 교란할 짓을 꾸민다는 가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엔 팔자걸음이 동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말도 그럴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을 오시라고 한 것 아니겠습니까!”

당황한 동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 태도는 동희 말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판타지는 접으시고 저희들 수사에나 협조해 주십시오. 함께 가십시다.”

그 순간 동희는 칩에 담긴 모든 증거들이 사라지는 것을 상상했다. 증거를 지켜야 진실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통신망을 차단한다고 사건이 해결된다는 확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팔자걸음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을 교란에 빠뜨리기 위해 적이 만든 위장 공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동희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자신감이 마음속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본부장실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11시 40분을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괜찮다면 잠깐 동안만이라도 일부 통신망이라도 잠시 셧다운 시켜보면 안 될까요? 잠깐 동안만이라도요, 네?” 절박해진 동희는 떼쓰는 아이 같았다.

“보소! 몇 초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뿌모 우리가 감당해야 할 피해 보상 비용이 얼만 줄 아요? 아까 내가 다 말했다 아이요, 억수로 고생했다꼬! 참말로, 머라캐샀노!” 사천왕 기세에 눌려있던 계장까지 언성을 높였다.

동희 눈에 문 옆에 비치된 소화기가 들어왔다. 달려가 재빨리 소화기를 집었다. 소화액이 나오는 입구를 사람들에게 겨냥하고 뒷걸음질로 본부장실을 빠져나갔다. 곧장 3층으로 뛰어갔다. 가장 많은 서버들이 있는 방 앞에서 청원경찰 두 명과 맞닥트렸다. 정장들과 한국통신 직원들도 뒤따라 달려왔다. 앞에는 가스총이 뒤에는 실탄을 사용하는 이들이 동희를 막았다.

“정동희 씨, 당신이 이적행위자와 무관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으니 소화기 그만 내려놓아요. 애 궂은 대한통신에 더 이상 민폐 끼치지 마시고요.”

팔자걸음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동희는 벽을 등고 좌우를 번갈아 살폈다. 소화기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를 움켜쥔 손에 더 큰 힘을 주었다. 여차하면 소화액이 분사될 것이다.

“5분만, 아니 1분간만이라도 통신망을 멈춰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청원 경찰들은 미동도 없이 가스총으로 동희를 겨냥하며 다가갔다. 동희 눈에 청원 경찰 한 명이 낯설지 않았다. 키가 195cm는 되어 보였고 덩치가 무척 컸다. 하지만 애 띤 얼굴이었다. 갑자기 동희 머릿속이 번쩍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드림캐리어社 인터뷰 간 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가방을 열려하던, 그 보안요원이었다. 놀라움과 함께 생각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란 희권의 말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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