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모든 시곗바늘이 12를 향해 집결하고 있었다. 아직 여유가 있다. 1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한 10분쯤 더 있다가 집을 나서면 된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두른 덕에 모든 준비가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A는 잠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다.
‘날 좋아할까……’
오늘이 벌써 세 번째였다.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밀려왔다. 그 순간에도 남자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그때 자신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시야가 넓어지고 낯선 이들이 보였다. 많은 목소리가 들렸다. 묵묵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두려움보다는 평온함이 앞섰다. 호기심이 커졌다. 늘어난 의식은 도시 전체를 감쌀 정도가 되었다. A의 의식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듯했다. 생각만으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 방이 아니라 서울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주변 모든 환경이 너무 생생했다. 지나치는 사람들 옷차림이 그랬고, 눈부신 햇살이 그랬고, 차가운 공기 냄새가 그랬다. 그 냄새는 흙냄새, 젖은 낙엽 냄새, 자동차 매연, 튀긴 기름 냄새, 커피 냄새를 담고 있었다. 또 다른 공간이었다. 이번엔 실내였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 온기로 따뜻했다. 30분도 더 전에 주문한 음식이 이제 나왔지만 아름다운 맛이 느껴지고 화가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기분이 바뀌었다. 이번엔 초초했다. 주변이 밝았다. 주위가 빠르게 지나갔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학학’ 대는 숨소리가 귀를 때렸다. 쇼윈도에 누군가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였다. 그는 약속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정하며 근처 지하철 역을 향해 뛰고 있었다. 달리는 내내 손질한 머리 모양을 신경 쓰고 있었다. A는 그 남자가 되어 세상을 보았다. 그의 설렘까지 고스란히 묻어왔다. 지나치는 유리문에 다시 그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1시 정각, 시청 앞 지하철역 2번 출구에서 자신을 만나기로 한 바로 그 남자였다! 그도 역시 A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결국 그와 하나 되는 놀라운 체험을 자각했을 때 A는 정신을 잃고 침대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