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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Feb 08.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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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를 조금 지나자 광화문 근처를 달리던 자동차  대가 이순신 장군 동상으로 돌진했다. 동상을 받치는 네모 기둥 아래 둥근 밑동 일부가 깨지고  앞부분이 움푹 들어갔다. 차에서 연기가 솟았다. 이번에는 다른 차가 세종대왕 동상을 들이받았다. 걸레로 동상을 닦던 남자가 미끄러지며  지붕 위로 떨어졌다. 차선을 넘은 차들이 반대편 차도로 질주했다. 인도를 덮친 차는 행인을 치고 건물 외벽을 때렸다. 멀쩡히 길을 걷던 사람도 쓰러졌다. 갑자기 쓰러진 사람 대부분이 머리에서 연기를 피우고 , , , 귀에서 피를 흘렸다. 몇몇은 손발까지 심하게 떨었다. 눈은 하나같이 눈물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피범벅이  머리를 움켜쥐고 차도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달리는 차들이 이들과 부딪치고, 뒤따르던 차들은  차들과 충돌했다. 수많은 차량과 사람이 인도, 차도   없이 엉키고 설킨 광화문 일대는 모든 것이 멈춰 섰다. 비명과 울음소리만 살아 움직였다.


동희 머릿속에서 진짜 번개가 쳤다. 누군가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했다. 충격이 회오리처럼 몰아쳤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진동이 잇따랐다. 곧바로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눈물이 찔끔 났다. 자신도 모르게 움켜쥔 손잡이를 타고 전해진 힘이 고압가스를 분사시켰다. 하얀 분말이 사방으로 튀었다. 동희 손에서 떨어진 소화기가 바닥을 때리며 둔탁한 소리를 낼 때까지 미세한 분말은 날뛰었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검은 정장이 하얗게 얼룩졌다. 동희는 정장 한 명이 멈춰 고개 흔드는 것을 보았다. 분말로 하얗게 된 얼굴에서 피 빛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 흰 눈동자를 드러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브라운관 TV가 과열될 때 나는 냄새가 났다.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동희 뺨은 이미 차가운 바닥에 닿아있었다. 넘어질 때 고개를 돌린 탓에 청원경찰이 보였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가스총으로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다 그중 하나가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드림캐리어社 뿔 모양 계단 사이에서 처음 본 거구의 사내였다. 머리에서 하얀 연기가 아른거렸다. 동희와 눈이 마주쳤다. 덩치는 컸지만 눈빛은 겁먹은 아이였다. 곧 눈빛이 바뀌었다. 황홀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마저도 곧 사라졌다. 조그맣게 벌어진 입에서만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동희는 이제 보는 것 외엔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이번엔 쭈그려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팔자걸음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분명 당황하고 있었다. 순간 엄마가 보고 싶었다. 40도 고열의 어린 자신을 안고 울먹이던 엄마 체취가 기억났다. 정직하라며 제법 진지하게 타이르던 표정이, 함께 학생 운동을 하고 죽기 직전까지 노동 운동에 헌신한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이 보였다. 먼저 떠난 남편 사진을 보고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아들 자립시킨 뒤 이모들 동네로 이사 가 ‘독립선언’할 때 발하던 활기찬 소녀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죽음보다 엄마의 슬픔이 더 큰 공포였다. 동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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