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큐멘투니스트 Apr 05.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41

41


두 사람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30대 초반 혼혈 여자와 그녀보다 20cm 정도가 더 큰 아시아 남자였다. 남자 다리는 침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 남자의 큰 손위에 포개어진 여자 왼손 약지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남자 주머니 속에서 그 반지가 담겨 있었을 작은 보석함이 나왔다. 아직도 생기가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평온해 보였다. 침대 협탁에 뚜껑이 열린 약통이 있고 알약 몇 알이 카펫에 떨어져 있었다.

외국인 두 명이 사망했다는 신고를 받고 파리 경시청 사람들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였다. 최초 목격자이며 사건을 신고한 사람은 자신을 숨진 이들의 지인이라 밝혔다. 여자가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이 여행 목적도 악화된 증상의 호전을 위한 것이라 증언했다. 자신은 다른 숙소에 머물며 가끔 이들을 찾아왔는데, 이날 왔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며 비통한 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증언은 경시청 사람들 머릿속에 동반자살을 떠올리게 했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신종 바이러스 확산 차단에 주력하고 있었다. 공권력 또한 그 임무에 우선 배치되었다. 조금이라도 감염병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면 무력행사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파리 감염상태가 심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 두 명의 동반자살을 의심할 만큼 경시청 사람들은 한가하지 않았다. 여자 왼손에 끼워진 반지에 매끄러운 물질이 발라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추측이 가능했지만, 더군다나 이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할 일이 많았다.

저녁 뉴스에 외국인 남녀 동반자살을 잠시 다루었다. 침대에 누워 다이아 반지 낀 손을 어루만지듯 잡고 있는 장면 시청자들 안타깝게 했다. 뉴스는 곧바로 각지 성탄 소식으로 바뀌었다. 결국 이응천 편집장은 그 해 성탄절 이브에 그토록 바라던 나오미와 공식적인 짝이 되었다. 비록 이국 땅 뉴스를 통해서였고, 평소와는 다른 호흡을 하고 있었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도록 딸이 오지 않고 연락조차 없자 앙리는 초초했다. 간호사를 통해 딸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날따라 온몸 근육이 무력해지는 것을 느꼈다. 점심으로 나온 푸딩 한 덩이가 기도를 막았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다행히 큰기침 몇 번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부터 숨 쉬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다. 간호사가 왔을 때 그의 입 주변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더니 그날 밤 앙리의 건강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물조차 삼키지 못했으며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틀 동안 의식이 없었다. 그사이 무슈 앙리 방은 갖가지 의료기구로 채워졌다. 3일 뒤 잠깐 의식을 차린 그는 누군가를 만지듯 허공에 손을 뻗쳐 휘둘렀다. 몇 번 움직이던 손은 곧 떨어졌다. 색색대던 가슴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바이탈 경고음을 듣고 간호사가 달려왔다. 침대 아래에서 바지직거리는 소리가 올라왔지만 간호사는 깨닫지 못했다. 간호사 발에 밟힌 액자 유리가 깨져있었다. 앙리가 늘 자랑하던 액자였다. 액자 속 사진에는 파란 하늘이 있고 흰구름 같은 가족이 있고…… 혼자 찡그리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 표정이 깨진 유리 조각과 묘하게 어울렸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꼬뮤니까시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