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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면 상처받는다

by 민선미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상대방과 눈빛을 마주치고, 말의 끝을 받아치는 짧은 리듬이 즐겁다.

일명 '티키타카'가 잘 맞을 때면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든다.

사람의 말투 하나, 눈빛 하나, 사소한 움직임 하나까지도 그냥 넘기지 못했다.

그 안에서 의미를 읽고, 마음을 담으려 했다.

결혼 전, 남편이었던 그 사람이 나를 챙겨주던 말과 행동에도 나는 의심 없이 기대고 있었다.

그 기대는 아주 조용히 스며들었다. 혼자 있을 땐 미래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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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내일을 그리며, 작은 행복에 웃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의 빈틈이 느껴졌다.

그 사람의 무심한 말투, 무표정한 얼굴 하나하나에 나는 이유 없이 서운해졌다.


"왜 저런 말을 하지?"

"예전 같지 않아…"

서운함은 쌓였고, 나는 점점 예민해졌다.

내가 힘들다고 조심스레 말했는데 돌아온 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무심한 말이었다.

나는 위로받고 싶었고, 그는 그냥 넘겼다.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쏟아온 기대가 상처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생각한다. "기대가 상처가 되는 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일까?"

사실 잘잘못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기대해도 된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내가 느낀 온기는 그의 전부가 아니었고, 나는 그중 일부만 보고 전부라 믿었다. 그 사람도 말하지 않았는데, 나는 우리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착각했다.


예전에 읽은 글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정해진 틀에 맞춰서만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내 기대에 맞춰 움직이는 '도구'처럼 생각했다. 내 방식대로, 내 속도대로, 내 감정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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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할까?

아니다. 기대는 관계 안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내 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기대일 때 생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기대하기 전에, 나는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기대는 결국 내가 내 마음 안에 만든 그릇이다. 그 그릇을 스스로 채우지 못하면, 결국 누구에게도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생일날, 내가 먼저 챙긴 친구에게는 내 생일엔 아무 연락도 없을 때. 나는 기억해줬으면 했고, 그 친구는 그냥 넘어갔다. 그게 너무 서운했다. 하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안다.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을 오래 품기보다는 기대했던 나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말이다.

상대는 죄가 없다. 그저 내가 혼자 마음을 쏟았던 것일 뿐이다. 기대도, 상처도, 모두 내 마음 안에서 만들어진 일이다. 그래서 다짐한다. 내가 의지해야 할 곳은 결국 내 안에 있었다.


"그래도 괜찮아"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연습.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도, 나를 토닥이는 힘이다. 그 힘이야말로 내가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다.

내 안에 없는 것을 자꾸 남에게서 찾으려 할수록, 나는 계속 상처받을 것이다. 내 기대는 내가 만든 것이다. 그러니 그 상처 역시, 내가 스스로 보듬고 나아가야 할 몫이다.



결국 내가 만든 기대는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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