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주말 아침. 가족끼리 놀러 가는 차량을 보고 문득 혼자서 여행을 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허세가 가득한 23살에 "인생 한 번은 유럽 여행을 꼭 해보겠어"라고 당차게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던 기억이 난다. 세뱃돈, 월 15만 원 병사 월급을 모았던 꽁짓돈으로 숙소를 예약하고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에펠탑, 런던 브리지, 가우디 성당,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수상 도시를 보고자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세계적인 문화제를 본 경험이 어땠냐고? 내 대답은 '그다지'이었다. 남들은 사진 찍기 바쁘고,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즐거움음 공유하는데 몰두했지만 홀로 보내는 여행이 내겐 너무나 외로웠고 쓸쓸함만 주었다.
혼자 하는 여행, 혼자 보내는 하루가 어엿한 성인이 되고 처음이었기에 어쩔 줄 몰랐던 것 같다. "왜 하필 이곳까지 와서 즐기지를 못할까". 자책도 많이 했지만 그 시간을 경험했기에 조금은 나와 더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블로그에 추천하는 여행지, SNS에 여행 후기를 올리는 일정을 참고하였다지만 사실 나는 남들처럼 그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보다 사실은 남들이 좋아하는 여행을 베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소극적이고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엄마의 말을 줄곧 따랐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착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알고 보면 자기표현이 없던 학생이었다는 걸. 초등학교 때 엄마 친구 자식들이 풍물놀이 동아리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배우게 되었고 별다른 흥미도 못 느낀 채 장구와 징을 쳐야 했다. 아침 7시에 나가 연습해야 했고 1박 2일 합숙 훈련을 하러 떠났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징을 치고 있는 한 강당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혼자 눈물을 훔칠 때 그때의 감정은 서글픔, 외로움이었다. 옆에 있는 누나, 형들이 보지 않았으면 했지만 소곤대는 모습에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여행을 떠난다고 무작정 행복한 일이 아님을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건물보다 숲을, 비싼 음식보다 투박한 길거리 음식을, 기념품 가게에 들르는 것보다 커피 한 잔 여유를 보내는 걸 더 선호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더 즐거움을 주었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보는 게 더 즐거웠다.
설렘이 마치 양은 냄비처럼 갑작스럽게 끓고 식어버리는 것처럼 여행, 연애는 결국 나와 마주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도 잔잔한 향수를 남긴다.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을 모른다면 장소, 사람 불문하고 일상의 충만함을 느낄 수 없다."그때 더 즐길걸", "왜 못살게 굴었을까?", "왜 어린아이처럼 행동했을까?"의 물음은 언뜻 후회인 듯 보이지만, 결국 나를 진짜 모습을 알게 될 때 문제를 바로 잡고, 주체적인 하루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
오늘 보내는 하루가 단순하고 때론 깊게 오랫동안 지속되길. 여행은 새로운 여행지를 떠나는 것만이 아닌, 오늘 당신이 만나는 사람, 혼자 보내는 시간에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