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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Nov 28. 2021

그들은 가해자임을 알고 있다.

은래빛 에세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참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나 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는 회사생활을 약 15년 정도 하면서 여러 상사와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그동안의 나는 상사복이 좀 없는 편이었다.



한 부서에서 약 7년간 상사이자 부서장으로 함께 했던 k는 전사에서 유명한 소시오패스였는데,


그와 눈 맞춤을 하면 순간 온몸에 냉기가 흐르거나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연히 그 사람을 본 나의 지인은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감상평을 주었는데,


정말로 그는 사람을 서늘하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뻐하던 남자후배를 승격시키기 위해서 같은 승격대상자였던 나의 프로젝트를 강제로 빼앗아 그 남자후배에게 주었던 일이 있었다.


나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고, 예상했던 대로 연이어 승격에 누락했다.


숙덕거리는 사람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게 되었고, 주말에 친정에 내려가 엄마에게 울며 하소연했다.


엄마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해준이가 아프지라도 않으면, 회사 따위 그만두고 좀 더 편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은데..

해준이가 이모양이니.. 차마 그만두라고 말도 못 하고.."


그랬다. 당시의 해준이는 자폐성 장애 1급으로 본능만 있는 짐승과도 같은 상태였고,

회사를 다니는 일도, 육아를 하는 일도 모두 지옥 같은 상황이었다.


어디에도 나를 위한 삶은 없었다.




그 이후 새롭게 옮긴 부서에서도 나는 또 다른 상사 k를 만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k였다),


그 사람은 후배들을 괴롭혀 약 3명을 퇴사시켰고, 그로 인해 감사팀에서 경고를 받아 좌천식으로 우리 부서에 오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십분 잘 활용하여 사람들을 휘두르며 즐거워했고,

당사자만 알게끔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크게 질책한 후 개인적으로 불러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런 일은 자꾸 반복되었다.


또한 자신이 지시한 일을 가장 1순위로 하는지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며 재촉했고,

회의시간에는 업무와 상관없이 장시간 자신이 보유한 재산과 부동산, 그리고 현금의 규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도 그의 정신적인 괴롭힘과 횡포에 점차 말라가거나,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일한 지 3년이 넘어가던 해 나는 불안장애 증상으로 휴직을 하게 되었다.




긴 휴직 기간을 마치고 복직을 하였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던 k는 같은 부서 안에 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상태였는데, 업무적으로는 우리 부서와 연결되어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업무상 나와 연락할 일이 생겨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의 전임자에게 연락하거나, 나의 상사에게 연락하거나,


본인의 후배를 통해 연락하곤 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고 있긴 한가보다. 내가 본인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망가졌었다는 것을.




어느 날은 탕비실에서 컵을 씻고 있는데, 남자 동기가 들어오다가 나를 보고 멈칫하고 멈춰 섰다.


예전 k상사가 뺏어간 나의 프로젝트를 받아 승격했던 남자 동기였다.


그는 내게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업무상 말을 걸곤 했는데, 난 그것이 어처구니가 없어 사내 메신저로 추궁한 적이 있었다.



- 넌 왜 나에게 사과하지 않아?


- 무얼 말이야?


- 지금 몰라서 묻는 거야?? 내 프로젝트를 빼앗아서 승격하니 좋았니?


그는 한참 말이 없다가 이렇게 말했다.


- 난 상사가 시키는 데로 했을 뿐이야


난 다시 분노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손가락의 타이핑 속도가 빨라졌다.


- 물론 나도 상사가 시키는 데로 너에게 넘겼지. 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야!

난 당시 너의 감정에 대해 묻고 있어!

억지로 남의 공로를 빼앗아가 승격을 하니 기뻤냐고 묻잖아!


- 아니 기쁘진 않았어... 미안하게 생각해


그는 망설이는 듯 타이핑이 느려졌다. 글을 썼다가 지우기도 하는 것 같았다.


- 그럼 지난 몇 년간 왜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지?


- 미안해..


- 지난 몇년간 사과하지 않은 것, 잊지 않겠어


  네가 승격하고 이룬 것들이 다 니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리고 네가 얻는 대신 그것을 잃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





그는 탕비실 앞에서 나를 보고 멈춰 섰다.


그런 대화를 나눈 지 약 3년이 지나 있었는데도.


난 편안하게 말했다.


"안녕? 오랜만이네"


"... 안녕"


그는 긴장을 풀고 다소 안심한 듯 인사했다.

나는 컵을 씻고 따뜻한 물을 받아서 그 자리를 떠나며 다시 인사했다.


"수고해"

"... 너도 수고해"



난 자리에 앉아 따뜻한 물을 마시고 업무를 시작했다.



그랬다.


모르는 척 하지만, 먼저 캐묻기 전에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가해자라는 것을.








<그들은 가해자임을 알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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