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승려 장인> 전시 리뷰
현대미술에서 작가는 곧 브랜드다. 마치 명품처럼 작가의 '네임밸류'로 작품이 팔려나가고 그의 이름을 건 전시에 관객이 몰린다. 그래서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본인의 SNS 등을 통해 스스로를 열심히 어필한다. 이런 동시대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중요한건 아마도 ‘개성’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그것은 소위 '팬덤'을 형성하는 데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된다.
개성이 가장 큰 덕목인 현대미술계의 정 반대편에 있는 분야가 종교미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종교미술에서는 작가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그림 속 부처님은 다 똑같이 생겼다. 불상과 불화를 보면서 이걸 만든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드물다. (정말 개성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종교미술의 목표가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는 뜻이다. 실제로 화승 의겸과 조각승 단응과 같이 불화와 불상에도 개인 장인들의 특징이 드러난다.)
이번 글에서는 불상과 불화를 만든 사람들을 좀 궁금해 해보기로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얼마 전 막을 내린 <조선의 승려 장인> 전시에서 알게 된 ‘승려 장인’이라는 이들에 대해 말이다.
옛날 옛적, 석가모니부처가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보러 도리천에 올라갔을 때, 그를 그리워한 지상의 우전왕에게 향나무로 만든 불상을 전해준 전설의 인물이 있다. 최초의 불상을 만든 이 인물의 이름은 비수갈마천. 기술과 창조의 신이다. 비수갈마천의 뜻과 능력을 본받아 불상과 불화를 조성해온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조선의 승려 장인이다.
승려 장인은 불교의 신앙 대상을 비롯해 건축, 장엄물* 등 사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만드는 전문 기술을 갖춘 출가 수행승이다. 특히 불상을 조성하는 사람을 ‘조각승’, 불화를 조성하는 사람을 ‘화승’이라 불렀다.
*부처에게 올리기 위해 아름답게 장식한 물건
승려 장인은 기술자이자 예술가, 예술가이자 수행자다.
승려 장인들은 유럽의 길드(guild)*처럼 스승이 기술을 가르치고 제자가 배우는 도제식으로 기술을 익혔다. 승려 장인들에게 불상과 불화를 조성하는 일은 스스로의 수행의 일부이기도 했지만 다른 참배자들의 수행을 위한 공헌이기도 했다.
승려 장인들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이 말을 듣고 필자는 소설 속 영웅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튼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던 승려 장인들이 불사를 필요로 하는 곳에 모이게 되었고 보통 10명정도가 모여 공동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대대로 내려오던 각 지역 양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혼합되기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양식이 탄생하기도 했다.
주로 머무는 안식처같은 사찰을 떠나 어디서 얼마동안 머물게 될 지 모르는 상태로 수행의 목적을 위해 불사에 최선을 다했던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조금 먹먹하기도 하다.
*중세~근세에 유럽 도시를 중심으로 장인이나 상인이 조직한 조합.
어찌보면 승려 장인은 불상과 불화의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였다. 승려 장인의 손길로 탄생한 기물들은 그들의 숭배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승려 장인은 숭배 대상 즉, 석가모니부처와 보살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세계를 구현해내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문맹자들에게 그림으로 된 성경이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불화도 불경을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해주는 역할을 했다. <송광사 화엄경변상도>는 불경 중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한 화엄경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조선시대 조각과 그림들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형식과 표현 방식이 다르다. 이런 '차이'는 개성이나 독특함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불교의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시켰던 것이다.
인상깊었던 작품 <통도사 팔상도>는 석가모니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그려낸 그림이다. 전시장에는 통도사 팔상도의 초본과 완성본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승려 장인들의 고민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더 강렬하게, 더 깊이 와닿도록 스토리를 그려낼까 하는 고민의 흔적 말이다. 그와 함께 원색의 빨강, 파랑, 초록 다채로운 색상이 가득한 완성본과 또다른 매력을 가진 종이에 먹으로만 그린 흑백의 초본은 그 자체로 작품이라해도 손색이 없었다. 지금의 일러스트와 비슷하달까.
단응의 <목각설법상>은 아미타여래의 정토를 보여준다. 아미타여래의 정토는 불교에서 저 멀리 서쪽에 있다고 믿는 이상향, 서방정토를 말한다. 아미타여래는 이 서방정토에 있는 부처로 이 부처를 염하면 죽은 뒤 극락에 간다고 한다.
이 목각설법상은 한눈에도 심상치 않다. 2D로만 존재하던 불교세계를 3D로 처음 마주했던 조선 사람들에게 이는 얼마나 큰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을까?
성당에는 제단 뒤로 제단화가 있고, 불교 사찰에는 불전 뒤에 후불화가 있다. 단응의 목각설법상은 후불화 역할을 하는데, 평면이 아닌 입체로 만들어진 이 혁신적인 불화는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목각설법상'은 조선의 승려 장인이 어떻게 하면 법당을 더 아름답고 경건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신심을 드높일지를 고민한 끝에 탄생한 독창적인 장르였다.”고 전시는 말한다. 그저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뜻을 전하고 사람들의 신심을 드높이기 위해 아름답게 만든다. 그것이 순수예술과 다른 점이다.
승려 장인들은 과연 스스로 “예술”을 했다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그런 예술은 아니었을 것이다. 승려 장인들은 그들이 해야한다고 느끼는 일을 했다. 그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니 예술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집중된 시간과 노력과 마음, 그것을 가지면 예술이 된다. 예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나를 위한 일(수행)이자 남을 위한 일(공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처럼 사찰은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전시 마지막에 등장하는 공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미술가 빠키(VAKKI)가 꾸민 공간으로, 고요하던 공간에 갑자기 누가 시끄러운 음악을 튼 것처럼 아주 요란하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불상들이 곧 일어나 춤출 것도 같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정리하러 내려온 신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서 있는 것 같은 이 불상들을 보면서 죽은 듯 조용해 보였던 불교미술을 다시 생각해본다. 과거에는 놀라움과 즐거움, 위로와 희망,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엔터테인먼트이자 예술의 역할을 한 종교를. 현대미술과 완전히 다르지만 상통하는 부분 또한 발견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조선의 승려 장인>에서 조선시대 불교 문화와 예술을 만나볼 수 있었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했던 숭유억불의 시기 조선, 그러나 이 전시에서 보여준 조선시대 불교 문화는 암흑기보다 르네상스에 가까웠다. 말뿐인 것 같은 동시대 미술에 약간의 공허함이 느껴지던 찰나,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예술은 눈에 보이듯 명확했다. 앞으로 불상과 불화를 마주친다면 만든이가 궁금해질 것 같다.
원문은 아트인사이트에서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58863#link_guide_netfu_64709_77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