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믿는다. 우리 아이들도 다빈치처럼 쇠구술을 올릴수있다고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중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교육이다.
역사적으로 공교육은 공급자 위주로 설계되었다. 권력자의 구미에 맞춘 공급자 위주의 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봉건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현대판 흑사병인 코로나19 사태로 현대 사회 시스템이 정지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낡은 교육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교육 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개학을 연기했다.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더 이상 개학을 연기하기 어렵게 되자 온라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온라인 수업으로 초반 혼란이 야기되었다. 일부에서는 기술적 문제를 지적하지만, 기술적 관점에서 온라인 수업은 유치원 수준이다.
수억명이 소셜네트워크에 동시 접속하고 동영상을 감상한다.
포트나이트라는 온라인 게임에 1200만 명이 동시 접속하는 시대이다. 에듀테크(EduTech·인터넷 등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한 교육 서비스)가 블루오션으로 인식돼 다양한 솔루션들이 제시됐지만 결과는 기대이하이다. 교육 공급자들이 새로운 솔루션 채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교육 공급자들이 기술 기반의 효율적 교육 솔루션을 거부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변화를 거부하는 공급자 위주의 교육
교육 공급자들은 탑다운 방식으로 내려오는 커리큘럼에 맞춰 강의 자료를 만들면 된다. 커리큘럼이 바뀌지 않는 한 한번 만든 강의 자료는 바꿀 필요가 없다. 물론 커리큘럼은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는다. 해마다 같은 강의 자료로 눈감고 강의해도 매년 학생들이 꼬박 꼬박 수업료를 갖다 바치는데 왜 힘들게 고생하는가.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온라인 수업은 이 문제를 표면화시켰다. 강의를 한번 녹화하면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다. 새 학년으로 올라오는 학생들에게 같은 영상을 보여주면 된다. 매년 같은 강의를 앵무새처럼 반복해도 꼬박꼬박 월급이 꽂히는 신묘한 직업의 비밀이 까발려지는 위기의 순간이다.
혹자는 온라인 강의는 질문과 답변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솔직해지자. 강의 중에 학생들이 질문을 하는가. 쓸데없는 질문 때문에 진도 못나간다고 짜증낸 적 없는가. 학생들은 벙어리가 아니다. 학교에서 입을 다문 아이들은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눈)에 쉴 새 없이 댓글과 해시태그를 단다. 그들이 학교 수업 시간에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질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교육을 하라는 말인가.
두오모 성당의 돔 공사
그 실마리는 15세기 피렌체에서 찾을 수 있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은 초기 르네상스의 걸작으로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1296년 시작된 두오모 성당 공사는 1436년에 완성되었다. 마지막 고비는 돔 공사였다. 로마 판테온 신전을 능가하는 돔을 만들고 싶었지만 시멘트 기술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두오모 돔을 완성하기 위해 피렌체 시가 내건 공모전에서 부르넬레스키가 당선되었다. 그가 낸 아이디어는 계란을 반을 깨뜨려 돔을 세우는 것이었다.(이 일화는 훗날 콜럼버스의 일화로 와전된다.)
부르넬레스키는 1420년부터 16년 동안 400만 개의 벽돌을 쌓아 올리는 대공사 끝에 돔을 완성했다. 두오모 돔이 완성된 1436년이 성당 완공년도로 기록된다. 하지만 성당이 실제로 완공된 것은 30년이 지난 1469년이다. 돔 위에 정자를 세우고 다시 그 위에 쇠구슬을 올리는 난공사를 남긴 채 부르넬레스키가 사망한 것이다. 마무리 공사를 넘겨받은 인물은 베로키오다. 하지만 그 역시 2톤(t)짜리 구리 구슬을 돔 위로 올리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의 17세 신참 견습생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 견습생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빈치가 쏘아 올린 공
다빈치는 사생아라는 신분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베로키오 공방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다빈치는 어린 나이에 두오모 성당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쇠구슬을 돔 위로 끌어올리는 기중기 설계에 참여한다. 다빈치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부르넬레스키가 남긴 기중기 설계 자료를 철저히 분석했는데, 그가 남긴 코덱스 노트에는 ‘공부’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베로키오는 제자 다빈치가 설계한 기중기로 무사히 쇠구슬을 돔 위에 올릴 수 있었다.
어린 다빈치에게 두오모 성당 쇠구슬 공사는 엄청난 압박이었다. 자신이 기중기를 잘못 설계하면 140년의 대역사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다빈치에게 쇠구슬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생아 다빈치에게 두오모의 쇠구슬은 최고의 교육 교재였으며, 쇠구슬을 돔 위에 올리는 공사는 최고의 커리큘럼이었다. 그가 일생동안 구상한 수많은 기계 구조물은 이 시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가능할 수 없었다.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이 시대를 앞서간 천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교육이 아니면 무엇이 교육이란 말인가.
답이 정해진 교육 시대의 종말
현대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교실에 모여 누군가 정해놓은 ‘답’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답 찾기 교육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증명서 한 장을 들고 세상에 나온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답이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교육 공급자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해왔다. 그들의 관심은 현재 교육 시스템이 지속되는 것뿐이니까.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있다.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던 교육도 정지했다. 하지만 교육 공급자들의 관심은 기존 교육 시스템을 하루속히 복구하는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코로나 전방으로 내몰리는 교육의 소비자 학생들의 안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다시 확산 조짐을 보이자 교육 당국은 개학을 다시 연기해야 했다.
결국 코로나는 생태계의 일부로 흡수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세상을 향한 레이스는 이미 시작되었다. 14세기 흑사병 창궐로 1000년을 유지한 종교 권력이 무너지고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그 새로운 시대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다빈치는 두오모 돔 위에 쇠구슬을 올렸다.
나는 믿는다.
우리 아이들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쇠구슬을 올릴 수 있다고.
- Boza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