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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Feb 02. 2022

우리가 난임이라니

London on 부부이야기

런던에 온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이 말은 즉, 결혼생활도 4년이 됐다는 말씀.


2018년은 둘 다 직장도 없고, 집도 없고, 은행 계좌도 없으니 (런던에서는 집주소가 없으면 계좌 개설이 어렵고, 직장이 없으면 집을 구할 수가 없는 구조- 어떻게 살라는 거죠?)

런던에서 정착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하루하루가 매섭고 춥고 절박했다.

(버스비를 아끼겠다고 2시간씩 걸어 다녔던 옛날의 나야 고생했다)


2019은 둘 다 직장은 생겼지만 250만 원이 넘는 집 렌트비에 치이고, 생활비에 맥주 비까지 벌기 위해서 한 푼 한 푼 모으며 런던 생활의 '적응기' 시절.


2020년-21년은 돈도 좀 모았고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 이제까지 못했던 여행을 다니자는 야심 찬 목표를 정하고, 매달 여행할 나라들을 정하고 항공권을 사전 구매해 두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항공사들과 리펀드 혈투를 벌이며 런던 락다운 라이프에 귀하디 귀했던 휴지를 사재 끼던 한해.  

마트 휴지의 난, 금보다 귀했던 토일렛 페이퍼


결혼을 한 후 = 런던 온 후 참으로 바쁘고 알차게 살아왔다.


정말 돈 한 푼 허투루 안 쓰고 악착같이 둘이 함께 모은 돈은 집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영국에서 집 장만에 필요한 우리의 첫 씨앗이 되었고, 수개월째 집 장만의 프로세스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중이다.

(집 장만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푸는 것으로!)


언젠가 생길 아이를 위해 모으기 시작한 적금도 어느새 무겁고 두둑해져 볼 때마다 흐뭇하고,

락다운 때 모셔온 예뻐 죽겠지만 조금 성질이 더러운 우리 고양이 주인님도 잘 모시고 살고 있다.


쥐뿔도 없이 영국에 와서 우리 둘이 함께 일궈낸 하나하나가 참으로 대견하고, 하루하루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부부를 눈물 나게 하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난임이다.


처음에는 계획하지 않아도 생기겠지! 라는 마음이었고

1년이 지나서야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하기 시작,

2년이 지나서야 문제를 인식하고 병원에 찾아갔다.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여기는 의료시스템이 무료인데 그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무료다 보니 너가 죽어갈 만큼 심각한 게 아니라면 의사를 만나지 못하게 하겠어 라는 룰이 있는 것 처럼 불필요한 프로세스의 산과 절차의 강을 건너야만 한다.


보건소(GP)를 예약하고 거기에 있는 의사와 통화하기까지 수일,  (일하는 중이라 전화를 못 받으면 다시 예약 절차를 밟아야 한다..ㅂㄷㅂㄷ)

그 의사가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주 또는 몇 개월, 그 결과에 따라 진짜(?) 의사를 만나기까지는 몇 개월에서 1년 가까이 걸린다.


내 동반자 마군의 경우 남성 난임 검사를 받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우리는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무엇 때문에 아기가 생기지 않는 건지 모르는 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정말 피가 마르고 절망적이었다.

기다림의 끝이 보이나 했을 때 코로나가 터졌고 우리에게 한마디 안내도 없이 모든 병원 예약과 검사가 취소되었다.


우리는 울었다.


J: 한국을 갈까..?  코로나 때문에 격리도 길겠지..? 그럼 직장은 어쩌지..?

그래도 여기서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아.. 나 이러다가 피가 말라서 죽을 것 같아.

M: 내가 사립병원을 알아볼게. 사립병원이 비싸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알아본 사립병원 비용은 시험관의 경우 신선 이식하는 1회 비용 + 만약 있을 경우 수정된 배아를 동결하는 비용까지,

약 천만 원

우리가 뼈 빠지게 모아둔 돈은 모두 집 장만하는 비용으로 들어가서 우리에게는 이 금액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또 울었다


곧 동생 결혼으로 한국행 여행이 예정되어 있던 터라, 어렵게 어렵게 회사에 병가를 냈고, 조금 긴 기간 동안 한국에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병원 검사와 진행속도는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빠르고 체계적이었다.

전화만 하면 바로 예약을 할 수 있었고,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고, 결과를 바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나와 마군 둘에게 너무 눈물 나게 벅차고 감사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우리를 또 한 번 울게 했다.


우리 둘 모두에게 문제가 있었고, 우리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시험관 이식뿐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선고(?)를 받으니 그 충격은 마치 배속에 장기가 쑤욱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최소 2달은 한국에 있어야 한국에서 시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우리에게 가능한 방법은 영국 NHS(무료 의료시스템)의 기다림을 견디거나,

영국 사립병원을 가는 방법뿐이었다.


길고 긴 고민 끝에, 

우리는 마군의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 여성으로서 서글프고 서러운 것은, 이런 부부간의 어려움이 있을 때 시월드는 대부분 여자 쪽에 문제가 있다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외국인 시어머님이라고 2세에 대해 Pressure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어머님은 그 누구보다 손자 손녀를 빨리 보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말씀하셨고 심지어 내가 너무 예민해서 아이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냐고 내 얼굴에 물으시던 분이다.

(상처를 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틀 밤을 울 정도로 가슴에 깊게 박혀서 상처로 남았던 말이다.)


그런 어머님께 우리가 난임 아웃을 하면서 문제는 당신의 아들에게 있노라고 전했을 때 시어머님은 적잖이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그래서인지) 감사하게도 어머님은 우리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시기로 했고, 뜻밖의 상황에 서로 몰래 만들어둔 비상금 계좌의 존재를 오픈하면서 한국에 몰래 모아두던 나의 비상금 계좌와 오스트리아에 있는 마군의 비상금 계좌를 털어서 프라이빗 병원에 등록을 마쳤다.


그렇게 우리는 시험관 이식의 첫 발을 시작했다.


나 또한 수많은 이들이 눈물로 경험한 이야기와 글들로 인해 도움받고 위로받았듯,

내 글이,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 부부의 난임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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