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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교육 Mar 28. 2021

선행이 꼭 필요한가요?_청심노트(11)

선행이 꼭 필요한가요?          

사교육이 나오다 보면 필수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선행일 것이다. 사실 사교육과 선행은 같은 논쟁의 선상에 있다. 어느 하나 따로 떨어뜨려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보다는 정확하게 선행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선행으로 진도를 빠르게 나간다는 표현과 스스로 학습을 하던 중에 궁금하던 것이 있어서 다른 교재를 참고하면서 공부를 해 나간다. 과연 이 둘은 다른 말일까? 같은 말을 단어만 바꿔놓은 것이다. 궁금한 것을 배우다 보면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고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도도 넘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서는 ‘1 + 1 = 2’만을 가르친다.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면서 ‘1 + (-1) = 0’이라는 음의 정수 개념을 가르쳐준다. 음의 정수에 대해서 선생님에게 들었을 수도 있고 책을 읽다가 알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친구 혹은 형, 누나로부터 배우거나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친구는 선행을 하게 된 것인가?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앞서 친구는 선행만 하는 잘못된 친구라고 인식을 하고 뒤의 친구는 스스로의 학습, 탐구 능력을 갖춘 아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잘못된 언어 프레임으로 아이들만 중간에서 흔들리고 피해를 볼 뿐이다. 선행이 나쁜 것이 아니다.     

“선행으로 진도를 빠르게 나간다는 표현과 스스로 학습을 하던 중에 궁금하던 것이 있어서 다른 교재를 참고하면서 공부를 해 나간다. 과연 이 둘은 다른 말일까?”     

선행이라는 단어를 정치적으로 사용하고, 제대로 된 인지 없이 ‘무조건 선행은 나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부모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본인 자녀의 능력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많은 학원을 보내서 소화도 시키지 못하는 공부의 행동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다. 대치동에 이런 농담이 있다. 할 수 있을 때 시키면 예습이고 할 수 없는데 시키면 선행이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자. 그리고 꼭 정해진 진도 범위라는 것을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영재발굴단> 같은 프로 하나만 보더라도 스스로 재미가 있어서 여러 책을 챙겨서 보고 이런저런 내용들을 다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말 어린 나이에 저런 것들을 어떻게 저렇게 공부했지 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 학생들의 공부는 아이가 뛰어나서 하는 거고 내 아이가 하는 것은 선행이다’라는 프레임으로 밀어붙이지 않기를 바란다.

학생들은 다양한 능력이 있다. 그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에서는 교과서의 진도도 필요 없을 수 있고 때로는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그 능력을 갈고닦다 보면 가끔은 정해진 범위를 넘어설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학만 선행을 잡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교과목이나 예체능 분야는 그런 비난이 있을까? 미술을 배우던 아이가 데생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팝아트, 인상주의, 색채 예술을 스스로 배워 나갔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아이가 선행을 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스스로 본인이 원하던 공부를 하다 보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사회 교과를 배우던 친구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다양한 정치 체계와 정치에서의 현실주의, 이상주의를 알게 되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 학생이 사회 선행을 해서 나쁜 공부를 했다고 하지 않는다. 뭔가 교육에 대한 불만은 많아지고 여론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고 가게 경제에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과 같이 보이는데 그중에서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수학, 영어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뿐이다. 토론을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지식은 선행이 아니고 문제집에서 알게 된 지식과 문제 풀이는 무조건 아이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사교육 선행이라고 바라보는 어른들의 잘못된 시각이 문제일 뿐이다.

선행이 아니라 본인의 다양한 학습의 니즈와 능력에 맞게 본인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선행의 본질이며 전과 후를 나누는 것은 다만 진도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다. 선행을 반드시 좋다, 나쁘다 하는 개념 이전에 학생이 무엇을 좋아하고 더 잘 배울 수 있는지 그리고 잘 안되는 부분은 어디인지를 찾아내서 잘 키워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더 잘 발현시켜줄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이 도움이 되는 지 고민해야 한다. 오직 그것뿐이다. 선행이 나쁜 것이 아니다. 선행을 안 좋게 바라보는 우리의 잘못된 시선만 있는 것뿐이다.     

“선행이 나쁜 것이 아니다. 선행을 안 좋게 바라보는 우리의 나쁜 시선만 있는 것뿐이다.”    

모두가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똑같은 교육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진짜 현실에서 똑같은 교육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고 있는 책이 같을 뿐 오히려 똑같은 교육은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할 뿐이다. 똑같은 교육을 받으면서도 다양한 생각을 키워줄 수 있는 열린 교육이라는 것은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5-6학년 부모님 모두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선행은 개인의 선택이며 그 선택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있어서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를 보낼 때 굳이 선행을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한지는 학생에게서 먼저 그 답을 찾아야 한다. 학생 스스로의 공부 스타일이 하나씩 짚어나가는 스타일이라면 현행의 진도에 맞춰 공부를 하면 되고, 반대로 속도를 높이면서 목표를 하나씩 성취해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자신의 공부 속도를 나름대로 조절하면 된다. 이것을 학생과 토론, 협의 한 번 하지 않고 부모의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나쁜 선행, 사교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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