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날실과 공간이라는 씨실이 교차되는 여행, 추억
내게는 매일이 여행이다. 대학 4학년, 맞지 않는 전공에 코 꿴 듯 억지로 다니다시피 했던 날들은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하루하루가 아쉬운 1년을 보냈다. 50대 끝자락에 선 요즘, 지금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푸르고 맑은 하늘, 가을 막바지 따스한 햇살, 불타는 잎사귀,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진다. 그래서 매일이 여행이다. 여행하듯 살아가는 하루. 순간이 소중해진다.
먹고사는 데 급급해지면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내가 없어지고 수단이 되어야 할 것들에 매몰돼 버린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지상명령이 되는 그런 인생. 그런 인생과 아닌 인생이 별다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백 살이 넘어 살아본 인생 선배가 듣는다면 코웃음 칠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변하는 것이더란 의미다.
인생은 어찌 보면 달음질이다. 골인 지점에 다다르기까지 달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목표일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대개 달리다 보면 달리는 것 자체에 몰두한 나머지 눈을 질끈 감고 달리곤 한다. 그렇게 되면 방향을 잃기 쉽다.
깜빡 잊고 물안경을 가지고 가지 않은 어느 날. 눈을 꼭 감고 팔다리를 움직였다. 한참을 가도 맞은편 벽이 손에 닿지 않는다. 분명 똑바로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니 언제부턴지 방향을 잃고 옆으로 비스듬히 가고 있었다. 빨리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도착지점이 엉뚱한 곳인데 말이다. 인생이라는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빠르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가끔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 함께 달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뭘 하고 있는지.
그러다 보면 시간이라는 날실과 공간이라는 씨실이 엇갈리며 직조되는 인생이라는 피륙을 보게 된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웃고 울었던 순간들이 무늬가 되어있기도 할 것이다. 힘들게 올라가던 산길도 뒤돌아보면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보이는 것처럼, 그 인생이란 피륙 역시 때 묻은 부분마저 애틋해진다. 우린 그렇게 시공을 여행한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함께 모일 때면 종종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었다. 얼마나 흥미진진했던지. 그럴 때면 책으로 엮으라고도 했고 블로그라도 만들어 남기시라고도 했다. 나라도 그때그때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을 것을. 하지만 이제는 기억도 부정확하고 다시 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브런치에 글로 남겨보자는 것이었다. 쓰다 보면 에세이가 될 텐데, 블로그나 다른 소셜 미디어 어느 것도 거기 어울리지 않았다. 처음 브런치가 생겼을 때 작가로 활동했지만, 다시 들어와 보니 탈퇴한 것인지 오래되어 그런 건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브런치에 문의를 남기긴 했지만, 아무래도 다시 작가신청을 하고 할 것 같다. 전과는 달리 쟁쟁한 분들이 많아져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용기를 내어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