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Kay Nov 18. 2021

나이들은 엄마

아이를 늦게 낳았다면 겪어야 하는 바로 이것! 

초등학교 3학년인 쌍둥이 딸들이 최근 들어 가장 좋아하는 곳이 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창신동 완구거리이다. 아이들이 싸게 많이   있다는 것에 대한 돈의 개념을 이해하면서부터 이제는 진정한 쇼핑의 기쁨을 만끽할  있는 창신동으로 용돈을 모으면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쇼핑하는 모습을 흐뭇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미소를 짓고 있는 나에게 오늘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랑 쇼핑 왔으면 돈 내달라고 해”

설마 내가 아니겠지 하는 생각할 그런 사람조차도 옆에 없었다.  할아버지 같은 아저씨는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더니 “엄마야? 할머니야? 할머니? 엄마?” 계속 반복하며 내가 할머니인지 엄마인지를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초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할배 같은 아저씨한테 대꾸할 여력조차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화가 난다든지 어이가 없다든지 하지도 않았다.    순간엔 “!  이야기를 아이들이 들으면 어떡하지?’  생각이  먼저 뇌리를 스쳤다. 아이들이 ‘ 아저씨가 뭐라고 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했을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들을까 봐 겁이 나니  힐끔힐끔 보면서 확인하는  그만 했으면하는 게  가장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는 왜 이 말에 화가 나기에 앞서 겁이 났던 것일까? 우리 아이들은 항상 나와 남편의 나이를 묻는다. 솔직히 난 명확하게 내 나이를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누구 친구 엄마는 몇 살이고 아빠는 몇 살이고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하긴. 나도 그땐 그랬던 것 같다. 우리 식구들 나이를 줄줄줄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 할머니 연세는 어떻고 엄마, 아빠는 몇 살이고…

이제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시간이 제법 많아졌는데 누구 엄마의 나이가  누구 엄마보다 몇 살이 더 많고 자기 엄마는 몇 살이고 뭐 이런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이슈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굉장히 노력한다. 젊어 보이려고. 나이가 들면서 다들 자른다는 머리. 난 아직도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살도 안 찌려고 열심히 운동한다. 하지만 아무리 적게 먹어도 기초대사량이 낮아져 몸무게는 금방 늘어난다. 옷도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 입으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정말 늙어 보이지 않으려고, 내 나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염색하는 새치머리는 이제 한 달에 한번 주기를 기다리기가 힘들어졌다. 한 2주만 지나가도 이제 옆머리가 희끗희끗 해 지기 시작한다.  나갈 때 메이크업보다 새치를 더 정성스럽게 커버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길어서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던 목도 이제는 주름이 지기 시작해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그래도 나름 ‘동안이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마흔 중반을 넘어서부터 이런 피드백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동갑내기인 남편하고 같이 가면 주저하지 않고 “, 연하랑 결혼하셨군요”라고 말하고 이젠 나이를 말해도 “어머 훨씬 어려 보여요라는 멘트를 간절히 기대하지만 전혀 듣지 못한다.  이러한 나에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피드백들은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흘려보냈다.

 

그런 나에게 오늘 들려오는 그 할배 같은 아저씨의 계속되는 멘트와 확인 사살하는 눈빛에 차마 눈도 못 마주쳤다. 그리고 엄마 늙어 보인다는 아이들의 자존심을 행여나 건드릴까 두려워 황급히 그 가게를 떠났다. ‘난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는데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 하는 야속함을 뒤로하고…

 

참 나도 겁쟁이인 것이 아이들에게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새로 산 푸시팝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나 혼자 정신이 혼미해지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든 엄마이긴 하지만 ‘할머니’… 내 생에 처음 들어보는 그 단어... 

 

나는 비교적 늦게 아이를 낳았다.  마흔, 지금은 그렇게 늦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기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었다.  게다가 지금 아이 친구들 엄마 사이에선 내가 거의 왕언니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그것을 오히려  좋아했다.  이렇게 나이 들어서 아이를 낳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서로 관계를 구축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시켜 놓고 나서 아이를 낳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여전히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더라도 늦게 아이를 가지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항상 생각했다.  물론 아직도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숙해진 후에 아이 갖기를 원했으면서 외모적으로는 여전히 젊고 싶었나 보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나이 들음.  그렇게 자신 있게 늦게 아이를 가졌으면서  아이들이 엄마가 늙게 보여 속상해하는 것에 겁을 내는 것일까?  


쌍둥이 작은 아이가 언젠가 예쁜 여자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39라는 숫자를 써 놓았다.  나는 그 39란 숫자가 의아했다.  보통 아이가 그렇게 예쁘장한 사람을 그렸을 때는 그 숫자가 나이라면 내가 보기엔 19, 20, 25 이런 숫자를 적어 놓아야지 맞을 듯했다. 설마 39가 나이?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역시나 아이는 나이라고 대답했다.  아…. 우리 아이에게는 39이란 나이가 이렇게 젊게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의 친구 엄마들이 30대라서 아이는 39라는 숫자를 당연하다는 듯이 예쁜 사람 옆에 적어 놓았다.  우리 아이들은 30대의 엄마를 태어나선 본 적이 없으니깐...

그냥 아이의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이 좋아할 것도 나빠할 것도 아니다.  단지 문제는 나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지만 들어 보이기 싫은 것.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그 누가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이들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싫은 것이 정답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또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젊어서 아이를 가질래 아니면 나이 들어서 아이를 가질래 물어봐도 여전히 나의 답은 동일하다.  


우리 아버지는 흰머리가 무척 많으셨다.  어머니와 6살 차이가 나셨지만 어머니는 워낙 동안이셨고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부터 흰머리가 많이 나셔서 나이가 무척 들어 보이셨다.  우리 어렸을 때에도 나이가 들어 보이셨는데 나는 무려 나보다 9살이나 어린 남동생이 있다.  남동생의 학교에 아버지가 가시면 친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너네 할아버지 오셨어" 하면서 자리를 양보해 드렸다고, 남동생은 매일 스트레스받으면서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는 전혀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셨다.  항상 말씀하셨던 것이 '원래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하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거야' 하시면서 오히려 하얀 머리를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남들과 비교해서 늙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본인의 자신감 결여에서 나오는 문제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내가 아이들 앞에 얼마나 내세울 것이 없으면... 젊어 보인다는 말밖에 내가 자신감을 얻을 것이 없었던가?  그래서 다시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나의 자신감을 여기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할머니라고 말한 그 아저씨는 좀 과한감이 있었지만 나이 들어 보이는 것에 대해 그렇게 겁먹지 말자는 것, 그리고 아이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엄마의 자존심을 젊어 보이는 것에서 찾지 말자는 것.  이것이 내가 아이들을 기르면서 또 배운 값진 교훈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