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쓰는 것 같지 않은 신용 카드로 인해 한때 충동구매와 친구 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아이들의 용품을 살 때나 식비, 특히 외식비에 아무 거리낌 없이 신용 카드를 긁어 댔다.
나의 소비는 신용 카드를 남용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집에서 음식도 제대로 해 먹지 않던 시절, 백화점에서 산 접시 하나를 시작으로 그릇을 사 모았다. 우연히 가입한 인터넷 그릇 카페에서 음식이 담겨 있는 예쁜 그릇 사진을 보고는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며 그릇에 욕심내기 시작한 것이다.
명품 가방이 있듯이 명품 그릇이 있다는 것을 그즈음에 알았다. 접시 하나의 가격 이 말도 안 되게 비쌌지만, 이미 그릇에 홀딱 빠진 나에게 가격이 보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사면 남편이 말릴 법도 한데 그릇의 가격을 모르는 남편은 예쁘게 차려 나오는 요리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릇을 산 후 요리를 시작했기에 ‘마누라가 웬일로 살림을 할까?’ 하며 그저 기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인터넷 그릇 카페에서는 너도나도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은 사진들로 경쟁했다. 나 또한 경쟁심에 열심히 재료를 사다가 요리했다.
명품 그릇에 떡볶이를 담을 수는 없으니 스테이크나 샐러드,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나도 부자인 양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사람이 여유 있는 척하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릇값도 비쌌지만, 음식 재료도 비쌌기 때문이다.
부자가 아니었기에 카페 회원들과 더는 경쟁할 수 없던 나는 그릇 카페를 탈퇴했다. 나의 요리도 중단됐다. 명품 그릇들은 더는 할 일이 없어져 싱크대 안쪽에 자리 잡았다. 그릇과 굿바이를 한 후 신용 카드 납부 금액은 줄었지만, 여전히 교육비를 포함한 각종 생활비와 외식비로 가계 경제가 흔들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절박한 마음으로 무작정 동네 도서관으로 가서 재테크 책들을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하나같이 신용 카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 카드값으로 힘들게 사는 중이었기에 당장이라도 없애고 싶었다.
책을 읽은 후 드디어 신용 카드를 모두 탈회하게 됐다. 내 신용 카드 1개, 남편의 신용 카드 3개, 총 4개의 신용 카드 중 일단 내 것을 먼저 가위로 자른 후 신용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완벽하게 탈퇴했다.
이제는 남편의 카드만 남았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신용 카드를 없애자고 말을 하니 반대를 했다.
“급하게 써야 할 곳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비상금 통장을 만들면 된대.”
“집 담보 대출을 받을 때 매달 50만 원은 써야 이자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어. 이 카드는 절대 못 없애.”
남편은 강경했다.
신용 카드를 탈회하려면 남아 있는 카드값을 다 결제해야 한다. 나는 책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하며 남편을 설득했다. 갚을 돈이 없었기에 적금 하나를 해약하여 카드값 결제를 마치고 2개를 더 탈회했다. 대출 이자와 관련이 있는 마지막 카드 1장은 은행에 전화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설득당한 남편이 다음 날 은행에 전화해 보더니 탈회하자고 연락이 왔다. 신용 카드 대신 체크카드로 50만 원을 써도 똑같이 이자를 할인해 준다는 것이었다.
집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대출한 은행에서 만든 신용 카드를 매달 50만 원은 꼭 써야만 이자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신용 카드를 없애며 고객 센터에 알아보니 체크카드로 써도 이자 할인이 똑같다. 많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신용 카드를 사용한다.
집 담보 대출 때문에 없애고 싶은데 신용 카드를 쓰는 분이 있다면 은행 고객 센터에 알아보길 권한다. 빚을 없애라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신용 카드로 쓴 돈은 최악의 빚이다. 내 월급이 카드사에 저당 잡힌 것이나 다름없다.
신용 카드를 해지가 아닌 탈회해야 하는 이유는 해지하면 카드사에 5년에서 10년까지 개인 정보를 보관한다. 반면 탈회를 하면 카드사에서 1개월 내로 정보를 삭제한다. 개인 정보가 유출될까 봐 불안하다면 카드 고객 센터에 해지가 아니고 탈회하겠다고 해야 한다.
신용 카드가 없으면 불안하다. 비상금이 없어서다. 비상 자금은 인생의 폭풍우를 만났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고 생활에 안정감을 제공한다. 자금의 목적은 실직, 질병, 자동차 수리 등의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지출이 발생한다. 묵혀 놓은 비상 자금이 없으면 가계가 크게 흔들리기에 반드시 통장을 쪼개 비상 자금이 필요하다. 특히 나에겐 비상금이 없었기에 신용카드에 의지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신용 카드 대신 비상금으로 대처하면 된다. 그동안 카드를 탈회하고 싶어도 할부가 많아 없애지 못했던 나는 가장 먼저 카드 빚부터 갚기로 했다. 저축에도 전략이 필요하듯이 카드 빚 갚기에도 전략이 필요했다.
나는 다행히 2개의 적금을 납입하고 있었다. 마지막 적금을 해약해 카드 빚부터 갚았다.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비상금을 만들었다. 이제는 무분별 한 소비의 주범이었던 신용 카드와 굿바이 했다.
체크카드에 교통 카드 기능 만들고, 생활비 체크카드부터 경조사 체크카드까지 만들어 신용 카드 없이 생활하기 시작했다. 카드를 탈회한 다음 달은 잊을 수가 없다. 카드 대금을 내는 날이 다가와도 내야 할 카드값이 없기에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그 기분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신용 카드가 없으면 불안할까 봐 걱정했지만, 신용 카드가 없어도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용 카드를 없앤 후 비로소 돈 모으기가 시작됐다. 신용 카드값이 나가는 만큼 저축으로 전환했다.
절약 노트도 만들었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사지 않는 그 금액을 노트에 대신 적었다. 그렇게 얼마를 아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았다. 모든 통장에 체크카드를 만들어 카드에 이름을 붙여 크게 써 놨다.
식비 카드에는 매직으로 ‘식비’라고 크게 썼다. 카드 사용의 주범이었던 잡동사니 소비에 빠지지 않기에 핸드폰의 쇼핑 앱을 모두 지웠다. 당연히 연계된 카드도 지웠다. 나는 돈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중이라고 스스로에게 심리를 통제했다.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우선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30년간 분신과도 같았던 신용 카드 4개를 모두 해지하고 현금으로만 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노력한 만큼 부를 이룬다. 월급이 적다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이름 붙인 통장에 돈을 묵히는 원칙만 기억하며 나의 통장 쪼개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