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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 무심함이 배려가 될 때

물안경 소년

by 순짱

아이의 얼굴에는 물안경 모양으로 햇볕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아이를 보자마자 깔깔 웃으며 ‘너, 여름을 완전 즐기고 있구나? 안녕. 이제 너한테 영어를 가르쳐 줄 선생님이야.’ 하고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에게 악수를 청하면 아이들은 어른 대접을 받는다는 기분으로 우쭐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나타냈다. 물안경 소년은 내 손을 잡고 힘없이 흔들었지만, 미소도, 대답도 없었다. 나는 수업이 조금 어려워질 것을 직감했다. 수업도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인지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학생들과 마주하면 원맨쇼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이는 반의 다른 아이들과 조금 떨어져 앉았다. 수업은 영어로만 진행이 되는데, 중간중간 아이의 표정을 살펴보니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대답을 하는 퀴즈 시간에도 물안경 소년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이란 천진하고 솔직한 만큼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나 경멸감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물안경 소년이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대면 주변 아이들은 하나둘 말을 보탰다.

“와. 엄청 쉬운 건데 저것도 모르냐.”

“쌤, 쌤! 쟤 모르나 봐요! 제가 대답해도 돼요?”

나는 아이가 풀이 죽어 더욱 수업에 소극적으로 반응할까 점점 걱정이 되었다.. 수업 마무리 무렵, 나는 늘 그래왔듯 복습 게임을 시작했다. 영어 정답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답을 말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활동을 해서 대답할 기회를 따내야 하는 것이 룰이었다. 물안경 소년은 육체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누구보다 재빨리 뛰거나, 공을 타깃에 정확히 맞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점점 웃음꽃이 피었다. 다만 아이가 발언 기회를 얻고도 대답을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힌트를 칠판에 적어줘도, 아이는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물안경 소년은 게임 덕인지, 시간 덕인지 눈에 띄게 밝아졌다. 교실에 들어오면 서툰 영어로 내게 인사를 하고 아이들 옆에 앉았다. 하지만 소년의 영어 실력은 썩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특히 쓰기나 읽기 활동을 할 때는 하기 싫어 꾀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시간을 끌었다. 기다리다 못해 내가 대신 읽어주거나 정답을 말해주면 그 아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지금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요.’ 하며 억울해하기도 했다.

쓰기 활동을 하던 어느 날 나는 그 아이를 꾸짖었다. 정답을 칠판에 써줬는데도 안 쓰는 건 무슨 심보인지 너무 화가 났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된 지라 그 아이가 나를 만만하게 보고 놀리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예전에 그 아이를 가르치던 선생님에게 상의를 하자 그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그 친구 난독증인데, 모르셨어요? 칠판 글씨나 책 읽는 걸 어려워해서 걔한테 시키면 안 되는데...”

아이의 우물쭈물하던 입술과 자신이 정답을 말하려던 참이었다며 억울해하던 표정, 읽기 활동만 시작하면 어두워지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길로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면담 요청을 했다. 혼자 오신 어머니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렸다. 아이의 어머니는 내가 학생의 난독증에 대해 전해 듣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학생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는 나의 사과를 웃으며 들으셨다. 그리고선 대답했다.

“선생님. 아이가 영어 수업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운동 말고 다른 걸 좋아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 놀랐답니다. 이 영어 수업은 왜 좋은지 물어보니까, 선생님이 차별을 안 한대요.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그동안 다른 선생님들의 배려가 아이에겐 오히려 차별로 느껴졌던 모양이에요. 자기만 반 친구들과 다르게 대하는 게 싫었던가 봐요. 지금까진 모르시고 한 실수지만, 앞으로도 쭉 똑같이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의 무(無) 배려가 그 아이에겐 오히려 진정한 배려였다니. 가끔은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대우받고 싶고, 그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대우’에는 막역한 조롱이나 장난도 포함된다고 말하던 장애를 가진 친구 A도 생각이 났다. 돌아보니, 약자로 명명되고 보호받느라 무언갈 제대로 시도하고, 실패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올랐다. 약자가 넘어질세라, 마음이 다칠세라 일정 경계 이상으로 다가오지도 않는 것보단, 넘어진 약자 옆에 앉아 같이 하하 웃고, 또 같이 일어나 다시 걷는 것이 배려라는 것을 배운 경험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물안경 소년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게임을 하고 틀린 답을 말하고 다 같이 깔깔 웃다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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