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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Dec 05. 2023

괴물을 찾는 순간, 괴물이 되는 영화

괴물 (2023) -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 리뷰는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관적인 해석 또한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영화는 큰 불길로부터 시작이 된다. 시뻘건 불길은 건물을 사정없이 휘감았고, 거칠게 타오르는 불을 끄기 위해 소방관들은 발 빠르게 움직인다. 미나토의 집 베란다에서는 그 불길이 작지만 선명하게 보인다. 사오리는 소화 작업이 한창인 것을 보고 '파이팅'이라며 철없이 외치고, 미나토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부끄럽다고 고개를 젓는다. 


    영화는 여러 인물들이 얽힌 시점을 하나씩 천천히 풀어낸다. 사오리의 시점으로 시작한 영화는, 선생인 호리의 시점에 이어 마키코와 미나토의 시점까지 전부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영화의 시작점인 화재 현장을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보고 있었다. 화재 현장을 단순한 사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영화는 시작점인 화재 현장의 불길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련의 사건들을 예고하는 역할을 한다. 결코 작지 않은 불씨가 모두에게 불을 지필 것이라고. 


    영화는 학교폭력, 극성 학부모 문제를 시작으로 교권추락과 성역할을 다룬 내용 등. 다수의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하나만 다루기에도 벅찬 주제들을 전부 녹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영화는 시청하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주제를 나타낼 수 있으며 포착한 주제에 대해 심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화는 3막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막은 사오리의 시점으로 풀어낸 이야기. 2막은 호리의 시점으로 풀어낸 이야기. 3막은 미나토와 요리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교차된 시선으로 인물들의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였으며 숨겨진 이야기의 진실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숨 막히듯 답답하고 불쾌한 이야기가, 아름답고 안쓰럽지만 희망적인 이야기가 될 때까지의 전개가 화려한 각본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영화는 잔잔하지만 화려한 각본과 부드럽지만 단단한 연출로 눈을 사로잡았다. 현재 사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무리 없이 영화에 담아내었고, 유기적으로 엮인 인물들의 시선을 순차적으로 잘 풀어냈다. 탄탄한 각본을 완벽하게 뒷받침한 것이 바로 연출이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화재부터, 흰 선, 미나토가 머리를 자르는 장면, 아버지에 대한 대화 등. 핵심 내용을 초반부터 관객들 눈에 자연스럽게 안착시켰다. 


    영화는 끝내 결말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시 태어난 거냐는 요리의 질문에 그런 건 없는 것 같다는 미나토의 답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결말일 뿐이다. 두 사람의 삶이 거센 비바람을 맞는 힘든 순간일지라도 날씨가 맑아지고 비가 그치면 조금이나마 밝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어쩌면 감독은 가장 마지막 장면에 자신의 모든 메시지를 혼신의 힘을 다해 전했을 수도 있다. 미나토와 요리가 푸른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장면. 태풍을 견딘 그들은 이미 그 순간부터 그토록 고대한 환생을 맞이한 순간일 지도 모른다. 




"누구나 누릴 수 없는 건,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단다."


    영화 '괴물'은 제76회 2023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을 맡고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담당했다. 또한 영화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으며 눈길을 끌었다. 이번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 '중개인(2022)'이후로 연출한 작품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사회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행이나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할 법한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 아이들에 대한 서사가 특히 진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눈에 띄는 악역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번 '괴물'의 경우에도 그렇다. 이번 영화에서 역시 정해진 악역은 없으며, 오직 관객의 시선에 따라 악역이 결정되고 영화의 진행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에 색감과 미장센에도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 감독이기도 하다. 특유의 부드럽고 진한 색감과 풍경을 넓게 담아내는 다큐스러운 연출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파적인 진행 없이 자신의 메시지를 꿋꿋하게 이어나가는 것 또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매력이다.


    괴물의 각본을 담당한 사카모토 유지 역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사카모토 유지는 과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높은 시청률은 기록하지 못하더라도, 시리어스 하고 어둡다는 말을 듣더라도, 살기 힘듦을 껴안고 있는 사람들을 정성스럽게 그린다. 마음을 구제받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된다. 16년 동안 길을 돌아온 끝에 발견한 자신이 각본을 쓰는 이유다.'


    이는 사카모토 유지라는 사람이 어떤 글을 써온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자료였다. 사카모토 유지는 복잡한 감정들을 무리 없이 풀어내고 유려하게 이끌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심리를 대변해 주는 작품을 써낸다. 이는 영화 괴물에서도 잘 드러난 부분이다. 


    영화의 화룡점정은 故사카모토 류이치의 영화음악이 담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트랙들은 인물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심도 있게 표현하였으며, 특히 2개의 음악이 섞인 트랙은 인물들의 갈등 표현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서사의 몰입도를 높여주는데 높은 공을 기여했다. 괴물에 삽입된 음악트랙 하나하나가 왜 사카모토 류이치를 거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엄마 나는 불쌍하지 않아."


    아역들의 연기 또한 돋보인 작품이었다. 미나토를 연기한 '쿠로카와 소야'와 요리를 연기한 '히이라기 히나타'는 캐릭터의 해석은 물론 준수한 연기까지 펼치면서, 영화 완성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잘 맞춘 느낌이었다. 사오리를 연기한 '안도 사쿠라'와 호리를 연기한 '나가야마 에이타' 역시 작품에 잘 어우러지는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괴물은 누구게?"


    영화는 처음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괴물은 누구게? 결론적으로 이 영화에 괴물은 없다. 괴물을 바라보는 시선들과 갈등만 있을 뿐, 그 누구도 괴물에 해당되지 않는다. 영화는 초반에 괴물을 찾게끔 유도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관객들은 1막과 2막을 보며 진실을 찾기 위해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고 안쓰러워하기도 하며 저마다 다른 공감대를 자극받으며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3막을 끝으로 영화 속에 괴물은 없다는 사실이 잔향처럼 남는다. 세상이 괴물을 만드는 것인지, 괴물이 모여 세상을 만드는 것인지. 다양한 시선에 따라 괴물은 변화한다. 영화가 끝난 후, 괴물 찾기에만 급급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아이들의 물음처럼 정말 괴물은 누구였을까.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찾기에 급급한 지금,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잔잔하지만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괴물을 찾는 순간, 괴물이 되는 영화. 영화 '괴물'에 대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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