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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Dec 01. 2022

서점에 대한 고찰

[에세이] 너무 싫어서 보게 되었어  - S#1. 고찰 (2)


    읽는 사람의 기분을 살짝 좋게 만드는 것만이 책이 가진 힘이 아니다. 삶이 괴로울 때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에도 읽다 만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내일까지, 또 그 다음날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무라야마 사키 '오후도 서점 이야기' - 


    서점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도서관과는 달랐다. 두 장소 모두 책이라는 매개체로 이루어진 비슷한 성질의 장소인데, 어째서인지 도서관은 정이 안 갔다. 도서관은 어머니가 사주시지 않는 책을 빌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도서관은 별로였다. 사실 귀찮다는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막상 도서관에 가면 개장 시간부터 문 닫기 직전까지 자리를 지켰다. 지금도 그렇다. 도서관에 오랜 시간을 앉아 있던 건, 대출이 싫다는 막연한 이유가 있었다. 대출과 반납. 무언가 얽매인 듯한 느낌이 귀찮고 답답했다. 매번 반납 기한을 연장하기 일쑤였다. 자라오면서 다독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교에서도 대출 대신에 앉아서 읽고 가는 걸 택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쉬는 시간. 점심 먹고 남은 시간. 방과후 아무것도 하기 싫은 시간. 그럴 때마다 도서관을 찾아가 남들과는 멀찍이 떨어져서 전에 읽다만 책을 읽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도서관은 정이 안 갔다. 무슨 개연성이냐고. 나도 모르겠다. 아마 집에 에어컨을 켜놓고 나와서가 아닐까. 




    아무튼 서점이 좋았다. 서점은 특유의 냄새가 있다. 서점 정문에 마치 세상을 나누는 경계선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서점 안으로 발을 내디디면 상쾌한 냄새가 났을까. 전혀 아니었다. 방금 전 새 책을 만들어낸 것 같은 인쇄소의 텁텁한 냄새라도 맡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늘 예상과는 다른 냄새가 났다. 지하에 있어서 그랬을까.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서점은 습기 가득한 날의 하늘과 맑은 햇살 사이에서 오는 간극에 위치하고 있는 거 같았다. 책장 앞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맡을 수 있는 냄새는, 모순적인 날씨의 간극점에서 기어 나오는 냄새와 닮아 있었다. 혹시 알고 있는가. 비가 세차게 내린 뒤 맡을 수 있는 물기 가득한 비린내와, 햇살이 내리쬐어 청량한 공기를 머금은 맑은 날의 냄새를. 이 두 냄새 사이에는 정의할 수 없는 향이 존재했다. 이 향은 독특하게도 상당한 모순점을 가지고 있었다. 시원하지만 후덥지근 했고, 비리지만 깔끔했다. 이 향은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내비치지 못하는 답답한 녀석이었다. 근데 나는 이런 녀석이 참 좋았다. 비가 내린 뒤, 물기가 적당히 마른 아스팔트 위를 밟고 있으면 이 향이 코끝을 툭툭 건드렸다. 비가 오는 날씨는 지독히도 미워했다. 그렇다고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내리쬐는 향기로운 날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갖 잡생각과 몸이 쑤셔댔고, 맑은 날은 터무니없이 맑아서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이토록 모순적인 날씨를 사랑했다. 한기를 머금은 채 뺨 위로 스치는 아찔한 바람. 추적이던 물방울이 다시금 피어올라 번들거리는 도로. 발걸음을 나아갈 때마다 귓가에 찰팍찰팍 속삭이는 선율. 무엇보다 날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모순적인 향. 파란색에 노란색을 한 스포이트 떨어뜨린 것 같은 향이었다. 항상 그랬다. 시원 꿉꿉한 냄새가 나는 서점이. 나는 서점 중에서도 그런 서점이 좋았다. 




    서점은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장소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점에 가면 한 시간은 고사하고 두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서점은 홀로 가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남들과 같이 가면 대부분 30분 정도가 지나면 밖으로 겉돌며 나가자고 재촉하는 게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볼 책을 다 봤다는 게 나가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였는데, 난 도무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작은 동네 서점에 가도 처음 본 책이 수두룩하고 이름만 들어본 책도 널려 있었다. 나는 무식하게도 서점을 통째로 집어삼킬 작정이었던 거 같았다. 드물게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서점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었다. 물론 서점 안에서는 각자 행동했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책의 장르는 다르니깐 말이다. 나는 정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서점에서 허비하는데, 아마 이 몸뚱이를 이끌고 밖에 나갔다고 하면 반드시 서점을 들릴 거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런 의미로 내일도 서점에 방문할 예정이 있다. 사고 싶은 책이 없어도 서점에 가면 늘 사고 싶은 게 책이었다. 읽지 않아도 책은 항상 쌓아두고 사는 게 뭔가 마음을 안정시켰다. 비교적 싼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중고서점은 내겐 하나의 성지였다. 알라딘 중고 서점이 시내에 들어선 날, 거긴 좋은 아지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었다. 두 시간까지는 무리여도 한 시간 정도는 함께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 순간에도 떠올렸다. 그런 의미로 고등학교 3년간 서점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지만, 아르바이트도 없고 봉사도 없고 협력 업체도 없고 그냥 없었다. 그냥 모두 함께 서점으로 가자. 별다른 이유 없이. 책을 안 봐도 괜찮다. 서점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안락감과 푸근함을 느꼈으면 한다. 




    서점은 수많은 글자들이 부유하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야기.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 누군가가 들었던 이야기. 누군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글은 쓴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수단이자 기록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생의 일부분을 사고파는 장소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한 장면을 남기는 사진관과는 또 다른 일생의 기록을 남기는 곳이 아닐까. 소설이나 영상 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언젠간 앞으로의 인생과 함께 늙어갈 서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 




    좋은 동네 서점을 발견하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저것'들과 한참 싸우던 때, 서점은 유일한 도피처 중 하나였었다. 귓구멍에 이어폰을 쑤셔 넣은 채 서점을 찾아가곤 했었다. 주머니 속 꼬깃꼬깃 구겨 넣은 종이를 펼치면 읽고 싶은 책 제목들을 써둔 리스트가 보였다. 도서관을 떠돌거나 인터넷을 배회하던 중 느낌이 오는 책들이 종종 있었고 그건 바로바로 종이 써서 품 속에 넣고 다닌 편이었다. 책 표지의 느낌이 많은 결정을 좌우했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들 그러지만, 어쩌겠는가 책 표지만 봐도 좋은 책인지 아닌지 대부분 구분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구분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 역시 뚜렷한 기준은 없었다. 책 제목. 표지 삽화. 지은이의 이름. 표지의 두께. 종이의 질감. 보고 만지는 순간 느낌이 오는 책들이 있었다. 그런 책들을 읽고 나면 항상 생각이 많아졌었다. 




    서점은 단순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거리의 소음으로부터 단절된 장소 같다고 느꼈었다. 시각적인 소음은 넘치도록 존재했지만, 청각적인 자극은 놀라울 만큼 느껴지지 않았던 곳. 고요하고 차분해질 수 있었던 장소. 이때의 버릇이 깊게 남아버린 걸까. 지금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면 서점을 찾아가곤 한다. 서점에 가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당연했다. 회색이 흘러내리던 시점부터였을까. 서점을 찾는 빈도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요즘도 그렇다. 홀로 서점을 자주 방문한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다. 결핍이 남은 걸까. 아니다. 욕망하고 있는 무언가에 허덕이고 있는가. 아니다. 그럼 대체 뭘까. 이 부근에 생각이 다다랐을 때, 의식은 날아가 버리곤 한다. 그때부터는 새로운 책들을 마주하고 궁금하던 책을 바라본다. 이유 없이 서점을 서성이는 습관이 있는데 생각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지금까지 한 번도 외면하고 모른 척하며 넘겨온 것들은 없었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서점에 갈 것이다. 





서점이 망하는 게 빠를까? 네가 서점에 안 가는 게 빠를까?






당연히 서점이 망하는 게 빠르지. 나는 아마 앞으로도 평생 죽을 때까지. 






왜 이렇게 진지하게 답을 해. 근데 어차피 서점은 망하면 다시 생기겠지.






그 사이의 기간 동안 나는.






너라면 그러고도 남겠네.






사실 서점에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그런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른 곳에 가 있어도 늘 서점에 있다고 하잖아.






서점에 있고 싶었던 거 아닐까. 아니면 서점에 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서점은 네게 좋은 장소라는 게 맞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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