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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Nov 21. 2022

월요병에 대한 고찰

[에세이] 너무 싫어서 보게 되었어 - S#1. 고찰 (1)

월요일마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는 증상을 우리는 '월요병'이라고 부른다.


오늘의 당신도 월요병을 겪었나요.




할멈이 말했다. 사는 건 후회와 실패의 반복이라고.

나는 빈정거렸다. 그럴 거 살아서 뭐하냐고.

할멈은 다시 말했다.

더 멋지게 후회하고 실패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니깐 쫄지 말라고.

-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中 -




    월요일은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이유가 없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스스로 원인조차 알아낼 수 없으니 말이다. 오늘 내 일기장의 소제목은 '이유 없는 하루'이다. 이유 없이 정신없었고, 이유 없이 종일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생각이 많은 하루다.


    생각은 늘 많다. 줄이고 싶어도 줄여지지 않는다. 때론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독한 컨셉이 나를 잡아먹은 게 아닐까 하고. 사실 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설정이고, 내가 이렇게 바라고 행동했기에 벌어진 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 거창한 생각 같지만,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잡념에 밀려 이내 녹아버린다.


    "잡념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 잠을 못 잔다는 내게 가장 많이 날아드는 말이다. 알고 있다. 그래서 해결법은 뭔데. 이어지는 답은 뻔하다. 생각을 줄이면 된다는 것.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럴까. 아픈 사람한테 가서 안 아프게 나으면 되겠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진실한 위로가 심장 깊은 곳에 파고들어 눈물과 극복이라는 결실을 맺을 때도 있지만, 때론 위로의 한 마디가 현실을 바라보게 하여 더욱 곪는 사람도 존재한다.


    곪은 상처는 쉽게 나을 수 없다. 나는 곪은 사람을 대할 때가 가장 힘들다. 과거는 힘들었고, 현재는 우울하고, 미래는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곪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늘 더 날카롭고 해로운 말들만 뱉는다. 내가 무슨 선지자라도 되는 것마냥.


    재수 없는 선지자 곁을 맴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좋은 말로 할 줄 알면서, 눈물을 닦아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넬 줄 알고 있으면서. 공격적인 말들을 뱉고 끊임없이 후회한다.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더 엇나가 바닥을 기어 다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사실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뭔데.


    내가 뭘까. 후아유에 참 좋은 대사가 나온다. 내 손은 흙으로 더럽혀져 있고, 친구는 아주 깨끗한 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친구가 넘어졌을 때, 더러운 손을 가진 내가 도울 자격이 있을까? 이 물음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온다. 도움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냐. 손잡고 가서 같이 씻으면 되지. 유치하고 어이없는 답이어서 낭만적이지 않은가.


    낭만적인 답을 도출하는 게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일까. 나는 항상 편의점에서 250원짜리 츄파춥스를 살 때조차도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사탕이 더 싼 곳을 발견하게 된다면. 사탕이 사실 공장에서 잘못 만들어진 거라면. 사실 편의점에 들어온 순간 사탕을 사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건 아닐지. 사탕을 사면 내가 먹으면 될까. 사탕을 물다가 이빨이 부서지면 어떡하지. 사탕이. 사탕이. 사탕이. 사실. 음. 이렇게 잡념을 나열하고 있지만 이미 손에는 계산을 마친 사탕을 들고 있을 것이다.


    갈수록 인간성이 결여되고 있다는 말. 인간성은 이미 많은 부분이 상실되었다는 말. 그조차도 치밀하고 계획적인 컨셉에 잡아먹힌 내 모습이면 어쩌지라는 생각과 함께 무표정을 유지하는 나. 그때 지나치는 누군가. 표정을 굳히고 목을 가다듬으며, 적당히 오해받지 않을 웃음기를 머금는다. 안녕.


    인사를 받은 상대는 평소처럼 인사한다. 안녕. 이상한 사람이다. 재수 없는 선지자 곁을 맴도는 사람은 얼마 없을 텐데. 너 그게 정말 힘들어? 이해는 해. 근데 그렇게 힘들 시간이 있는 거 보면 죽을 정도는 아니네. 됐어. 계속 그렇게 살던지. 말을 왜 이렇게 싸가지 없게 하냐고?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분명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를 텐데 상대는 화를 내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모른 척한다. 그렇게 하나둘씩 쌓인 이상한 사람들이 내게 가장 이상적인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다.


    이상적인 사람들은 슬픔을 잊었을까. 이상하게도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에 더 슬퍼한다. 이번만 모른 척할게. 다음에도 그러면 난 모른 척하지 않아. 호언장담하며 흘린 말들이 지켜지지 않아 이번만이 진짜 이번만, 진짜 진짜 이번만, 다음까지만, 진짜 다음까지만이 된다. 안녕. 거짓말처럼 밝은 모습으로 다가온 사람들은, 거짓된 모습을 던지면 어린아이처럼 오열한다.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 간다.


    바보라도 좋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모르는 게 약이란다. 근데 또 아는 건 힘이란다. 그래서 할멈은 말한다. 모르는 게 약이란 걸 아는 게 힘이라고. 세상만사 다 이렇게 간단하면 좋을 거 같다. 아. 이상하다. 단것이 먹고 싶다. 머리가 깨질 만큼 달달한 거. 오늘은 종일 초콜릿을 먹어봐야겠다. 아니. 사실은 쓴 커피가 마시고 싶다.


    쓴 커피보다는 술이 마시고 싶다. 술에 잔뜩 취해 길거리 한복판에서 전봇대를 붙잡고 왈츠라도 추고 싶다. 부끄러움은 내일의 내가 감당할 몫일 테니 나는 모르겠다. 나는 들을 수 있는 노래 중 최고로 신나는 노래를 튼다. 경쾌하고 활기찬 리듬에 어깨가 들썩인다. 야생의 경주마처럼 귓속으로 뛰어들어오는 리듬에 맞춰 어깨를 놀리던 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추하게 흘리며 들썩거린다.


    무겁게 내려앉은 어깨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뇌리에 닿았을 때쯤이면 어느새 월요일이 끝나 있다. 이 정도면 질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어떻게 매번 같은 말만 반복하냐. 과거 얘기. 아픈 얘기. 인간성 얘기. 이런 말들을 듣곤 이렇게 답하겠지. 그치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니깐 공개한 내용만 말할 수밖에 없지. 기가 찬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나. 머릿속이 시끄럽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만 들어차서 나를 괴롭힌다. 알잖아. 사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거. 그러니깐 말이다. 근데 나만 왜 이렇게 유난일까. 나만 월요병을 잔뜩 퍼먹어서 부풀었나 보다.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다가 모조리 털어낼 것만 같아서. 그건 아닐 거다. 털어낼 문제가 뭐 얼마나 더 있겠는가.

    

    털어낼 문제도 없겠다 이쯤에서 생각을 마무리해 보도록 할까. 그래. 오랜만에 블로그나 써볼까. 제목은 '월요병에 대한 고찰' 왜냐면 오늘은 월요일이니깐. 그래 분명 난 월요병에 걸린 거야. 그래서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거야. 그럼 뭐부터 써볼까. 늘 쓰던 대로 두서없이, 생각 없이, 대충,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내 이면의 3%만. 좋아. 오늘도 새로운 가면을 쓰는 거야. 월요병이라는 가면을. 역시. 이렇게 시작하는 게 제일 좋겠다.



    월요일은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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