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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Feb 26. 2024

파도 파도 말할 게 남는 영화 <파묘>

파묘 (2024) - 장재현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관적인 해석 또한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영화의 시작은 비행기 탑승객인 두 남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무당 이화림과 화림의 굿판에서 경문을 외우며 악사를 담당하고 있는 법사 윤봉길. 두 사람은 부동산 거부의 집안의 장손인 박지용에게 의뢰를 받는다. 아버지와 자신, 막 태어난 자신의 아이까지 원인 모를 현상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 화림은 이를 듣고 단번에 묫바람이 든 것이라고 알아차린다. 묫바람을 해결하기 위해선 파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 화림과 지용은 거금이 걸린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지관인 풍수사 김상덕을 찾아간다.

파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처음 알아야 할 것은 파묘라는 생소한 단어의 뜻부터이다. 파묘(破墓)는 직역하면 ‘무덤을 깨뜨리다’이며, 의역하면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해 무덤을 파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로 파묘는 다의어인데 ‘날이 샐 무렵’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감독이 이를 의도했을지는 모르나, 영화 속에서 날이 샐 무렵이 되니 사라지는 도깨비의 모습과 아침 해가 밝으면 산 자가 아닌 것들은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겹쳐져 중의적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제목의 여지를 남긴다.

영화의 전개 방식은 크게 6 챕터로 나뉜다. 이번 영화는 이전 영화들과는 다르게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챕터 소개를 자막으로 보여준다. 각 챕터에 알맞은 소제목까지 부여하며 보여주는데, 이는 오컬트 장르의 영화를 다소 어렵다고 느낄 수 있는 관람객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이 되어준다. 전작인 <사바하>에서 복잡하다는 평을 받았던 부분을 잘 보완한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연출적인 부분은 이후에 다시 자세히 말해보도록 하겠다.

<사바하> 이후 5년 만에 공개된 한국형 오컬트 작품. 이번 영화는 <사바하> 보다는 <검은 사제들>과 유사한 부분이 더 많았다. 복잡하고 여러 떡밥들을 뿌려가며 오컬트를 욱여넣은 <사바하>와는 달리, 명료한 사건과 빠른 전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볼 수 있는 적절한 오컬트 요소를 가미한 대중성 있는 작품. 이번 <파묘>가 더욱 많은 화제성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국형 오컬트의 요소들을 적절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오컬트는 쉽게 말해 주술이나 유령 등 설화와 문헌을 통해 전승되는 영적인 현상을 탐구하는 걸 말하는데, 자칫 잘못 이용하면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이 되어버려 관람객을 배제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소 알려진 내용들로 잘 엮인 채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호러 영화가 아닌, 미스터리 장르의 특성과 감독의 독특한 개성과 분위기가 담긴 영화이다.

영화의 결말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오컬트 장르 작품의 고질적인 문제이자 쉽게 깰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인간을 이길 경우 인간이 다 죽어야 하는 찜찜한 결말을, 인간이 승리해도 정해진 엔딩처럼 느껴져 다소 심심한 결말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 영화는 엔딩의 아쉬움을 조금은 덜어낸 작품이었다. <사바하>의 경우 회수하지 못한 떡밥과 부실한 엔딩으로 혹평을 받아들여야만 했고, <검은 사제들> 역시 다소 미흡한 캐릭터성과 촘촘하지 못한 관계성으로 아쉬움을 남겼었다. 그런 부분을 감안하면, 이번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 갑작스럽게 퇴마물이 된 것치고는 납득할 만한 결말을 선보였다.

“죽음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거다.”

영화 <파묘>는 한국에서 오컬트를 제대로 다룰 줄 안다는 평가를 받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인 ‘장재현’ 감독의 장편영화이다. 장재현 감독은 2015년 첫 장편 영화인 <사바하>를 시작으로, 4년 뒤에는 <사바하> 공개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를 잘 소화해 낸 감독으로는 영화 <곡성>, <랑종> 등을 선보인 나홍진 감독 정도였다. 그렇기에 세상에 <검은 사제들>이 공개된 후,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장재현 감독의 작품에서 무당이 이토록 큰 비중으로 나온 건 이번 <파묘>가 처음이다. 검은 사제들은 신부, 사바하는 목사. 매번 영화에서 종교적인 소재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 영화 또한 종교적인 소재가 여럿 등장했다. 장재현 감독은 좀처럼 수작이 등장하지 않은 오컬트라는 생소한 장르를 밀고 나가고 있는 감독이며, 이번 영화를 통해 약점이라고 생각한 전개력에서도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독특한 개성과 연출, 낯설지만 거부감 들지 않는 커리어를 만들어가며 한국형 오컬트의 좋은 예시로 자리했다.

이번 영화는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풍수사 김상덕 역할을 맡은 최민식 배우, 무당 이화림 역할을 맡은 김고은 배우, 장의사 고영근을 맡은 유해진 배우, 법사 윤봉길 역할을 맡은 이도현 배우. 주축을 이루고 있는 4명의 배우 하나하나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영화이기도 하다. 조연으로 등장한 김선영 배우와 김지안 배우 또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화림 역의 김고은 배우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작중 대살굿을 하는 장면에서 신들린 듯한 굿판 연기를 하여 몰입감을 높이는 데에 일조하였고, 이화림과 늘 함께하는 법사 윤봉길 역의 이도현 배우 또한 역할에 알맞은 열연을 선보였다. 영화의 숨 막히는 전개와 강한 몰입력의 대부분은 배우들의 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번 영화의 캐스팅은 우수하다.

이번 영화는 치밀한 디테일들이 잘 녹아든 작품이다. 영화 시작 부분 이화림이 승무원에게 일본인이 아니라고 말한 부분부터 감독의 의도와 복선이 시작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은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유사하며 어쩌면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밝히는 이화림의 장면부터 대립 구도를 관객들에게 스며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유사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화림에게 의뢰한 박지용 가족들의 이름 역시 친일파의 이름들과 유사하다. 다만, 감독은 이 영화가 국가갈등을 초례하지 않도록 아주 약간의 장치를 설치한 것이 후반부에 드러난다. 바로 이화림이 봉길을 살리기 위해 오광심(김선영)을 부르는 장면에서 말이다.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드러내는 김상덕과는 달리, 단순히 봉길을 살리기 위해 오니를 퇴치하고자 하는 이화림의 모습을 통해 감정을 살짝 누르는 영리한 연출방식을 택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일본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수차례 언급한다. 한국형 귀신들과는 다르게 이유도 없이 모든 것을 죽이는 악귀. 한국의 설화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생전의 감정이 한으로 맺혀 귀신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본의 설화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한국형 귀신들과 다르게 이유도 없이 생겨난 것들이 많으며, 때문에 퇴치 방법 또한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를 뒷받침하는 데에는 영화에 등장한 무당과 음양사의 차이에서도 알 수 있다. 혼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한을 풀어주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무당과는 다르게 음양사는 혼 자체를 술법으로 부리며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잘 담아낸 셈이다.

영화에서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아 범의 허리를 끊으려고 한 일본 최고 음양사 무라야마 쥰지. 일명 ‘기순애’라고 불린 음양사는 이름에도 뜻이 숨겨져 있다. 일본어로 여우를 ‘키츠네’라고 발음하는데, 여우 음양사인 무라야마 쥰지는 키츠네의 어원과 유사한 ‘기순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4 챕터 동티가 시작된 가장 큰 이유인 묘지에 있던 뱀. 얼굴 부분이 뭉툭하게 일그러져 뱀보다는 사람의 얼굴과 흡사해 보였던 이 기괴한 생명체는 일본 요괴 중 하나인 ‘누레온나’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누레온나는 영화의 내용과 크게 관련이 있는 요괴는 아니다. 일본 설화에 따르면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갓간아기를 데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를 맡긴다. 갓난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고 이를 받은 인간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 후에 또 다른 요괴인 큐키가 나타나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따라서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요괴 혹은 음양사와는 큰 관련이 없으며, 단지 음기가 강한 터라 자리 잡고 살다가 땅이 드러나자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번 영화는 역사적인 내용들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사찰인 보국사는 충성을 다해 나랏일을 돕는다는 뜻이 대놓고 숨겨져 있다. 영화 후반부 줄거리를 담당하고 있는 쇠말뚝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고자 이곳저곳에 쇠말뚝을 박아뒀다는 도시전설을 모티브로 다룬 것이다. 영화 후반부 최종보스인 오니와 붙은 장면에서 끝내 쇠말뚝이 나오지 않는데 무라야마 쥰지가 쇼군 몸에 검을 집어넣은 정황으로 보았을 때 오니 자체가 말뚝으로 취급되었을 가능이 높으며, 이는 도시전설처럼 퍼진 쇠말뚝의 진실과 실체를 묘사한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일 수도 있다.

이번 영화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있지만,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전망이 밝은 분위기이다. 4 챕터에서 갑작스럽게 장르를 바꾸기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남기고 있으며, 4 챕터 이후부터는 평가가 확연히 갈리는 편이다.

“땅이야 땅. 우리 손주들이 밟고 살아가야 할 땅이라고!”

이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다. 아, 정말 말할 게 많은 영화다. 이번 영화는 개인적으로 꽤 괜찮은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 1시간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영화를 본 것 같다. 사실 이는 사바하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재현 감독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초반 몰입감이 상당히 좋았다. 이번 영화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전작들과 다르게 챕터를 나눠 소개하였는데,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설정과 서사를 명료하게 보여준 아주 좋은 연출이라고 생각됐다. 개인적으로 오컬트 장르에는 특히 관심이 많았기에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파묘는 보는 내내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의 단점을 잘 보완하려 정말 열심히 만든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제는 정말 한국 오컬트계의 희망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오컬트적인 부분을 제대로 다루고 있으며 오컬트 특유의 신비롭고 기괴한 뭔가 꺼림칙한 부분까지 잘 연출하였다. 기존에 장재현 감독의 작품에서 잘 등장하지 않았던 점프스퀘어 흔히 갑툭튀라고 부르는 요소도 등장했고, 중간중간 불쑥 튀어나오는 개그 요소도 적절했다. 대중적인 면에서도 괜찮았다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쉬움이 특히 더 많이 남는다. 이 영화를 ‘파도 파도 말할 게 남는 영화’라고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바하 때도 그렇고 이번 영화에서도 그렇고 후반부가 너무 아쉬웠다. 첩장이라는 소재가 나왔을 때만 해도 소름 돋고 흥미진진했는데, 다이묘 오니가 나오면서 모든 흥이 깨져버렸다. 갑작스럽게 비현실적인 거구의 오니가 등장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보는 입장에서 압도되기는커녕 방금 전까지 압도된 채 끌려온 분위기가 탁 끊기는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보면서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다. 김고은이 기순애와 연관성이 있는 인물이기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꿈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잊고 있던 공포감이 되살아나며 압박당하는 연출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봉길이 오니에게 당해 쓰러질 때까지만 해도 에이 연출이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짜 영화가 퇴마물로 장르가 틀어진 것이었다. 음양오행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였지만 결국 최민식의 곡괭이질로 영화가 끝나버린 셈. 일련의 전개들이 물론 재밌기는 했지만 영화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는 아쉬웠다. 차라리 곡성처럼 형체 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로 오컬트의 매력을 더욱 진하게 남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객들 대부분 김고은 배우의 연기가 소름 돋았다며 칭찬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도현 배우의 연기가 더 인상 깊었다. 봉길이라는 법사 역할에 어울리는 훌륭한 연기였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이 어딘가 꺼림칙한 아우라를 담은 것 같았고, 경문을 외우는 모습에서 연기한 흔들림 없이 날카로운 눈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이번 영화를 통해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이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장점도 많고 단점도 확실한 영화였음에도 재미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작품이었다. 작품을 거듭할수록 전개가 깔끔하고 복잡한 서사가 확립된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품게 한다. 파묘를 보고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감독이 어떠한 큰 세계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단순히 한 편 한 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다른 사건들.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대서사라고 생각하며 김칫국을 마시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됐다.

쿠키 영상은 따로 없다.

장점이 많은 만큼 단점도 확실한 영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림에도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 파도 파도 할 게 남는 영화라는 한 줄 평을 남기며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