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에 대해 써보세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해.”
병원 진료에 동행을 해 달라는 전화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엄마의 아픈 상황을 알아달라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프다. 병원에 가서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 조직 검사에서 용종인지 암인지 결과는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에 엄마는 내게 기도를 부탁했다. 우리는 서로 기도해 주는 사이다. 그렇게 걱정과 염려는 기도로 맡긴다. 이제니의 <새벽과 음악>에서 엄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 아픈 우리 엄마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펑펑 났다.
어둠 속에서 엄마의 호흡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며 병실 머리맡 작은 비상등 스위치를 켜서 그사이 동공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확인하고 있는데 엄마가 평소와 다르게 뭐라고 웅얼웅얼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략)
엄마가 가족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중략) 우리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면서, 간절한 그 목소리 그대로, 오래전 새벽 기도에 따라갔다가 들었던 엄마 목소리 그대로. 일평생 울며 기도했던 그 마음을, 나의 나날을 지켜주었던 그 신실한 기도를, 진정 헤아려보지 못했던 그 장면을 이제 멀리 떠나가는 엄마가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 <새벽과 음악>, 37쪽 이제니 -
해질 무렵, 길을 걸으며 이 부분을 읽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주저앉아 눈물을 닦았다. 엄마의 아픔을 알아주지 못하고 “날씨가 좋으니 여행 가시는 거 어떠냐, 집에만 계시지 말고 바람 쐬고 오셔.”라고 말해버려 너무나도 미안했다. 지금 엄마가 아파서 바람 쐬고 올 체력조차 없다고, 엄마는 자신의 신체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딸이 엄마에게 여행 다녀오라는 말이 야속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야기하면 걱정할까 봐 미리 말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렇게 엄마는 딸의 마음을 미리 예측하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 딸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엄마. 이제 딸이 엄마를 위해 기도한다.
“가스 불 잠금 확인”
친정집에 가면 현관문에 붙어 있는 경고 문구다. 외출을 나온 엄마가 “가스 불 잠갔나?”하며 물어볼 때가 종종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엄마는 다시 집에 가서 가스 불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예민함, 불안함, 걱정, 근심 등을 안고 사는 엄마. 나는 엄마의 예민함을 닮았다. 섬세한 감각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잘 듣지 못하는 소리도 긴밀하게 듣고, 맡지 못하는 냄새도 기가 막히게 맡는다. 나는 HSP이다. Highly sensitive Person의 주된 특징으로는 부정적 감각에 취약해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혼잡한 상황이나 경쟁적 상황에서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하며 조용한 공간 확보가 필요하며, 고독을 선호한다. 카페 음악이 유난히 신나거나, 시끄러운 공간으로 주변이 와글와글해지면 조용히 가방을 싸서 나오기도 한다.
나는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했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엄마가 좋아하던 것이 무언지,
싫어했던 것은 무언지,
꿈꾸던 것은 또 무엇이었는지...
생각할수록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만이
오롯해져서 가슴이 미어졌다.
- <새벽과 음악>, 39쪽, 이제니 -
다시,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것은 기도하는 마음과 예민함이다. “놀라지 말고 들어”라는 엄마의 전화 통화를 받고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마음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말 한마디에 미안해하지 말고, 서로의 이야기를 툭 터 놓고 나눌 수 있는 전화통화가 되기를 소망하며. 엄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12월에 있을 칠순 생일잔치에 파티는 무슨 파티냐, 다 같이 가족사진 찍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