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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May 19. 2024

사랑받지 못한 당신에게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감당(勘當)

1. 일 따위를 맡아서 능히 해냄

2. 능히 견디어 냄



우리 아빠의 최종학력이 중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어른이 되고 난 이후였다. 우리 아빠는 차남이었고, 장남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굳은 생각 때문에 고등학교 근처는 가보지도 못했으며 중학교만 겨우 마치고는 주야장천 일만 했다. 아직도 할머니는 내 앞에서 아빠가 공부만 했어도 크게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그러나 소용없는 하소연을 하시곤 한다. 그렇게 아빠의 젊음을 제물로 바쳐, 볕이 들지 않았던 어느 골목길의 으슥한 집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평가는 그렇다.

(물론, 아빠뿐만 아니라 아빠의 다른 형제자매들도 그 희생의 일부분이었음을 꼭 언급하고 싶다.)


우리 아빠를 두고 고모가 우리 엄마에게 건넨 말이 있다. 


"사랑받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사랑을 줄 수 있겠어."


사랑받지 못했던 우리 아빠는 지독하게 노력하여 우리가 굶지 않도록 돈을 벌어오기는 했으나, 다정한 말을 건넬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을 모욕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난 그 능력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엄마는 부녀(父女) 모두로부터 모진 말과 사나운 눈빛을 감당해야 했었다. 그런 우리에게 엄마가 존재했기 때문에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빠 역시 많이 부드러워졌다. 당신에게 도달한 것이 세월일지 누군가의 사랑이자 포용일지는 모르나 그 중간 어디쯤이겠거니 생각한다. 그리하여 여전히 삐그덕거리지만 우리도 꽤나 그럴듯한 가족의 모습을 갖추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습관처럼 그런 눈빛을 보내는 아빠를 보게 되면 나는 나의 손바닥으로 아빠의 눈을 가리며, '또 눈으로 욕한다'며 농담을 섞은 핀잔을 준다. 이제 더 이상 아빠를 제외한 가족들이 숨죽여 태풍이 지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시답지 않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주고받지 못했던 사랑을 뒤늦게 전하고 있는 중이라고, 사랑을 주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주 평범하게, 부모님은 나를 키우고 나도 부모님을 자라게 하고 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도처에 사랑받지 못한 이들이 꽤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타인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밖에 겪어보지 못해서 본인도 타인에게 모욕을 주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것 같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과오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나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다정함은 지능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때는 그것밖에 배우지 못한 이들이 안타깝기도 했었다. 물론, 그들이 불편하지 않거나 싫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경험해보지 못해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일의 영역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정하지 않은 삶의 어두운 말로(末路)를 상상하고 발원(發願) 하기보다는 산적(山積)해있는 수많은 현안(懸案)들에 관심을 더 쏟는 편이 나에게 이롭다는 것을 더없이 잘 알고 있다. 심지어 내 귀와 기억은 꽤나 선택적 정의를 행사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이로운 편이다. 그래서 회사 동기가 옆자리에서 나를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말을 듣고 나를 걱정하기까지 했지만 내가 내 마음을 다독이며 넘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글의 발로는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들에게 너무 관대한가?라는 질문이기는 하다.)


닿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그들의 행동에 이렇게 답해야 할 것 같다.


"사랑과 관심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무시와 인내밖에 드릴 게 없네요."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타인에게 내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느낌이 들게 키우지 않게 해 준 내 부모님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언젠가 감당해야 할, 

내가 사람들에게 주었던 상처들이 조금은 줄어들었을 것이라 희망하며.



사진: Unsplash 의 Marco Bianch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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