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를 보고난 소회를 담았습니다.
1.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
2.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1. 아득하게 멀고 오래됨
2. 영원하고 무궁함
'What should we do to face the cruelty of a collapsing world?'
'무너지는 세상의 잔혹함에 우리는 무엇으로 맞서야 할까?'
- <Furiosa: A Mad Max Saga,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
질량을 가진 물체가 공간 속에서 만들어낸 중력장(Gravitational Field)처럼,
바다의 빠른 물살이 마치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며 지어진 '울돌목'의 소용돌이처럼,
누구나 거시(巨視) 세계와 미시(微視)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탄생시키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내지 못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압도당해서 그곳에 종속되어 살거나, 세상을 비관하고 타인에게 똑같이 좌절과 절망을 전염시켜. 그리고는 힘과 잔인함으로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고 재생산시키지. 이 세계는 더욱 짙고 매서운 모래폭풍 속에 잠겨버리는 듯해.
밤하늘을 보면서 엄마의 유언을 떠올려.
"별들이 너와 함께 할 거야.(The stars be with you)."
어떤 하루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또 다른 하루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만든 이 세계에 대한 분노들이 공기입자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나의 내면에 빈 곳 없이 꾹꾹 들어차고 있어. 나의 감정의 무게로 비롯된 중력장은 더욱 깊이 휘어지고 소용돌이는 더더욱 매서워지는 걸 느낄 수 있어.
항상 경계하려고 해. 이 중력장에 갇혀버리지는 않을까. 그 소용돌이에 잠겨버리지는 않을까.
나는 꼭 살 거야.
어떻게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곳, 녹색의 땅(Green Place)으로 돌아가겠어. 분명 희망은 존재해.
생존이나 허구적인 이상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답은 아니야. 힘이나 잔혹함 혹은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위해 꾸며진 가장된 신성함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살아가는 삶 말이야.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 녹색의 땅은 풍족한 게 아니야. 풍족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던 거야.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가능한 거야.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감히 이해할 수도, 해낼 수도 없는 일이지.
어떤 이는 상실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정당화하고, 일말의 희망도 부정하면서 즉각적인 충동과 자극을 추종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그의 눈빛에서 공허함과 허무를 발견해. 어쩌면 자신의 결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달라는 애원 같기도 해. 안타깝지만, 나는 그의 뜻대로 해주지 않을 거야. 복수에 눈이 멀어 극단으로 치우쳐지지 않아. 차곡차곡 깊어진 심연만큼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나는 꼭 절망을 밑거름으로 희망을 피워낼 거야.
하늘에 있을 우리 엄마도 지켜보겠지.
무너지는 세상의 잔혹함에 희망으로 품위 있게 맞서는 나를.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 <Mad Max: Fury Road,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너는 손과 손에 깍지를 끼고 난 다음 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눈에 한가득 담아 외쳤어.
"기억해 줘."
넌 끝까지 바보 같았고, 결국 난 네가 채워버린 족쇄에 갇히고 말았어.
"천국... 도대체 그게 뭐라고...."
네게 닿지 못한 나의 말은 결국 나에게 돌아와 나를 찌르고 말았어. 너는 알지도 못하겠지만.
너는 천국을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네 목숨을 바쳤겠지만, 나는 네가 그곳을 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왜냐하면 네가 마지막 남긴 유언처럼 내가 너를 기억하고, 증언하고 싶어도 네가 떠난 후 어느 곳에서도 너의 안부를 묻지 않거든.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저 멀리서 누군가가 '기억해 달라'라고 외쳐. 정말 우리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스러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저 모두가 자신의 천국만을 바라볼 뿐이야.
결국 어느 누구도 천국을 갈 수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거지. 정말이지 비극적이야.
네 친구들은 일말의 희망도 부정하고 오로지 힘과 잔혹함만을 숭배하는 무리들을 숭고한 신념으로 이겨냈다고 말하고 있어. 어느 날은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역겨워서 구역질을 해댄 적도 있어.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도 없이 생존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고 약탈을 일삼는 그들이나, 문명의 붕괴 이전에 존재했던 단편적인 역사들과 신화들을 어쭙잖게 차용해 만들어낸 종교를 위시하는 네 친구들이나 결국 도피일 뿐이야.
너에 대한 나의 기억이 정말 의미가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들을 했던 순간들이 있었어. 심지어 '누군가의 그릇된 욕망을 위해 순진한 이들의 목숨들이 값싸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들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가끔은 차라리 내가 틀렸고 네가 맞기를 바란 적도 있어. 그럼 '잊혀 간 이들의 넋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서 그런 생각들을 떨구고, 내가 돌아가야 할 곳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금 나를 가득 채웠어. 곧게 뻗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내 모든 삶을 내가 있었던 곳으로의 회귀에 바치기 위해.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나에게는 구원이었던 여정에서 나는 절망을 마주했어. 나 역시도 도피였을 뿐인 건가. 나는 다를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너무도 간절하게 돌아오길 바랐던 곳으로 떠나왔지만 나 역시도 구원받지 못했어. 그리고는 이내 절망과 관성에 지배되어 내가 떠나온 곳으로부터 더 멀리 가기 위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한 남자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나를 말렸어. 비록 나는 그의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결국 그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돌아가야 할 곳은 내가 떠나온 곳, 시타델(Citadel) 임을 깨닫게 해 줬어. 물론 다시 돌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어. 나의 친구들과 어머니들이 목숨을 잃었고 나 역시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으니 말이야.
그러나 결국 나는 돌아왔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한 하루를 맞이해.
이곳에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을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아.
언제나 희망은 위태롭고 쉬이 절망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알 수 없다고 주저할 수는 없으니 한번 가보는 거야. '왜 사느냐?'는 물음에 '죽지 못해서 산다'거나 '태어났으니 산다'는 대답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세상의 모든 현상들과 발견들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광활한 우주의 티끌과 같음을 가리키더라도 나는 그런 질문들에 '그냥'이라는 무심한 태도로 귀결되기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으로, 나의 온몸으로 대답하고 싶어. 매 순간, 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가능한 일일지라도, 그것이 꽤나 피곤한 삶일지라도, 그것이 단지 공허한 인생을 어떻게든 견뎌보겠다는 발버둥일지라도 말이야.
꿈에 그가 내게 자신의 이름이 맥스(Max)라고 하긴 했는데 그게 진짜였는지는 묻지 못하고 떠나보냈어.
아마 다시 물어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을 거야.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나도 그 사람이 안식처를 찾을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네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다만, 히스토리맨이 말하기를, 문명이 붕괴되기 전에는 저기 밤하늘에 보이는 달에도 사람들이 직접 갈 수 있었대. 그리고 저 밤하늘이라는 공간은 지금도 점점 커지고 있대.
그러니 저 광활한 공간에 네가 말했던 그런 세상도 존재하기를 바랄게.
그래서 그곳에서 너도 너의 안식을 찾았을 거라고 믿을게.
구원(久遠)할지라도, 오직 구원(救援)을 찾는 여정. 우리네 삶이 그런 게 아니겠어.
사진: Unsplash 의 Faris Moham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