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를 쓴답니다] ⑤
[시, 시를 쓴답니다] ⑤
오전 9시 46분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다
원래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둬야만 한다는 듯이
일정한 거리를 무시한 채 비말들이 거리를 떠다닌다
동성애자요, 예수쟁이요, 늙은이요, 라고 써 있는 말풍선들
사람들은 칸막이와 마주 보고 밥도 잘 먹는다
마스크로 은밀한 속내와 표정을 감출 수도 있다
하늘에는 휴가 분위기일 거라던 예보 대신
우중충함만 가득하다
먹구름조차 어찌할 수 없어 새어나온 갈라진 햇살이
약속을 어긴 부끄러운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곳을 떠나 있어도 되는 것인지
이곳에 있어도 되는 것인지 새삼 헷갈려진다
허공을 홀로 후벼파는 새끼손가락처럼
나는 거리의 비말들을 피해 열심히 걷는다
누가 먼저 비를 뿌릴지 겨루는 시합에서
하늘과 사람들 중 누가 이길 것인가 고민하며
대합실에서는 전광판의 현란한 글자가
근무복 바지춤을 붙잡고 춤을 춘다
[포항행] 3시간, 2시간 30분, 2시간...... 기적처럼 왔다
기적을 울리며 유유히 떠나가는 막차 같다
대문짝만한 티브이에 숨은 노란 잠바들의 대사에 귀가 별안간 경련한다
국민 여러분 덕분에 의료진 덕분에 모든 상황이 끝나갑니다!
경제 성장은 더 이상 발목 잡혀선 안 될 시급한 과제입니다!
저 마스크 안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을까
그나마 뚫려 있는 귀를 막고 눈도 내리깔고 사람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저 무수한 약속들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하얗던 마스크에 갑자기 시커먼 덩어리가 진다
실내 곳곳에서 비가 쏟아지기 직전이다
정말 모든 상황은 끝나는가 보다
오후 1시 40분
4시간처럼 4일은 다 지나갔다
앞으로 해치워야 할 몇 번의 휴가가 남았는가 헤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