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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May 19. 2024

돋보기안경을 쓴 후

돋보기안경을 쓰고 난 후

사 쿼터 인생


요즘 저는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치고 책을 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할머니처럼요. 지난주에 아내를 따라 안경점에 들렸습니다. 시력검사를 해보니 노안이라고 하더군요.   어느 순간 글씨가 흐릿하게 보여 책 읽기가 힘들어지더군요. 중요한 서류를 읽는 것도, 메일을 보는 것도 간신히 인상을 써가며  이해하다 보니 실수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노안이 올 때가 된 거겠죠.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 차츰 늘어나겠죠. 안경을 써본 건 처음이지만 돋보기를 써보니 심봉사가 눈을 뜬것처럼 새 세상이 열렸어요.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이면서 다시 오랫동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왜 그런지 눈도 늙는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지 몰라요. 전등을 바꾸고 스탠드를 새로 사고 그것도 안 돼서 눈을 비벼보기도 했어요. 사람 인생을 이십 년 주기로 나누어 생각해 보면 팔십 년 이잖아요. 어쩐지 농구 경기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한 편의 농구경기처럼 인생도 스무 해가 한 쿼터로 이루어진 사 쿼터 인생인 거죠. 제가 중학교 때 시간만 나면 농구를 했거든요. 첫 번째 이십 년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어요. 무슨 상대성의 원리가 있다고 해도 믿어질 만큼요. 초침도 다르게 흐르는 듯했어요. 첫 스무 해는 모든 게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그러니까 하나같이 처음 겪는 시간들이죠. 솔직히 우리의 처음 이십 년은 가진 힘을 다해 성장하잖아요. 몸도 마음도 빠르게 변해갔지만 시간만은 참 더디게 흘렀어요.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뭉게구름이 아주 조금씩 모양과 공간을 바꾸듯이, 어느 날 우리는 스무 살이 되었겠지요. 두 번째 스무 해는 아마도 세상 속에 정착하고 살아 가느라 시간이 있는 줄도 몰랐을 거예요. 스무 살이 되기 전의 시간과 같은 시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근데 이상하리만치 시간만은 변함이 없었어요. 시간을 빼고 모든 것은 변하거든요. 아마도 그 두 번째 스무 해는 가장 바쁜 시간이었을 거예요. 마치 로봇처럼, 자고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그런 것에 대단히 익숙해져 버리죠. 그런 삶의 당연함을 평범하게 받아들이죠. 아마도 시간의 마법인 듯해요. 그렇게 인생 전반전이 끝나고 나면 세 번째 스무 해가 우릴 찾아와요. 저도 그 세 번째 스무 해 중 어느 해를 살아가고 있고요.

삼쿼터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거예요.

돋보기를 쓰게 되니 알게 되더라고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네요. 우리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지만 잃은 것들이 무엇인지 혹은 얻은 것들은 무엇인지 구분하지 않아요. 소중한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거죠. 무엇이 소중한지 모르니까 시간을 대하는 자세도 그렇게 무덤덤 해지는 걸 거예요.

그래도 항상 농구 경기는 사 쿼터에 승부가 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직은 끝나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 거예요.

돋보기안경을 쓰고 나서야 남은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돋보기안경이 그렇게 만들어 주었어요. 잃어버린 것들과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해서, 남아 있는 시간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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