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이쁜 채원이
내겐 딸 같은 예쁜 조카가 있다.
오죽하면 핸드폰 저장된 이름도 "너무 이쁜 채원이" 이겠는가
촛불처럼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능력을 가진 채원이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아이다. 웃을 때면 소프라노 모드로 옥타브가 올라간다. 첫아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채원이는 나를 알아보고 나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왔다. 엄마 아빠 다음으로 우리를 좋아할 거야 우리는 그렇게 자주 이야기 하곤 했다. 허물없이 오랜 시간 가까운 곳에서 안부를 묻고, 사는 모습을 들여다본 사이라 큰처남네와 관계는 오래 본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몇 주 안 보면 생각나고 궁금해진다. 서로 자주 왕래하며 술과 음식을 나눈다. 좋은 이웃이자 친구이다. 손아래 처남이라고 격식을 차린 다거 거나 촌수를 따져가며 예의를 갖추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더 겪의없이, 허물없이 근 이십 년 넘는 시간을 우애 있게 지내 오고 있다.
채원이는 밝고 맑아서 하얀 도화지 같다. 쓰고 지우고 그려 나가기에 충분한 여백을 지닌 넓은 화풍의 도화지 같다. 붓가는 데로 그림을 받아들이는 질 좋은 한지 같다. 웃음도 많고 활동적이다. 열일곱 채원이는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그 나이 때는 그 나이가 생애 얼마나 좋은 시기인지를 모른다. 이제는 친구가 제일인 나이가 되었다. 채원이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와는 다른 궤도로 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그에게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을 사는 채원이가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우리 부부는 늦게까지 아이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치만 우리에게 채원이는 특별한 존재이다. 채원이가 태어나고 성장해 가는 걸 가까운 데서 지켜보고 응원했다. 마치 부모인양 친구인양 삶의 시간 단편 단편에 분말처럼 퍼져있을 조카들과 나눈 시간은 우리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카톡사진을 보거나 공항 면세점에서 선물을 살 때면 딸사랑이 지극하다며 웃어주곤 하였다. 유치원 입학식과 졸업식 때 마치 외동딸 대하듯 애틋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너무 빨리 커버리는 아이들이, 이제는 마음대로 껴안지도, 샤워를 시킬 수도 없게 돼서 한편 마음이 애틋해진다. 마음이 저린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그도 그럴 듯이 내겐 딸이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늘 그랬다. 결혼식날 분명 울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회식 후에 꽤 늦은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조카들이 보고 싶어 무작정 초인종을 눌렀다. 흐트러진 발걸음과 초점 없는 눈동자로 채원이와 지민이 자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쌕쌕거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을 이야기하곤 한다.
"극성이야 민폐야 작작 좀 해 "
친한 선배는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 했다. 애가 없어서 그래 애 낳으면 조카들 쳐다도 안 볼 거라며 웃곤 했다. 쌍둥이가 태어났고 쌍둥이를 동생처럼 키워주고 놀아주는 조카들이 있어 든든했다.
채원이 중학교 졸업 공연 동영상을 같이 보았다. 채원이는 중학교 내내 관운이 따랐다. 전교학생회장 반장 축제 지휘ᆢ 중학교 시절을 이보다 더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채원이의 중학교 학창 시절은 재미와 열정과 추억으로 가득 찼다. 채원이가 학창 시절에 임하는 자세는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보내지 못했던 우리들의 학창 시절을 연상케 해 주었다.
우리가 영어를 처음 배운 건 중학교 올라가서였다. 교육과정이 바뀌어 지금은 초등학교 삼 학년 때 배우기 시작하는 영어를 정확히 열네 살이 돼서야 접하게 되었다. 알파벳 정도는 중학교 들어오기 전 슬쩍 거리며 간신히 쓸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때 가정법 과거라는 문법을 배우게 된다. 영어는 동사와 시제의 영역이라 할 만큼 우리말과는 많이 달랐다.
가정법 과거완료는 과거 사실을 반대로 가정하거나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일을 상상할 때 사용하는 문법이다. 채원이의 학창 시절은 우리에게 가정법 과거완료 시제를 불러일으켰다.
내가 학창 시절을 채원이만큼 재밌게 보냈더라면,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축제를 즐길 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들이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갈 수 없는 곳의 아쉬움과 잃어버린 시간들의 향수가 밀려왔다. 먼 곳의 기억은 그렇게 늘 애틋했다.
지금을 즐길 줄 아는 채원이는 가정법 과거가 아닌 현재시제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남은 생이라도 현재시제로 살아가야 함을 채원이를 통해 배워본다. 늘 계획하고 다짐한 것들이 여지없이 과거시제가 되어 나로 하여금 가정법과거완료 시제의 말들을 늘어놓게는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에겐 이렇게 멋진 조카가 있어 대리만족을 느낀다. 지인분들과 식사할 때면 묻지도 않은 채원이 이야길 자랑삼아 읊어댄다. 다들 자식자랑에 어깨뽕이 왜 생기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알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채원이가 아름다웠다. 니체 말대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자만이 어떤 바람이 자신의 순풍인지를 알 수가 있다. 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창창하기만 할 채원이 앞날에 만날 모든 순풍과 역풍들이 채원이를 성장시키고 꿈꾸는 그곳으로 인도해 주리라 생각해 본다. 코엘료 말대로 꿈꾸는 자만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느 한 가지를 조망할 때 천지간에 모든 것들은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뜻을 모은다"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금도 기숙사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을 채원이가 생각이 난다.
채원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모든 것들이 채원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도드린다
"순풍이 불어오는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자만이 어떤 바람이 적당하고 어떤 바람이 자신의 순풍인지를 안다 무엇이 내게 아직도 남아 있는가"
" "P 480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