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글을 써야지 써야지 마음 먹었었는데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글쓰기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현실이 너무 바쁘고 귀차니즘에 빠져 그렇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내 글을 봤다고 종종 말할 때부터, 뭔가 더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알아보면서,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생겨났다. 하지만, 지인들이 요즘에 왜 글이 안올라오냐고, 독촉(?) 할 때 마다 다시 또 글을 써야 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기도 했지만, 어떤 문제 때문인지 실제로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그래도 2022년을 정리하는 글은 무조건 써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부쳤다. 하지만 매년마다 연말과 연초는 바쁘다. 1년간 일들을 정리해야하고(모임, 행정적인 일 들), 또 가족 행사도 너무 많다. 마음만 바빴지 결국 글쓰기에 나아가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어떻게든 글을 써나가기 시작한다.
1. 운명에 대하여 - 어느새 운명론자가 된 나는 곪아가고 있었다.
오늘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다가 문득 "운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제 지인들간 고기먹는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만난 분은 '인생은 개척하는 것이고, 또 노력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성장할 수 있다'고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정답은 없겠지만 난 어느 순간부터는, 운명은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대단히 치열한' 노력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물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노오력은 진행형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30대 중반을 넘어선 어느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각론에 빠지지 않고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은 효율적으로, 조금은 현명하게 선택을 해나가기는 했다. 하지만 10대, 20대, 30대 초반까지 추구했던 '소명'과 '고귀한 노력'과는 거리가 멀어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냥 하루의 의미, 하루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왜 '장기적'인 목표와 소명을 생각하면서 현실의 나를 짓누르고 노력하며 살아가야하는지, 그 의미를 못찾기 시작했다. 큰 것들은 모든 것들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연 속에서 운명처럼 모든 일들은 정해져 흘러가는 것일텐데'라고 생각했다.
운명에 대해에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변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지난 5년, 특히 작년 2022년에 일어났던 각종 일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박사과정은 그래도 스스로의 의지로 개척(?)하여 새로운 분야에 입학하였고 일과 병행하면서 2학기 동안 18학점이나 듣는 노오력도 해냈다. 그 과정에서 규제샌드박스에 관하여 법제연구원에 이슈페이퍼를 내는 성과도 거두었다(물론 아직까지 박사 논문 주제를 정확히 잡지 못했다는 점은 함정). 그러면서 교육사업은 또 성장을 했고 작년엔 60명이 넘는 학생들을 합격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더불어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스타트업 신에서 사람들과의 활발한 교류도 이어갔다. 이 모든 결과는 운명을 개척하는, 성장을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냥 해야하는 것이라서 한 것이지, 10대, 20대 처럼 새로운 성장을 위해 치열하게 살지 않았던 것 같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고 더 노력 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는 그냥 게으르게 대충 했던 일들도 많다.
반면, 나를 둘러싼 여러 개인적인 일들 - 가족간의 문제 등 -은 내가 벗어나려해도 도저히 벗어 날 수 없었다(아주 개인적인 사정이라 여기서 자세히 기술할 수는 없다). 현실을 도망치고 싶었지만 책임감이 강한 성격 때문에 벗어날 수 없었고 온전히 내가 짊어지고 나를 죽이면서 가족들을 위해 살아갔다. 내가 다 잘했고, 늘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각자 이기적인 존재라는 씁쓸함을 확인할 뿐이었다. 나만 위해서 살아가면 안되나 생각하다가도 내 팔과 다리에 달라붙은 운명, 인연들로 인해서 하루하루 침전하면서 나를 갈아넣으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책임감으로 버텨야 했다. 그래도 태어날 때 몇개 부여받은 재능이 있어서 그나마 밥벌이는 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일에서 몇개의 성과를 낸 것에 위안을 삼으며 지난 1년을 살아냈다.
한편,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내가 모든 것을 다 이루고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빛 좋은 개살구거나 수면 아래에서 발을 미친듯이 휘젓고 있는 지친 오리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들에 만족하기 보다는 운명으로 정해진 여러가지 제약 조건들과 주위 환경들을 많이 원망했던 것 같다. 내가 얻은 것들은 모두 내 노력의 산물이고, 내가 힘든 것들, 빼앗겨 가는 것들은 다 운명때문이라고 못난 생각을 했다. 20대, 30대 초반에 치열한 노력으로 이룬 나의 성과들이 지금 와선 별로 큰 것들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한 몫햇던 것 같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은 꾸역꾸역 해내지만 나를 아끼는 '일'에는 매우 소극적이었었던 것 같다. 몹시 예민한 성격을 타고난 내가 그나마 위안을 받는 것은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마음을 놓고 즐기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취미생활에 집착하고 탐닉했다. 그것들은 긴장으로 점철된 내 삶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긴 했으나 그런 일들로는 장기적인 건강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2022년은 형식적으로는 매우 수고한 해였고, 직업적으로 이룬 것도 많은 한 해였다. 타인이 보기에 매우 성장한 한 해였다. 하지만 속은 점점 곪아 들어 갔다. 그래서 온라인에 글을 많이 쓰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지금 쓰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공개적인 공간이라서,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2. 정해진 운명의 무늬에 그래도 순간의 아름다움은 있었다.
하지만, 인생에 비극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한 해 많이 힘들었지만 딱 12월 만큼은, 정확히는 12월 10일부터 12월 30일까지는 꽤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웠던 3가지 경험 덕택이다.
첫 번째 경험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스탠딩 파티 문화를 경험해 보았다는 것. SNUSV 자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친해진 후배가 본인의 3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지인들을 초대하는 파티를 기획했다. 초대되어 너무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고 새로운 이벤트와 분위기를 경험하며 온전히 새로운 경험이 주는 짜릿한 영감을 느낄 수 있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20대말, 30대초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왜 그 나이 때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까란 회한도 들기는 했다(당시 각론에 집착하며 로스쿨을 다닐지 말지 수년을 고민했고, 또 법조계를 탈출할지 고민하며 수년을 방황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후회를 하고 있기 보다는, 가장 젊은 날인 오늘 또, 새로운 경험을 찾아 새롭게 느끼는 일들을 해야한다고 마음을 다 잡았다. 그 날 친해진 다양한 멋있는 친구들과는 소중한 인연들을 또 이어가는 중이다.
두 번째 경험은 정말 좋은 샴페인을 먹어본 경험이다. 4년전 와인에 입문하였고, 작년부터 꽤 와인에 진심으로 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산제약은 늘 있어 평소 때는 몇만원 대 와인, 최대 10만원초중반 와인까지만 먹어볼 수 있었다. 특히 큰맘을 먹고 산 10만원대 초반의 샴페인은 생각보다 효용을 주지 못했고 그래서 나의 선택지에는 늘 샴페인은 제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 '네가 먹어야 효용을 알 수 있는 술인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약 40만원 정도 되는 샴페인을 선물로 주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시음을 해보고 샴페인에 대한 나의 편견, 선입견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고가의 샴페인은 기존의 와인과는 완전 다른 술이었으며, 꼬냑과 위스키와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의 장점과 또 다른 차원의 맛을 고르게 갖춘 맛을 가지고 있었다. 섬세할 땐 한없이 섬세하면서도 파워풀한 바디감을 부릴 때는 어떤 술보다도 존재감을 드러냈고 탄산감은 매우 세심하고 정갈했다. 해산물과 고기 모두 페어링을 완벽하게 해내는 형언할 수 없는 맛을 경험했다. 역시 진짜 경험을 하지 않고는 무엇에 관하여 단정짓지 말아야 하는 것도 깨달았다.
세 번째 경험은 2022년 마감을 앞두고 생전 처음, 워커힐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사우나를 한 것이다. 마산 촌놈이라 서울 5성급 호텔에서 사우나, 헬스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친한 형의 배우자가 호텔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었고, 고맙게도 같이 가자고 해서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쭈삣쭈삣하면서 가서 뭐하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했다. 런닝머신을 5km 달렸고, 한강이 한 눈에 보이는 노천탕에서 사우나를 즐기며 서로 한 해의 소회를 나누었다.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수 있겠지만 건전하게, 새롭고 인사이트 넘치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과 한 해의 소회를 나누는 것은 새롭고도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3. 2023년의 출사표 - 운명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 운명을 맞이하는 마음의 결은 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2023년 1월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1월은 유쾌한 나날들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를 둘러싼 운명의 굴레서 벗어나지 못했고, 내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그냥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만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한 해를 정리하며 어떻게든 나아가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 2023년의 출사표라고 할까?
일단, 온전히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자고 다짐해본다. 그것이 2022년이 나에게 준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너무 '일'에만 매몰되지 말고 나를 아끼는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다. 2023년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삶의 매력에 더 빠져들고 싶다. '성장하는' 내가 아닌 '감각을 확장하는' 내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이 정해진 것만 같은 현실을 그래도 아름답게 꾸며주는 무늬같은 경험과 감각을 확장하고 싶다.
그리고 늘 잊어버리는 마음가짐을 다시 정돈해 본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결국 그 운명을 맞이하는 마음의 결은 우리가 바꿀 수 있다. 마음의 결을 평소에 정돈해 놓는 노력으로 나의 기분과 현실의 행복은 바뀔 수 있다. 어떤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더라도 어떻게 내 마음의 고요함을 다루는지에 따라 그 다음의 내 행동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 인생의 큰 그림은 결국 정해져 있겠지만 매 순간의 내 마음은,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들은 매 번 달라질 수 있다. 2023년은 나에게 어떤 운명의 그림이 그려지더라도 담담하게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늘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