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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Architect Jul 20. 2023

살아간다 x, 살아낸다 o

2023년도 상반기 결산


제목을 한참 고민하고, 또 본문 커서를 보며 한참 무얼 적을지 고민한다. 공개된 공간에 개인적인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2020년, 2021년에는 거침없이 글을 써냈는데 2022년부터는 글을 쓰려고 마음 먹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매우 복합적일 것이다. 현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버거워 그럴지도 모르겠다.



상반기를 무미건조하게 단편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월, 2월은 쉬어가는 시기였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못봤던 혹은 내가 초대하고 싶었던 지인들을 나만의 공간에 초대하여 손수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좋아하는 와인과 위스키, 꼬냑, 하이볼과 페어링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4년 반만에 처음으로 2박3일 해외여행(도쿄)을 다녀오기도 했다. 3월부터는 전면 오프라인 강의로 전환된 대학원 박사과정에 매진하며 12학점을 수강했다. 중간/기말 시험을 6차례 치르고 3차례 발제를 하고 10장이 넘는 기말 페이퍼를 3개 제출했다. 이렇게 고독하고 힘든 시간을 견디는 한편, 스타트업 법률자문, 스타트업 법률강의, 법률 멘토링 요청도 다수 들어와 함께 병행했다. 6월말이 되자 번아웃이 올 것 같아, 7월초 1주일간 동해 휴가를 다녀왔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이번 시즌 교육사업을 하나둘씩 준비하면서 스타트업 법률자문도 병행하고 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살펴보면 무엇을 했는지만 보이고 삶의 무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흐름을 따라 내 삶을 만지작거리며 들여다보면 살아간 것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미건조한 삶에서도 나는 순간순간을 힘껏 덧칠하며 '살아내려고' 했다. 그 살아낸 주요 시간들을 아래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1월 - 용Bar 개장


여전히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작년 12월의 새로운 경험들로 인한 즐거움은 잠시뿐이고 개인사로 힘들었다. 서울에서 옮긴 집을 꾸며가면서 정리의 시간을 보냈다. 나만의 공간에서 손수 음식들을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했다. 사람들이 내이름을 따서 이 공간을 '용Bar'라고 지칭해줬다. 아직까지도 그 때 만들었던 파스타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는 것을 보면,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일은 사람의 인연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여러 아름다운 술과의 페어링은 만든 음식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맛볼 수 있게 해줬다. 손수 만든 음식과 몇가지 인상깊었던 순간들을 아래에서 공유해본다.










#2월 - 도쿄여행


2018년 9월이 최근 해외를 나간 마지막 날이었다. 2019년은 여러 새로운 일에 도전하느라 바빠서 외국에 나갈 생각을 못했고, 2020년부터는 코로나로 해외를 나갈수가 없었다. 그렇게 2022년이 되었고 상반기부터 주위지인들은 해외에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건강이 계속 악화되고 있었고 친형도 해외에 있었기에 유사시 대비를 위해 내가 한국에 있어야만 했다.그러다 형이 올해 초에 한국에 귀국했고 그제서야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지난해 고생한 스스로에 대한 보상(?)으로 홀가분하게 혼자 또는 친구와 단둘이 가볍게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도쿄를 2박3일 동안 가장 친한 동생과 단둘이 가보기로 결정했다.



테마는 '힐링'여행이었다. 그때문에 무엇도 신경쓰기 싫었고 둘다 파워J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표, 숙소만 예약하고 공항에 도착해서야 어디갈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미 맛집들은 예약이 완료되어 있었고 요즘 핫하다는 시부야 스카이도 당일예약은 불가능하여 바로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물론 그담날 예약하여 결국 가봤다!). 어떤 함박스테이크 맛집은 예약없이 줄을 서면 된다고 해서 점심에 방문했다가, 사실은 당일 아침일찍 방문예약을 해야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불굴의 투지로 아침 일찍가서 예약하였고 결국 점심에 먹고왔다.(바로 앞에 있는 라멘집도 맛있어보여 함박스테이크를 먹고 나와서 바로 라멘을 먹는 점심두끼를 시전하기도 했다)



하루에 최소 5끼, 최대 7끼를 먹고 거의 3만보를 걸었다. 스시, 각종오마카세를 접하고 시장에서의 오도로와 함께 꼬냑을 먹고, 야끼니꾸와 사케를 먹었다. 현지 포장마차 맛집에서 오꼬노미야끼를 먹으며 헌팅하는 사람들의 정취(?)도 느꼈다. 또 라멘집, 함박스테이크집을 가보고, 고급 가베집에서 롤케익을 먹었다. 아사히 건물 꼭대기에서 아사히 맥주를 먹으며 도쿄 야경을 구경했다. 마지막 밤에는 신주쿠 뒷골목에 숨어 있는 위스키 바에 가서 말로만 들었던 닛카 위스키 '요이치'를 먹어보기도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하루만 살았던, 딱 하루만 계획하고 현실을 살았던 여행이었다.







#3월 - 웨이트 PT 시작



사실상 나의 2023년 시작은 3월부터라고 할 수 있다. 1,2월은 쉬어가기로 마음 먹었기에 3월부터 새해 결심을 하나둘씩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나이가 들면서 당연하게 내 옆에 있을거라 생각한 것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은 건강, 지적능력이다. 옛날에는 당연히 기억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잊어버리기 시작하고, 아무리 달리기를 많이 해도 근육이 빠져 몸의 형체가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에 내가 싫어해서 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꼭 필요한 것을 1년에 1개씩 정해서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의 도전은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여태껏 1달 넘게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본적이 없었고, 특히 실내에서 하는 정적인 운동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강골이 아니라 웨이트에 재능이 없는 것도 싫어하는 것에 한 몫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PT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PT 스튜디오를 찾아 주2~3회 PT를 했다. 지금에 와서 PT 선생님이 말하기로는 이 사람이 얼마나 갈까?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웨이트 트레이닝에 부적합한 몸을 지니고 있었고 흥미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지만 일단 딱 20회만 PT를 받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2개월을 꾸준히 했고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2개월이 지난 다음에는 처음으로 자발적 개인 운동도 했다. 하지만 자만감에 무리하다가 4월 말에 다쳐 2주간 운동을 쉬기도 했다. 역시 운동은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기몸에 맞게 부상없이 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상 이후에는 무게치는 것에 안전을 기했고 지금에 와서는 3대 운동(데드, 스퀏, 벤치)을 합하여 총 200kg 이상을 안정적으로 3세트 8개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웨이트를 한 사람에게는 큰 무게는 아니겠지만 헬린이에게는 아주 괄목할만한 성장이다(이번 여름휴가 현지에서 피트니스 1일권 끊어서 웨이트한 것을 보면 헬창의 초입단계가 아닌가 싶다.... ). 지금도 일주일에 최소 3회, 최대 4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달리기 까지 포함하면 일주일에 최소 5회, 최대6회 운동을 하는 중이다.



한편, 운동도 중요하지만 단백질을 챙겨 먹는 것도 중요해서 하루에 최소 100g의 단백질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유당분리 단백질조차도 소화가 잘 안되는 체질이라 두유 12g짜리를 하루에 2-3개씩 챙겨먹고, 단백질 생면, 단백질 프로틴바로 약 50g을 채우고 자연 음식 - 두부, 계란, 육고기 - 에서 약 50g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안먹을 수는 없었기에(?) 한끼는 식단을 하지않고 자유로운 식사를 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느슨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무리한 식단은 시도하지 않았고, 다만 지금 먹는 것에서 탄수화물을 약간 줄이고 섬유질을 늘리고, 단백질은 하루 100g을 먹는다는 조건하에 자유롭게 식사했다. 그 결과 4개월동안 3kg을 벌크업하고 체지방은 0.5kg 줄이고 근육량은 2kg 늘렸다. 이제 앞으로 3개월마다 근육량 1kg을 증량하는 것을 목표로 올해말까지 2kg 근육량 증가, 체지방 1kg 감소를 목표로 운동 및 식단을 할 생각이다.




#4월 - TEMEP 기"술"연구회 창설과 벚꽃모임



기술경영경제정책 대학원(TEMEP)에 진학한 첫번째 이유는 혁신에 대해서 공부하고 혁신을 일으키는 각종 제도, 정책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서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간의 네트워크를 쌓는 것에도 부가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작년 상반기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코로나의 끝자락에 있어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학과 사람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 그리고 파트타임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연구실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원 동료들과 친해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학과내에서 술을 즐기는 사람들과 즐거운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TEMEP 기'술'연구회를 창설하였다. 기술경영/경제/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점에서 기'술'연구회라는 명칭은 매우 적절한(?) 명칭이었다. 개인적으로 술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부어라 마셔라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타인에게 강권하거나 취해서 주사를 부리는 것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술'이라는 것이 그런 행위들로 인해서 멀리해야 할 것, 사회악으로 치부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술도 커피처럼 '기호식품'으로 인정되길 원했다. 그래서 건전하게, 좋은 술을, 적당량을 즐기며 먹는 술모임이라는 캐치프라이즈 아래에 기'술'연구회를 창설하였고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3월에는 창설모임을 하였고 4월에는 대학생의 낭만을 되살리고자(?) 버들골에서 벚꽃과 함께하는 막걸리 모임을 기획했다. 약 15명이 참석하여 학과사람들과 더 친밀해질 수 있었고, 오랜만에 청춘의 시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막걸리는 복순도가와 해창막걸리를 엄선하여 벚꽃을 뒤에 등지고 음미하며 먹었다. 6월에는 종강모임을 하였고 개인적으로 학회원들과 더 친해지며 TEMEP에 진학한 두번째 목표 - 좋은 사람들과의 네트워킹 -를 달성해 나가는 중이다.






#5월 - 6월 - 학업과 학업과 학업



3,4월도 학업으로 바쁜 시간이었지만 시험은 1차례밖에 없었고 발제도 1개 밖에 없어서 비교적 법률업무와 병행할만 했다(그래도 12학점은 힘들기는 했다...). 하지만 5월부터는 시험과 발제, 기말페이퍼까지 휘몰아치며 12학점을 이수해야 했기에 힘들다라는 말을 넘어 버겁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냥 살아낸다는 말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정책에 관한 여러 시각을 기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미시경제학을 학부시절에 배웠지만 다시 되짚어보며 1,2,3차 시험을 치르며 기본기를 다시 길렀다. 10년전에는 단순 암기했던 개념들이 현실 실무와 결합되며 입체적으로 변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현실과 다소 괴리된 경제학에 대해서 마냥 비판적이었지만, 현실을 풀어내는 또 하나의 렌즈를 갖추게 되었다고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공공의사결정론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합리성'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으며 '제한된 합리성'으로 목적과 수단의 인과관계를 결합한 공공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합리성'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며 정치적 협상, 감정적 영역, 넛지, 윤리적 영역 등 다양한 부분을 함께 조화롭게 구성하여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 또한 배웠다. 한편, 재무행정론을 배우며 가장 취약했던 국가 재정, 예산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쌓았다. 국회의 큰 역할이 입법과 예산인데 입법 부문은 법조인으로서 어느정도 잘 알고 있었지만 예산 부문은 문외한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국가가 어떻게 돈을 거둬들이고 어떤 의사결정구조를 통해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지 알게 되었다.



5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시험 4개, 발제 2개, 기말페이퍼 3편을 모두 수행하며 결국 학기가 끝은 났다. 일단 2학기는 업무상 일정으로 휴학할 것이기에 당분간 관악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학기를 끝낸 것을 자축했다. 지난 3학기 동안 30학점을 이수하며 A+ 7개 A0 3개를 받았고 직장인 치고는 학업을 제법 잘 수행해냈다고 생각한다. 박사과정에 진학하며 여태껏 내가 하지 않았던 새로운 학문에 또 도전한다는 것에 걱정이 많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여러개 장착한다는 점에서 그 힘겨운 시간 끝에는 분명 어떤 성장, 뿌듯함, 성취감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업의 챕터1을 끝내며 잠시 휴학을 하고, 박사 연구 주제를 고민해볼 것이다. 이후 학업의 챕터2로 돌아와서 나머지 18학점을 이수하고 박사논문 작성으로 나아가야겠다.



한편, 공부를 하기 위해 고독하게 혼자 있으면서 여러가지 잡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그 잡생각 가운데에도 공유하면 좋은 생각들이 있어서 혼자 썼던 글을 공유하면서 상반기 소회를 마쳐본다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엔 성취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작년에 느꼈다. 하지만 박사과정 학업을 병행하며 여전히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하기 보다는 성취를 하기 위해 마비된 채로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또 다시 삶을 반추해보면 성취, 경험 모두 나에겐 매우 중요한 것들이었다.

(중략)

결국 삶에는 성취, 경험,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루틴이 모두 함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1."성취"라는 자존감을 지켜주는 기본을 쌓고(이것은 적극적으로 행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불행하지 않게 해주는 것 같다) 2.순간을 살아내고 행복을 느끼는 최대한의 '경험'을 다양하게 하고 3.이러한 성취와 경험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루틴'을 해내야 한다. 루틴은 성취와 경험이라는 화려한 것들의 이면에 있는 지루한 작업이지만 나를 지탱해주는 뼈대, 근육같은 존재이다. 사람들은 보통 성취와 양질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삶의 "루틴"이 지켜주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고 롱런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지난 3년동안 3000km를 달렸고 올해도 약 500km를 달렸다. 그리고 주3회 이상 웨이트를 하고 있고 식단관리와 풍부한 영양소를 먹으려 하고 있다. 20대에는 성취에만 매달렸고 30대 초반에는 경험에만 매달렸다면 지금은 성취와 경험에 매달리면서도 그 이면에있는 루틴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내 삶을 유지하면서 성장시키는 것, 가장 중요한 세가지를 꼽으라면 성취, 경험, 삶의 루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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