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와서 과거를 반추해보면 나름 일관된 맥락을 도출할 수 있겠지만, 과거의 나는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았다. 인생을 휘청거리게 했던 단 1년 후의 중요한 일도 1년 전에는 매번 예측하지 못하고 살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막 전기과로 복학했을 때 1년 후에 경영대 전과를 할 것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경영대 공부를 한창하던 3학년 1학기에는 4학년 1학기에 로스쿨 준비를 하기 위해 매진할 줄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석졸업을 하고 들떠서 순진하게 로스쿨에 갓 입학했을 때에는 1년 후에 힘들어 휴학하고 자퇴까지 고려하고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복학해서는 운 좋게 1년 후 대형로펌에 컨펌될지도 몰랐으며, 로펌에 입사했을 때는 1년 만에 퇴사하고 개업변호사가 될지 몰랐다. 더욱이 2019년도에 많은 것들을 시도할 때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고 소중한 기회와 위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에게 계속 찾아왔다.
20살 이후로 매번 변화를 추구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나는 늘 변화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온몸으로 그 불확실성을 맞이하며 뚜벅뚜벅 걸어가야만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내일 나에게 어떤 무한한 기회가 있을지, 아니면 어떤 무한한 좌절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 정해져 있었던 것들 때문에, 좌절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운 좋게 꺾이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정해져 있었던 것들이란,
1. 큰 지원은 못해주었지만 아들이 하겠다는 것은 믿어주었던 부모님,
2.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사회 인프라 덕분에, 평범한 지방 출신 촌뜨기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물론 운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졌을 것이다) 서울대에 입학하여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고 훌륭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3.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며 꿈을 향해 가더라도 애써 막지 않는(스스로 편견에 갇힐지언정) 우리 사회의 자유시장경제,
4. 10년 동안 학생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장학금과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 우리 사회의 선생님과 동료들, 즉 공동체의 따스한 지원들이다.
이렇게 나는 대한민국 공동체에서 우리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좌절과 변화에 꺾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스스로 매우 행운아라고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사에서 이렇게 행운스럽게 정해진 것들 때문에 어떻게든 견디고 또 많이 배우고 살아갈 수 있었다(지금에 와서 보니 그랬다고... 과거는 늘 미화되는 법,..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그래서 다소 추상적이지만 위의 이야기들을 모아 세 가지 이야기로 이 긴 글을 마칠까 한다. 이 이야기들은 내가 지향하는 자유선택사회와 연결되며, 내가 앞으로 일을 해나감에 있어서 꼭 해야 할 일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선명하게 구별하는 기준점이 될 것이다.
첫 번째는 기회와 준비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는 다양성과 차별화에 대한 탐미, 노력에 대한 선한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기회와 준비에 대한 이야기
아직 젊고, 배워야 할 것이 많으나 그래도 지난 세월을 반추하면 기회는 늘 찾아왔다. 다만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었고, 그때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가 중요했다. 한때는 법조인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하여 매우 후회하였으나 2019년도 이후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내가 변호사이기 때문에 누리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현재는 매우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감사한 변호사의 길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입학 후에 최선을 다해서 법학이 아닌 학부전공 - 그 때 내가 꼭 해야만 했던 것 -에 충실했었기 때문이었다. 로스쿨이란 제도가 갑작스럽게 새로 도입되어 법조계로 진로를 전환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밑거름(전공의 충실성, 고학점, 기타 정성 요소 등)이 작용하여 큰 무리 없이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로스쿨을 다니면서는 게을렀고,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들이 왔어도 잡지 못했다. 심지어 좋은 기회들을 내가 발로 차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2019년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많이 반성했다. 그 이후로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내 꿈의 연장선상에서 나아가야 하는 길이면 꼭 붙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당장 하기 싫은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단련하고 스스로를 갈고닦으려 노력 중이다. 불완전한 미래를 맞이하는 내 준비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2. 다양성과 차별화에 대한 탐미/ 노력에 대한 선한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
나의 인생을 바꿔놓은 책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늘 첫 번째로 꼽는다.
"모든 인간은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 방식이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대로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밀은 자유론에서 "모든 인간은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 방식이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대로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지금 들어도 늘 설레는 문구다). 나는 인간이 개별성을 발휘하고 관습에 억압받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다양하게 살아갈 때, 각 개인이 행복할 것이며 사회는 진보할 것이라고 '믿는다'(증명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여러 변화를 시도하면서 안주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다양성과 차별화에 대한 '탐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에도 다른 공간에서 수천수만 명의 기업가들이 다양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구상하고, 수억 명의 니즈를 충족하려고 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며 뭔가 재미있고 사회에 유용한 것들을 만들고 싶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대로 우리는 붕어빵대로 찍어낼 수 없고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위에 말한 대로 우리가 다양하게 차별성 있게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리고 그 방식이 다른 사람의 삶에 위해를 가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그에 대한 대가가 확실하게 주어져야 한다. 다른 말로 치환하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에 따라 시장경제가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치열하게 각자의 창의력으로 공정한 룰에 따라 경쟁하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과실을 누리고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그 사회는 우리의 다양성과 차별성을 더욱 가속화 시켜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 것이다.
3. 공동체주의
사실 법학을 전공했다고 하나 학문적 공동체주의의 정의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공부하면 계속 잊어버린다. 기계적으로 외워서 그런가 보다). 다만 위에 내가 말한 경쟁이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서 공동체주의의 필요성을 말해보고 싶다
자유로운 경쟁을 하다 보면 사회의 전체적인 부는 증가할 가능성은 높으나 배분적 정의는 나빠질 확률이 높다. 그 과정에서 경쟁을 할 '기회'조차도 못 가진 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계속적으로 양산된다. 그 사람들은 내가 삶의 최고 덕목으로 삼았던 다양성과 차별화를 추구하지 못하고 어떤 제약 속에 묶여서 계속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난 그런 사회는 용납할 수 없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가 사람들을 보살피고 인큐베이팅 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바로 공동체주의라고 생각한다. 또한 혹시나 경쟁에서 패배하더라도 우리 공동체가 잘 보듬어 그 사람이 다시 또 도전할 수 있도록 품어주고 지원해주는 것이 공동체주의의 궁극적인 추구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루하고 추상적인 글을 정리하자면,
1번 이야기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에서 내가 견지하고자 하는 삶의 자세이고, 2번 3번의 이야기는 불확실한 현실에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행운들(정해진 것들)이 계속되기 위한 사회의 조건이다. 나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그런 행운과 조건들을 계속하여 이어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삶에 오는 수많은 위기와 기회들을 1번의 자세로 받아들이고, 그 많은 위기와 기회를 2번, 3번의 사회로 치환하는데 힘쓰고 싶다. 그것이야 말로 내일을 전혀 내다볼 수 없는 현실에서 내가 인간답게 타인과 차별적으로 살아갈 할 수 있는, 독창적인 나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믿는다.
지난 1년 전 2020. 4. 어느 봄날에 쓴 5편의 글을 모두 옮겨 보았습니다. 지금도 거의 유사한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시나 위에 언급했듯 저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늘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 글을 우연히 보게되는 모든 분들이 불완전한 삶을 이해하면서 우연한 행운과 사소한 행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쩌다가 변호사가 되었는가? - 그리고 그 후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