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 Architect Apr 24. 2021

나는 어쩌다가 변호사가 되었는가?(4편)

2019년에는 닥치고 무조건 "도전"


2018년 말에 개업 변호사를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고, 새로운 진로를 알아보다가 좌초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개업 변호사를 계속하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막막했기도 했고, 맡고 있었던 사건들을 끝내 해결하지 않고 가면 의뢰인들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찾아온 고난의 시기를 초심으로 돌아가 묵묵하게 맞이하기로 했다.


다만, 쳇바퀴 돌듯 변호사 일만 계속하다 보니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아 삶의 큰 줄기를 다시 잡아보기로 했는데, 그래도 그 이전에 내 삶에 기반을 마련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현실에 두 다리를 딛고 중심을 잡기 위해, 법률사무가 현재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법률사무를 병행하며 새로운 것을 도모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2019년이 되자 삶을 되돌아보고 두 가지 질문을 하였다.


1.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가 어떤 것인가?

2.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할 때 흥미를 가지는가?



1.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가 어떤 것인가? - 스타트업, 소상공인 불공정거래, 도시계획



1번에 대한 답은 머릿속에서 세 가지 방향으로 압축되었다.


첫 번째는 공간을 구성하고, 배치하고 심미감 있게 환경을 꾸미는 일이었는데 법조인으로 관여할 수 있는 분야를 좀 더 구체화해보면 도시계획이나 도시재생에 관한 일이었다.

두 번째는 어렸을 때부터 쭉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므로 좀 더 구체화시켜서 갑과 을 간의 불공정거래 분야, 특히 소상공인과 관련된 불공정거래였다.

세 번째는 경영대학을 졸업한 것은 비즈니스라는 도구가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저성장 시대 또는 AI 시대에서는 제대로 된 스타트업이 더욱 활발하게 양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도시계획, 소상공인의 불공정거래 이슈, 스타트업 분야를 일단 마음에 두고 기회가 오면 일단 다 도전해보기로 했다.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이라 머리로 생각해서는 자신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지 안다. 하지만 실제로 하다 보면 현실과 생각의 차이를 깨닫고 생각을 현실에 동기화시키거나 포기하게 되는데 그때 자신이 정말 그 분야를 좋아하는지 판가름이 난다. 기회가 되면 다 도전하겠다는 의미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먼저 도시계획,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지고 페이스북으로 관련 종사자에게 연락을 하여 찾아가기도 하고, 각종 시군 도시계획 위원회에 위원으로 지원하여 보령시 도시계획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도시계획, 건축 사무를 하다 보니 용어에 익숙하지 않았고 내가 관련 전문가가 되기에는 법률 이외에 추가적으로 필요한 지식에서 기초가 부족하다는 점도 깨달았으며, 공학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추가적인 공부를 깊게 할 의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변호사로서의 최소한의 관심을 두고 내가 할 역할은 다하되 이 분야를 내 전문분야로 잡겠다는 생각은 일단 접게 되었다.



두 번째 분야인 '소상공인 불공정거래'와 관련해서는 2019년 여름부터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 상가번영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거기서 친해진 상인들이 상가임대차보호법과 관련하여 강의를 요청했고, 상가번영회 회의에 찾아가서 무료로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한 법률 강의 및 자문을 해주었다.


또한 그 즈음에 소상공인 방송에서 불공정거래와 관련하여 변호사로 출연하여 법적 내용을 다뤄줄 수 없냐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1. 일반 불공정거래 2. 가맹거래법 3. 대규모유통업법 4.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이슈를 정리한 다음 소상공인 방송에 4회 출현하여 관련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말에는 상가번영회의 자문 위원으로도 위촉되어 나성동 상인들에게 법률 상담을 계속해 주고 있다. 소상공인 불공정거래 분야는 기회의 균등 또는 공정한 규칙(Rule)에 관심이 늘 많았던 내가 보람과 의미를 느끼는 분야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 기회가 닿는 한 법조인으로서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세 번째 분야인 '스타트업'과 관련하여서는 세종에서는 관련 기회를 잡을 수가 없어 서울에서 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서울대 경영대학 벤처스 포럼에 참석하여 후배들이 론칭하는 사업에 법률자문을 제공하기도 하였고, 거기서 오랜만에 만난 후배를 통하여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당시 우연히 만난 회계사 후배는 학부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우연히 포럼에서 보게 되었고 안 본 사이에 전문엔젤투자자로 활동하는 등 스타트업계에서 전문가로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고 많이 배우고 싶었기에 업계 관련 인맥들을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고 그 결과 스타트업 사업가들을 소개받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도 다져나가고 법률자문도 해주었다. 또한 고벤처포럼에 참여하며 이상학 부회장님과 인연을 맺게되었고 청년창업꿈터 입주기업에 법률자문을 하고 입주기업심사평가도 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되었다.


한편으로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창업지원센터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입주기업에 법률자문도 하게되었고 카이스트 창업원 E5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게 법률자문을 해주었다. 서울대학교 학생벤처창업동아리 SNUSV.NET에 자문변호사로 위촉되어서 법률자문도 진행중이다.


스타트업 업계종사자들을 만나면서 유쾌하고도 미래지향적인 발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업가들이 다소 위험한 시도를 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주위 전문가들이 자문을 적절히 해주면 되는 영역이고, 오히려 그들이 꿈꾸는 불가능한 시도들을 함께 설계하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불행을 덜어주는 변호사의 역할을 넘어 사업가가 꿈꾸는 장미빛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었다. 혁신과 열정, 욕망이 끓어 넘치는 이 업계서 장기적으로는 주된 플레이어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경영대학을 진학했을 때 내가 꿈꾸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다.


다만, 차근차근 기초부터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기에 우선 스타트업 업계에서 법률자문을 하며 변호사로 성장하고,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스타트업의 코파운더가 되거나, 관련 정책을 제안하고, 좋은 기업에 투자도 해보고 싶다. 




2.내가 실제로 무엇을 할 때 흥미를 가지는가? - 법률강의, 교육 서비스의 제공


대학교 입학 이후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과외를 꽤 많이 했다. 그리고 로스쿨 휴학을 했을 때에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강남 대치동에서 구술면접 강사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다.


공부방법론에 대해서 지인들에게 늘 조언을 해주는 편이었다. 가르치는게 즐거워서 변호사가 되어서도 종종 로스쿨 입시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고, 입시전략을 세워주고 수험법학 공부방법을 알려주곤 했다(법학을 잘한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수험' 법학을 효율적으로 하는 부분에는 자신있었다, 왜냐하면 로스쿨에서 방황한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효율적 공부'는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한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미 수준에 그치는 정도였고 업으로 하기에는 변호사로서 간지가 안난다는 생각을 하거나, '이러려고 변호사 됐나'라는 고상한 생각에 머물러있었다. 주위사람들은 계속 나에게 가르치는 능력이 있으니 가르치는 일을 하면 좋을 거라고 계속 조언을 했다. 사실 가르치면서 스스로 큰 희열을 느끼는 편이긴 했다.


2019년부터는 생각을 달리하기로 결심했다. 타인에게 내 지식을 나누어 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주 의미있는 일이었고 그로부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그것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따라서 공적/사적 강의를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의미있는 것으로 여기기로 하고 강의 기회를 계속 만들어 보려고 했다.



첫번째 강의 분야는 '학교폭력예방법' 강의였다.


세종시에 내려와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으로 위촉되었고 그 덕분에 학교폭력예방법을 접하고, 관련 실무경험도 하게 되었다. 세종시에서 매우 친하게 지내던 김진구 선생님이 있었는데, 김진구 선생님은 노량진 전문상담교사 임용고시 1타강사였다. 학교폭력예방법도 임용시험 범위라 본인이 법 전문가 아니기에 학교폭력예방법을 가르칠 때마다 불안하니 나에게 특강을 해볼 것을 제안하였다. 제안을 받아들여 노량진에서 200명을 앞에 두고 실강으로 '수험'목적에 맞는 학교폭력예방법 강의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노량진 1타강사에게서 '너 사교육강사 하면 나를 넘어서겠다'라는 아주 큰 칭찬을 들었다.


이후 강의 자료를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세종 양지고, 새움중, 종촌중에서 학부모, 교직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예방법에 관하여 특강을 진행하였다. 사교육 강사로 시작한 일이 보람되게도 공적인 자리에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넘어간 케이스였다. 올해도 제안을 받아 4월중으로 노량진 강의를 할 예정이다.

2019년 노량진 학교폭력예방법 강의



두번째로 대학 강단에서 '행정법'을 가르쳤다.


대학강의는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수입에는 크게 도움이 안되지만(강사료를 받아보니 정말 박봉이었다...) 나름 '간지'에 대한 욕망이 있었기에 기꺼이 대학강사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머리속에 가득차있던 법대교수들의 강의력에 대한 불만을 싸그리 모아서 내 제자들에게는 그 모든 것을 불식시킨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자만감...).


그래서 세종대학교 행정법 강사에 지원하였고 합격하여 9월부터 15주간 강의를 하였다. 매주 10시간 정도 강의준비를 해야했는데 해나가는 때에는 고역이었지만 자료와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고, 학생들에게 법 이외에 도움되는 이야기를 해야해서(졸릴 때 풀 이야기를 준비해가야 한다!) 스스로 많이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강의평가도 만족스러워서 '간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답안을 하나하나 채점하면서 학부/대학원 시절 내 답안지를 채점하던 교수님들의 고충도 꽤 컸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다시금 겸손해졌다.




세번째 분야는 '로스쿨 입시 자기소개서 첨삭'이었다.



자기소개서 첨삭에는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있었는데, 당시 메가로스쿨이 해주는 첨삭의 퀄러티를 접해보면 너무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3년간 약 20개 정도의 자기소개서를 취미로 첨삭해준 경험을 살려서 전문적이고도 상업적으로 자기소개서 첨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기소개서 첨삭은 내 노동력을 온전히 쏟는 일이기 때문에 첨삭해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어서 25명에 한하여 신청을 받았고 그중 5명은 경제형편이 어려워 무료로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11개 대학에 17명의 학생을 합격시킬 수 있었고 정량적으로 1.5배수 내였던 학생들(15명)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합격을 시켰다. 첨삭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도 함께하면서 법조계 선배로서 궁금한 점에 대하여 답변도 해주였다. 사교육을 하면서 수익을 얻고, 가르침을 주면서 보람도 얻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문턱을 낮추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왜 '간지'운운하면서 진작에 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역시 모든 일은 경험해보기 전엔 모른다).


한편 자기소개서 첨삭 과정에서 각 학교의 성향을 세세하게 잘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학교별 입시전략이나 정보에 대한 새로운 내용들도 많이 알 수 있어서 현재는 입시상담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올해 여름에도 시간이 가능하다면 30명 내외로 로스쿨 입시 자기소개서 첨삭을 진행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2020년 초에는 로스쿨 민법선행강의를 진행하였다.


로스쿨 합격생들의 기존 민법선행이 예비순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개인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관행을 한번 바꿔보겠다는 마음으로 민법강의를 하였다. 왜냐하면 예비순환은 옛날 사시시스템의 첫단추를 꿰는 강의(객관식 1차 대비용)라 너무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가르쳐서 어차피 다 잊어버리고 로스쿨에 입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예비순환강의는 사시 1차를 2~3년에 걸쳐서 준비할 때 공부의 긴 호흡을 준비하는 첫단추로 적절한 것이지 로스쿨 현실에는 맞지 않았다. 로스쿨 현실은 당장 3개월 후에 사례형 답안을 써야 하는 구조화된 수험법학 능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따라서 로스쿨 입학후 사례형 답안을 바로 쓸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개념을 유기적인 틀로 제공하고 반복적으로 훈련시켰고, 기출문제 위주의 개념 분석과 또 반복적으로 사례 작성을 시켰으며, 요건사실론에 입각한 틀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수강하였던 학생들은 많이 만족했다.





3.여전히 계속된 개업변호사의 삶


위의 1, 2번을 하면서도 개업변호사의 삶은 계속되었다. 2019년에도 2017년, 2018년과 유사한 사건 수를 유지하며 보냈던 것 같다. 시간은 촉박하였지만 1번 2번의 다양한 시도속에서 얻은 엔돌핀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짧은 시간 집중하여 사건들을 처리했던 것 같다.


내가 좋은 변호사라고 볼 수 있는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의뢰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세부 기술적인 것에 골몰했다면 이제는 큰 그림을 그리고 우리측이 가진 증거를 시의적절하게 언제 보여줘야할지를 고민하는 등 경험속에서 노련함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의 삶을 함께 짊어진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라 부담이 크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머리속에 맡은 사건들이 머리 속에서 둥둥 떠나니고 있다. 전통적인 법률사무를 버리지 않는 한 끝없는 고민일 것 같으나, 오히려 위의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전통적인 법률사무를 아예 하지 않을 생각은 당분간 사라졌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꺼이 해보고, 그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효용과 기쁨을 줄 수 있는한 개업변호사의 삶은 계속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삶의 방향을 잡아가고 더듬어 가면서 품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마지막 5편에서는 앞으로 내 삶의 방향성, 태도, 소신, 비전 등에 대해서 밝히고 긴 글의 여정을 마칠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어쩌다가 변호사가 되었는가?(3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