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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Architect May 05. 2021

내가 본 사람이 나태주 시인이었을까?

나태주 시인의 시와 삶으로 깨닫는 자세


#1. 우연히 그를 만났을까(?)



공주의 한 카페에 갔었다. 원래 카페에 진열된 책을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오늘따라 나태주 시인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시집을 쭈욱 훑어 보고 있는데 카페에 서글서글하게 생긴 분이 들어와 반갑게 카페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순간 뭐랄까, 뭔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데,,, 순간적인 동물적 감각으로 '나태주 시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빠르게 인터넷 검색을 하였고 얼마 전에 유퀴즈에 나오셨던 영상을 30초 정도 보았다.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멀리서 보이는 그 분과 유퀴즈에 나오는 분이 흡사해 보였다. 그렇게 약 30분 가까이 흘렀고 그는 카페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나가셨다. 계속 머리에 밟혀서 서울에 올라오는 길에 유퀴즈 풀영상과 나태주 시인에 관한 기타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그가 공주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사를 건네던 목소리도 흡사해 보였다. 직감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이게 웬일인가? 인사라도 할 걸 이라는 아쉬움에 그에 관한 영상을 계속 살펴보다 그의 고운 말을 기록하고 다시 한번 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2. 오늘의 약속



무척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단 하루를 더 살게 하는' 시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태주 시인의 "오늘의 약속"이란 시였다(사실 '풀꽃'이란 모두가 아는 유명한 시는 그 뒤에 알게 되었다). 힘들 때면 그 시를 꺼내서 오늘만 살기로 했다. 지금 보아도 아름답고 뭉클해지는 시다. 이 시에 대한 기억과 추억으로 오늘 나는 공주의 카페에서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집어 들었다.






오늘의 약속


나태주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3. 꾸준함이 무기다.



'풀잎'이 종로 교보문고에 커다랗게 걸리고,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사람'이라는 나태주 시인 글귀가 수능 자필 확인 문구로 쓰이게 되면서 시인은 매우 유명해졌다. 그래서 가장 힙(?)한 사람들만 출연하다는 유퀴즈에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그는 1945년생으로 한국 나이로는 77세다. 그가 문인으로 등단한 것은 1971년이었지만 소위 '대세' 시인이 된 건 2010년대 이후 60대 중반을 넘어서이다. 그전까지는 지방 작은 도시의 시인에 불과했고 전 국민이 다 아는 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꾸준하게 글을 썼고(그의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고, 낮에는 선생님으로 밤에는 시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약 5000페이지에 이르는 시를 썼으며(편수로는 3000~4000편) 그 꾸준함 덕분에 선생님으로 정년을 마친 후에 시인으로 더 빛나게 되었다. 유퀴즈를 다 본 후 100세 시대에 70세가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명성을 얻고 있는 그가 부러웠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불안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견지해야 하는 자세는 '꾸준함', 그리고 대기만성형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한 번 더 다짐을 하게 되었다.




#4.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일지도,


순탄했을 것만 같던 그의 인생의 행간에도 불행이 군데군데 있었다는 것을 다른 기타 영상을 살펴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는 교장 정년을 6개월 남겨놓고 쓸개가 터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급하게 입원하게 되었고 1주일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의사들이 모두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하나님의(그의 종교는 기독교이다) 기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다고 한다. 유퀴즈를 보며 노년이 빛나는 그가 부럽기만 했는데 62세 때 생사를 오고 가는 일이 있었다니 타인의 인생은 함부로 평가하거나 논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의 회복 끝에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간 일부, 콩팥 일부, 췌장 일부 등을 절제하게 되었고 오늘 죽고 내일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 일이 2007년이었는데, 그 뒤에 계속 시를 꾸준하게 썼고 그 결과 소위 '대세'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대기만성형이 아니라 꾸준하게 그의 업을 놓지 않고 그가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일을 계속했고 매일을 그렇게 살아갔기에 오늘의 그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5. 매일 조급한 나, 그런데 우리는 100년 후에는 모두 사라져요.


요즘 들어 계속 조급했다.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며,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 이 인생을(물론 내가 자초한 것이지만) 보면서 성과에 목말라했다. 멀리서 보면, 혹은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잘하고 있을 것인데, 내 욕심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다. 여러 기회가 오다가도 코로나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 때문에 기회가 사라지거나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나와 함께 대학을 입학했거나, 대학원을 입학했던 친구들은 저 멀리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계속 변화를 거듭한 덕분에 현재에도 계속 초년생인 것만 같다. 물론, 나의 과거 선택들에 대해서는 먼 훗날에 바라보면 '참 잘했다'라고 생각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다만 요즘의 나는 꽤 많이 조급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우리는 100년 후에 모두 사라져요'라는 책을 보았고, 오늘 우연히 나태주 시인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금 '오늘의 약속'이란 시를 들쳐 보았다. 우리들의 사소한 이야기만 하고, 또 오늘 행복하기로 하는 삶을 살기로 한 번 더 다짐해 본다.



그에 관한 영상들을 살펴보며 지금 누구나 선망해하는 대세 시인인 77세의 그에게도, 62세 때 생사를 오갔고, 또 그 이후에 가족에게 마음 아픈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그렇게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타인들이 모두 행복해 보이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누구나 매일의 불행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무탈히 살아가는 것, 그리고 우연히 나태주 시인을 보게 되어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 글을 쓰게 되는 것이 다행스러운,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6. 한 번 더 호흡을 가다듬고,


오늘만 살기로 결심한다. 나태주 시인이 한 영상에서 '계획' '목표'의 서양적 의미에 우리는 매몰되어 있다고 했다. 하루의 계획은 오늘 아침에 오늘의 일을 정하는 것이고,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있다고 한다. 요즘 미친 듯이 올라가는 집값과 투기냐 투자냐 하며 논란이 되고 있는 코인판을 보며 나도 편승하여 경제적 기반을 계획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은 웃으면서 저의 집은 공주의 8000만원 짜리지만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게 인생의 행복이다고 말한다. 세대도 다르고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이라 나는 그렇게까지는 살 수 없겠지만 뚝심 있는 마음가짐과, 시인으로서 그의 삶은 실로 존경스럽고 닮고 싶다.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스타트업 씬의 한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나의 색깔과 중심을 찾아가며, 한 번 더 호흡을 가다듬고 세월이 변해도 변치 않을 품위를 가진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늘 하루 내 중심을 잡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다 보면 적어도 노년이 빈곤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되었다.






P.S. 1.


아래의 시는 나태주 시인이 생사를 오고 가며 병상에 있을 때, 부인의 생각을 젊은 시인(이정록 시인)이 시로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를 읽어보면 한 우물만 판 나태주 시인의 삶을 묵직하게 느낄 수 있다. 30년, 40년 후에도 이런 장인이 나올 수 있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연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기적처럼 다시 살아서 아름다운 시로 세상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었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느님!


이제는 저 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느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 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 뿐이에요.


한 여자의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느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의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P.S.2.


뜬금없이 하나의 소망을, 꿈을 말해보자면 나태주 시인처럼 본인만의 색깔과 멋이 있는 사람이 되어,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 오늘 내가 나태주 시인의 유퀴즈 영상을 보고 유쾌함과 인생의 새로운 깨달음을 느꼈듯이, 나의 삶이 단 한 사람만이라도 비슷한 영향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미련하게도 아직까지는 코인의 수익률 보다 단 한 사람에게 주는 선한 영향력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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