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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버터젤리 May 25. 2021

월급 250만 원으로 어떻게 살아

그 돈으로 어떻게 살아


   사회생활 5년 차, 내 통장에 매달 꽂히는 숫자를 처음 들은 나의 오랜 친구가 뱉은 말이다. 글쎄 친구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아주 잘살고 있다. 적어도 친구의 말을 내 두 귀로 직접 듣기 전까지는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버는 돈이 비교적 적은 건 사실이지만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것은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친구는 어느 마케팅 회사의 팀장으로 있다. 나보다 1년 정도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했지만 초고속 승진을 연이어하며 벌써 몇 년 전 팀장을 달았다. 지금은 열명이 넘는 팀원들을 이끌고 있으니 연봉이 나보다 훨씬 높은 건 보지 않아도 뻔한 사실이었다.


먼저 내가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는 회사는 워라밸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곳이다. 여기서 말하는 ‘철저하게’는 일 년 중 정시퇴근을 하지 않는 날이 열흘도 되지 않아서 퇴근 후 나의 삶이 완전히 보장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나 또라이 한 명은 있기 마련이지만 ‘미친 거 아니야?’ 정도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지금까지 딱 한 명 만나봤으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또 하는 일은 어렵지 않고 나름의 의미도 있어서 업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한편 나의 친구는 침대맡 창문 너머로 곧바로 사무실 건물이 빼꼼히 보이는 서울시 한복판의 월 100만 원이 넘는 오피스텔에서 생활하고 있다. 물론 월세는 회사에서 매달 지급해준다. 퇴근은 새벽 두세 시가 기본이고 밤을 꼬박 새우고 출근하는 날도 적지 않지만 이에 따른 보상이 확실하다. 잘은 모르지만 젊은 대표와 직원들로 이루어져 있는 친구의 회사는 업계에서 꽤나 알려져 있어서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곳이다.


자, 당신이라면 이 두 개 회사 가운데 어느 곳을 선택하겠는가. 작디작고도 귀여운 월급이지만 이를 사용할 시간만큼은 보장해주는 곳인가 아니면 내가 갖고 싶은 건 두 번 세 번 고민하지 않고 바로 결제할 수 있는 잔액이 넉넉한 통장과 함께 회사에 충성할 시간만을 허락해주는 곳인가.


예상컨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유시간보다는 이와 맞바꾼 넉넉한 통장잔고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많아도 돈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궁금하다, 충분한 월급도 시간도 보장해주는 직장은 과연 어디에도 없는 것인지.


    돌이켜보면, 지금의 직장을 선택할 때 돈이냐 시간이냐의 문제는 수많은 고민 요소들 가운데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월급이 적더라도 워라밸이 지켜지는 직장에 다닐 거야’라던가 ‘다른 건 몰라도 돈만큼은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에 다닐 거야’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단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라는 오랜 고민을 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직장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는 나름의 확고했던 기준에도 불구하고 오랜 친구의 말 한마디가 나를 이렇게도 흔드는 걸 보니 이제는 나도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월 250만 원, 2억 5천만 원짜리 집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저축하면 어림잡아 10년이 걸리는 돈이다. 하지만 서울 시내에 위치한 직장으로의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있는 매물만 확인해봐도 그 돈으로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것이다. 물론,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저축하기란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금수저가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하기에 집값은 둘째치고 그만큼의 돈을 저축하는 것도 불가하며, 집값이 앞으로 10년간 오르지 않는다는 보장도 할 수 없기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적어도 나는 지금의 직장을 다니면서는 집을 장만할 수 없겠구나”


한 번은 직장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서 지금의 직장에 남아있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는 서울시내에, 아니 수도권에 집을 장만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며 가볍게 나눈 대화였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요즘은 청년 대출이라던가 신혼부부 대출도 잘되어 있어서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고 주변의 결혼한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는 어떤 결정을 할 때 돈이 그 결정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요인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돈, 그리고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게 되었고 또 앞으로는 이보다 한층 더 복잡해진 삶의 문제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기 전 나는 내가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쩌면 남들처럼 좋은 집과 멋진 차가 있는 미래를 계획할 수도 당장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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