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마음에 드는 옷이어도 내 것이 되어 옷장에 걸리는 순간 그것은 특별함을 잃는다. 새 옷에 대한 감흥은 오래가지 못하고 우리는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사 모은다. 내게는 삶의 경험들 또한 이와 같다고 느껴졌다. 내게 주어진 것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 이미 경험한 것보다는 그렇지 못한 것들에 시선을 두고 그것들이 내 것이 되는 순간 또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늘 새롭고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의 내 상황에 대한 불만은 늘어만 갔다. 대학 때는 나보다 더 좋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이후에는 나보다 더 이름 있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전국 순위권에 드는 대학을 나온다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아니고, 이름 있는 직장에 다닌다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져보지 않은 것들이기에 부러웠다.
한 번은 지인으로부터 ‘부정적인 사람인가 봐요’라는 말을 들었다. 무례했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털어버리거나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불만을 늘어뜨려놓는 게 특기인 사람이었으니까.
돌아보면 대학 때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대단하지도 않은 대학, 몰려다니며 술 마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만히 보면 나는 정말 한결 같이 부정적이었던 것도 같다. 나의 한결같음은 직장생활에도 드러난다.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딱 두 마디 ‘집에 가고 싶다.’ 그리고 ‘일하기 싫다.’이다. 출근하는 와중에도 퇴근하고 싶은 게 직장이 아니던가. 일을 하면서도 하기 싫은 게 업무 아니던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원래 부정적인 사람이야’에서 ‘나는 왜 부정적일까’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건 그 사람으로부터 들은 ‘부정적인 사람이네요.’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생활을 돌아보며 아쉬워하는 마음이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서 지금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며 드는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조금 더 재밌게 일할걸, 상사 욕을 할 때 하더라도 좀 더 최선을 다해볼걸 하고 말이다.
얼마 전 픽사에서 새롭게 개봉한 <소울>이라는 영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아기 물고기가 물었다. ‘저는 바다를 찾고 있어요. 바다에 가려면 어떻게 하죠?’ 그러자 어른 물고기가 말했다. ‘아가, 네가 있는 이곳이 바다란다.’ 아기 물고기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여기는 물밖에 없는걸요? 저는 바다를 찾고 있다고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바다를 찾아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일찍이 그 바다를 찾아 이미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아직도 열심히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이미 바다에 도착했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아직까지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삶의 바다는 이야기 속의 아기 물고기가 찾고 있는 바다와 같이 느껴졌다. 나는 이미 그 속에 있지만 스스로만 알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아니에요. 여기는 물밖에 없는걸요?’라고 말하는 아기 물고기의 모습은 마치 내가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의 의미를 모른 채 끊임없이 무얼 더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닮아있었다.
나는 대학에서만 들을 수 있는 수업과 사귈 수 있는 친구들과 시간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내 주변에는 물밖에 없어, 나는 바다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헤엄치며 소중한 것들을 모두 흘려보냈다. 직장에서는 일하기 싫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면서 이곳에서 역시 배울 수 있는 업무 능력, 사회생활, 그리고 얻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나는 바다로 가야 한다며 친구의 이름 있는 직장과 높은 연봉의 직장을 바라보며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직을 해야 하는 건 아닐지,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건 아닐지 매일같이 고민하면서 말이다.
친구의 값비싼 물건, 높은 연봉의 직장이 전혀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앞으로도 살아가며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이고 비교도 되겠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 나도 가지지 못한 것들보다는 가진 것에 시선을 두고 살아갈 수 있을까.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가 아닌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관점의 차이를 말하는 이야기 말이다.
한번 누려봐야겠다.
내가 꿈꿔온 삶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좋은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