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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Nov 03. 2022

도대체 꿈이 뭐길래

꿈에 관한 다양한 정의

 꿈이 뭘까.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나는 끊임없이 꿈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해왔다. 꽤나 고집세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어린이였던 나는 내 꿈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간혹 "선생님 저는 꿈이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반친구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드넓은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하고 싶은 게 없을 수 있지?'


 정말이지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문제였던 아이였다.




    하지만 정작 -법적- 성인이 되고난 후에는 꿈이 사라졌다. 살면서 한번도 꿈이 없어본 적이 없어서, 꿈이 없는, 목표가 없는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루종일 방구석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했다. 그 즈음에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나무위키에 성공한 사람들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에 올라온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곤 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꿈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살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내 꿈이 무엇인지, 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되었다.




    워크맨 교사 편에서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장성규가 말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꾸는 거야.






    한편 유튜브 sellev.에서 김이나는 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꿈은 모호할 수록 좋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다듬어가는 것입니다.




 그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꿈이 직업이나 목표가 아니라 과정 그자체가 될 수 있다니. 꿈이 명사로 끝나지 않고, 꼭 명확할 필요가 없다니. 세상에 이런 꿈도 존재한단 말이야?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았다. 꿈이 동사라면, 모호하다면, 내 꿈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무슨 글이어야 할까? 아무거나 상관없었다. 글이면.




    그 때부터 내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블로그를 쓰고, 브런치를 쓰고,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동화를 썼다. 카피라이터를 준비하기도 하고 잡지 에디터를 지원하기도 했다.


 매번 쓰는 글의 종류가 달라졌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쓰는 것으로 충분했다. 누군가는 소설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하나에 정착하지 않아야 겠냐고 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글을 쓰고 돈을 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서 내 꿈에 대해 소개한다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꿈'만큼이나 익숙하고도 낯선 단어가 있을까.


 얼마 전 생활기록부를 열람했는데 초등학교 때 부터 고등학교 때 까지의 장래희망이 적혀 있었다. 너무 낯설다. 한때 내가 이것들을 삶의 목표로 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왜 이걸 적어야 했을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작  이 꿈을 이룬 나와 이루지 못한 나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 걸까.




 살면서 수많은 꿈들을 적어왔다. 교사, 작가, 변호사, 검사, 형사, 기자, PD 등등. 그렇게 많은 꿈들을 적었으면서 나는 또 새로운 꿈을 적으려 한다.


 하지만 이번에 쓰는 꿈은, 이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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