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D+99
오늘은 2022년 3월 30일, 제가 브런치에 첫 글을 업로드한 지 꼬박 99일이 된 날입니다. 3월의 마지막 날에 100일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쁩니다. 기념비적인 날을 맞아 오늘은 조금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100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100일 잔치도 생각나고요, 100점도 떠오릅니다. '기적의 100일'도 생각나네요. 우리는 어떤 목표를 세울 때 100일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곤 합니다. 왜 하필 100일일까요?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완전함, 안정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곰과 호랑이도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며 버텼잖아요. 먼 조상들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100일만 버티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글을 업로드하겠다고 쓰면서도 제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말을 지킬 수 있을까?'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꼴 사나워지는 건 아닐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여러분과의 약속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하는 선전포고였습니다.
'너는 앞으로 수요일마다 글을 업로드할 거야. 이미 공표했으니 어떻게든 해야 해.'
제 자신에게 빠져나올 수 없는 족쇄를 건 거죠.
100일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글을 올리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글 쓰는 게 조금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죠. 그래서 제 첫 목표는 '100일'이었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00일 동안 매주 글을 업로드하자. 그 뒤엔 뭐라도 되어 있겠지.
매주 글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겐 고작 1편일 수도 있지만 제겐 그것도 쉽진 않았습니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기한을 맞춰야 한다는 조급함에 성에 차지 않은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전부 알고 계셨겠죠?
주간 연재를 하면서 늘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거지? 작가인 저조차도 제가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헤맸습니다. 각기 다른 주제의 매거진을 3개나 만들어 놓고도 제 이야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더라지요.
아는 사람은 다 궁금해하는 사생활에 대해서, 한 번에 털어놓지 않고 파편화시켜서 조금씩 썼다. 사람들이 저열하게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은 힌트 정도로만 흘리고 자신이 세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로 책을 채웠다. 영리한 전략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겨우 이해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101~102쪽.
왜 나는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글을, 매거진을 완성하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파편화된 글 속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또 찾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이, 나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의 조각을 모으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00일이 지난 지금, 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놀랍게도 반전은 없습니다. 제 삶은 변하지 않았고, 저는 여전히 글을 못 쓰고 글 쓰는 것이 어렵습니다. 김샌다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쓴 건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썼다고 자부하거든요. 이렇게 살면 어떤 변화나 결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네요.
지난 100일 간 제가 얻은 거라곤 25편의 글, 몇 개의 좋아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대한 경험 정도입니다. 아, 주간 연재의 불안함과 미숙한 제 실력에 대한 자각도 얻을 수 있었네요. 이만하면 괜찮은 소득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처음에 제가 바라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요.
100일이라는 첫 번째 계단을 올랐으니, 이제 두 번째 계단을 오르려고 합니다. 네, 빠져나올 수 없는 족쇄를 다시 한번 걸어볼 셈이에요. 한 번 했으니 두 번은 더 잘할 수 있겠죠?
지난 100일의 소득을 밑천 삼아, 앞으로는 기획 연재를 할 계획입니다. 더 정확히는 하나의 주제로 묶인 브런치 책을 발간할 계획입니다. 지금처럼 수요일에 업로드될 예정이고요, 가끔 소재가 떨어지면 '작가가 되고 싶어서'나 '좋은 사람 좋은 이야기'로 찾아뵙기도 할 겁니다. 다음 주에 프롤로그가 올라갈 예정이니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보는 이 없이 저 혼자 썼다면 이렇게 꾸준히 쓰지 못했을 겁니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아등바등 썼습니다. 목적도 방향도 없는 졸문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